티벳(운남/쓰촨/깐쑤)-2003
<티벳-2003>
*티벳여행기는 한때 티벳땅이었으며 지금도 여전히 많은 티벳탄들이 살고 있는 윈난,쓰촨,깐쑤,칭하이의 일부 지역과 시킴 등을 포함합니다.
.일정: 2003.6.12~8.2
.여정: 운남성(중띠엔-더친-번지란-중띠엔)~
쓰촨성(시앙청鄕城-리탕理塘-캉딩康定-청뚜成都-쏭판松藩-루얼까이(조이개)-랑무쓰郞木寺~
깐쑤성(흐어쭈어合作-샤흐어夏河-난조우蘭州)
.교통: 중띠엔~더친: 6시간
.중띠엔~시앙청: 11시간,81.5위엔
.시앙청~리탕: 6시간 20분,65위엔
.리탕~캉딩: 8시간,76위엔
.캉딩~루딩: 2시간,25위엔
.루딩~청뚜: 6시간 30분,83위엔
.청뚜~쏭판: 9시간,50위엔
.쏭판~루얼까이: 5시간,35위엔
.루얼까이(조이개)~랑무쓰: 2시간,15위엔
.랑무쓰~흐어쭈어: 9시간 30분,20위엔
.흐어쭈어~샤허: 1시간 30분,8.5위엔
.샤허~린샤(2시간 30분,15위엔)~난조우: 3시간,15위엔
중띠엔中旬(3,200m)
중띠엔은 지금은 운남성에 속해 있지만 본래는 티벳지역이다.
중국 정부는 최근에 이곳을 샹그릴라라고 이름붙였다.
그리고 행여 다른 사람들이 거부권이라도 행사할까봐 거리며 표지판이며 중띠엔이라는 이름을 싹싹 지우고
샹그릴라라고 딱딱 못박았다.
여기저기 샹그릴라가 널렸다.
새로 생긴 호텔 이름도 샹그릴라요,여행사 이름도 샹그릴라다.
좋것다.샹그릴라-이상향,행복의 고개-많아서..
하지만 뜻있는(?) 여행자들에게는 여전히 중띠엔이라고 불리워지는 곳.
중띠엔엔 여전히 티벳탄들이 살고 있지만 밀물듯이 몰려온 한족들 때문에 이제는 넘의 땅이 되어 버렸다.
예전 그들의 생활 중심지는 올드타운라는 이름으로 밀려 나고
뉴타운이라 하여 한족을 중심으로 새로운 건물과 도로가 건설된 곳이 중심지로 자리잡았다.
그런 중심에서 멀리 떨어진, 송찬림사 가는 길에 숙소를 정했다.
송찬림사 가는 길.
고요가 숨을 쉰다.
나도 고요 속에서
가만가만 숨을 쉰다.
옛동네(old town)를 산책하는 동안 비는 수시로 내렸다그었다를 되풀이하고 바람은 옷 속을 헤집었다.
옛집들이 양옆으로 늘어선 골목골목을 지나 산으로 향했다.
집, 골목길,사람들에게서 세월이 묻어났다.
산중턱에 서니 지나온 동네가 한 눈에 보인다.
저만치 보이는 신시가지와 쭉 뻗은 도로가 낯설다.
산 위에는 티벳탄 곰파가 있다.
주위엔 사방으로 오색의 기도깃발이 휘날린다.
대웅전에는 놀랍게도 판첸 라마와 함께 달라이 라마가 모셔져 있다.
중국에서는 달라이 라마 사진을 갖고 있으면 당장 영창행인데
여러 사람이 오는 곰파 본당 한 가운데에 고이 모셔져 있으니 어찌된 일일까..
자세한 사연을 알 수없으나 기쁜 마음에 경배드리고 밖으로 나왔다.
티벳탄 할머니 몇 분이 꽃을 꺾어 화관을 만들며 주거니 받거니 노래를 한다.
웃음과 함께 노래 소리가 산 아래로 마을로 퍼져 나간다.
날마다 걷고 또 걷는다.
산등성이로,마을길로,곰파로..
호랑이가 장가가는지 햇볓은 쨍한데 비가 줄기차게 내린다.
맑은 하늘 보기가 쉽지 않다.
더친(3550)
더친은 운남성 가장 북쪽에 위치한 티벳(시장 자치구)과 경계를 이루는 마을이다.
주민의 80%이상이 티벳탄이고 티벳탄들이 신성시하는 해발 6740미터의 메리설산이 티벳과 쓰촨 경계를 따라 뻗어 있다.
중국 정부가 인위적으로 금을 그어놓기 전에는 더친은 물론 중띠엔까지 모두 티벳땅이었다.
<장족의 집>에 묵는다.
이름에서 알 수있듯 티벳탄 가족이 운영하는 숙소다.
한족들은 티벳을 시장西藏이라 하고 티벳탄을 장족藏族이라고 부른다.
고도가 높아서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차고 조금만 크게 웃거나 말을 해도 숨이 가쁘다.
몸상태가 심상치 않다.
몸이 이 곳 기후와 고도에 적응해가는 과정이리라.
하루가 지나도 고소 증세는 여전하다.10분이면 가는 시장이 멀게만 느껴진다.
시장에 가서 근으로 달아 파는 웨하스를 샀더니 누런 벼이삭이 그려진 쌀포대에 담아준다.
메리설산(6740)
비래사는 드어친 시내에서 10킬로미터쯤 떨어져있다.
한적한 도로를 따라 비래사로 가는 길,
풍경이 이만큼 가까워졌다 멀어지기도 하고
아무 마음 없이 걷노라면 풍경과 내가 하나가 되기도 한다.
비래사가 메리설산을 전망하기에 좋은 장소이기는 하지만
자주 메리설산이 구름에 가려있어 온전한 산의 자태를 즐기기는 쉽지 않다고 했다.
고맙게도 오늘은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하지만 고혹적인 여인이 그녀를 온전히 드러내지는 않는 법.
앞가슴을 살짝 가린 여인네처럼 가장 높은 봉우리 주위를 흰 구름이 살짝 덮고 있어
끝내 보는 이의 애간장을 녹인다.
비래사에서 메리설산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입구에 도착하니 입장료가 기다리고 있다.
입장료 60위엔에 보험료 3원.
학생증을 내미니 절반 가격이다.
버스가 갈 수있는 곳은 인촨溫川(2680)까지다.
거기서부터 메리설산 바로 아래에 있는 마을인 위펑雨崩上村까지는 걸어가든지 말을 타고 가야 한다.
온천까지 오는 길이 워낙 아슬아슬하여 아직 긴장된 마음이 갈무리되지 않는다.
아무리 안전불감증에 걸렸다고 하더라도 정원을 두 배 가까이 초과한 차를 곡예운전 하는걸보면 보통 강심장이 아니다.
현지인 승객들은 으레 그러려니 하는데 멀리서 온 소심한 이방인만 가슴을 졸인다.
이런 곳에 온천이 있다니 신기하다.
저녁이 되자 을씨년스럽다.
이름만 방이지 사방벽을 조각나무로 잇대어 나무틈사이로 황소바람이 들어왔다.
우선 몸이라도 녹일 양으로 온천물로 샤워를 하러 갔다.
한 데를 간신히 면한 곳에 샤워 꼭지가 하나 달려 있다.문고리도 없다.
그래도 이런 곳에서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할 수있는 것이 어디냐?
온천溫泉~야코우(3970)~위펑雨崩上村(3200)
온천에서 위펑까지는 14.5킬로미터이지만 오르락 내리락하며 위펑에 도착하는데 4시간 20분나 걸렸다.
위펑에는 정식 게스트하우스는 없고 집집마다 순번을 정해 외지에서 온 사람들을 묵게 한다.
공식적인 화장실은 없지만 비공식적인(?) 화장실은 사방에 널려 있다.
물론 전기는 들어오지 않는다.밤에 불을 밝히는 유일한 수단은 양초다.
물은 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이용하는데 세수라도 한 번 할라치면 뼛속까지 시리다.
변변한 식당도 없어 대개 묵고 있는 집에서 먹는(게 원칙이)다.
아직은 교통이 불편해서인지 외지인들에 의해 오염되지 않아서 좋다.
바로 눈앞에 메리설산과 빙하가 보이고 그 아래엔 녹음이 우거진 산이 있고
평지엔 열 가구 남짓한 고만고만한 티벳탄 집들이 감자밭과 밀밭에 둘러싸여 있다.
너와 지붕위에는 그들을 지켜주는 롱따가 어김없이 걸려 있다.
소 목에 매달린 방울 소리와 닭울음이 아침을 알리고
옷과 얼굴에 땟국이 줄줄 흐흐는 계집 아이의 수줍은 웃음이 옛날 옛적을 추억하게 한다.
신성한 폭포,신푸神瀑(3650)!
이방인의 눈에는 평범한 폭포로 보일지 모르지만 현지인들에게는 신성한 기운이 가득한 폭포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순례를 온 티벳탄 가족이 쏟아지는 폭포 속으로 들어갔다.
온 가족이 흠뻑 젖었다.아니 신성한 폭포의 축복을 한껏 받았다.
아이 아버지가 아기가 입고 있던 옷을 모두 벗기더니 아기를 안고 폭포 속으로 들어가 세바퀴를 돈다.
신성한 폭포에게 새로 태어난 생명을 알리고 축복을 받게 하려는 의식같다.
축복이 필요한 나도 흠뻑 젖을 각오를 하고 용기를 냈다.
가상한 용기의 대가는 바로 며칠 후에 톡톡히 치루지만..
위펑~온천(3시간 40분)~더친(3시간)
다행히 온천에서 오후 2시 50분에 출발하는 버스가 있어서
갈 때와는 달리 온천에서 자지 않고 더친까지 하루만에 왔다.
따뜻한 전기 장판과 등산(?)을 하지 않고도 볼일을 볼 수있는 화장실과 욕실,
빨래도 할 수있고 깨끗한 시트와 텔레비전까지 있는 더친에 오니 딴 세상같다.
사고뭉치는 몸 전체에 붉은 반점 투성이다.
어젯밤 빈대인지 벼룩인지 아님 둘다인지가 몸에서 활개친 흔적이다.
번즈란奔子欄
어제 저녁 먹으러 나가면서 속이 미식거린다 했더니 저녁 먹고 집에 오자마자 구토를 했다.
조짐이 심상치 않다.
고도가 높은 곳을 매일 7~8시간씩 걸어다닌 것이 무리였나.
긴장된 마음으로 아침에 중띠엔으로 가는 버스에 탔지만
얼마 못가 몸이 마구 휘둘리고 몸 속 내장들이 제자리를 잃고 아우성이다.
한치앞이 안보이는 짙은 안개 속을 버스는 구불구불 달리고
심하게 덜컹거리는 버스 맨 뒷자리에 앉아 담배 연기를 있는대로 마시며 몸은 안절부절이다.
어찌할꺼나~
3시간 후에 버스가 번즈란에 잠시 서자마자 내려서 구토를 했다.
미안한 마음을 잠시 접어 두고 무조건 쉬어가기로 했다.지금 이 몸으로 버스를 탈 수는 없다.
다행히 깨끗한 숙소를 얻었다.
다음 날은 구토에 심한 몸살,두통까지 올 수있는 것들이 한꺼번에 몰려 왔다.
온전히 혼자 있고 싶다.사고뭉치에게 먼저 길을 나서길 제안하지만 들은 척도 안한다.
의무적으로 모래알같은 밥알과 썰거덩거리는 콩나물을 먹어보지만 속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밥알 한톨까지 게워냈다.
오늘 나를 지탱해준건 미숫가루 두 컵과 오이 그리고 사고뭉치의 고마운 마음이다.
하루 종일 속이 요동치고 먹은 것없이 설사는 계속되고
머릿속은 날카로운 침을 가진 벌레들이 마구 헤집는듯 쑤시고
몸은 세포마다 찬바람이 가득가득한 것처럼 춥다.
서러움은 없다.
다만 몸이 맘같지 않아 속상하다.
편하게 생각하자.어차피 길은 멀다.
이쯤에서 잠시 쉬어간들 어떠리.
번즈란2
밤새 몇번씩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느라 거의 잠을 못잤다.
게다가 얼핏 잠이 들었는가 하면 어김없이 어지러운 꿈을 꾸었다.
'도대체 이게 뭐냐?
혹시 사전 경고를 하는 거라면 이런 식으로 변죽을 울리지 말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보시지.'
한동안 몸을 혹사시켜 몸이 잠시 쉬고 싶다고 하는 것일지도 모르는데
몸이 마음대로 따라주지 않으니 마음이 앙칼져지고 불뚝거린다.
조급해서 되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뜻같지 않다.
의무적으로 집어 넣은 밥알과 계란 두부탕을 먹은지 얼마 안되어 또 게워내고야 말았다.
온전히 혼자 있고 싶다.나 혼자서 나와 만나고 싶다.
죽어라고 아우성치는 몸이 아우성을 다 토해낸 후에 아주 천천히 다시 일어나 걷고 싶다.
바로 코앞인 밥집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천리 만리같다.
사고뭉치가 땡볕 속을 걸어가 빵을 한보따리 사왔다.
어제보다 나은 오늘인가..조금 아주 조금..
몸살과 두통은 잦아들었지만 구토와 설사는 여전하다.
밤에는 화장실에 들락거리고 사나운 꿈을 꾸다 깨다를 반복하느라 거의 잠을 못자고
낮에는 부족한 잠을 보충하느라 잠에 취해 있다.
먹은 것없이 위아래로 내쏟기만 하니 힘이 하나도 없다.
1층에 있는 화장실에 다녀오는 것도 힘겹고 숨차다.
한심하다.
몸이 이 지경이 되도록 눈치조차 못챘단 말인가.
설산에 취하고 풍경에 취해 배낭여행자의 철칙인 자기 몸 돌보기에 이토록 무심했단 말인가.
이쯤되면 몸의 극렬시위를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인내의 한계를 넘어선 몸의 항의는 더욱 거세져
며칠째 속수무책으로 구역질과 지독한 설사를 내쏟고 있다.
사고뭉치가 말했다.
"마음을 편히 가져.내리막이 다하면 그 다음엔 오르막이야.."
하지만 지금 나는 한없이 아래로 아래로 내려 가고 있다.
번즈란3
나흘째 악몽의 연속이다.
몸이 허약해질대로 허약해진 틈을 타서 온갖 잡것들이 활개를 친다.
그런줄 뻔히 알면서도 밤마다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오늘은 가위눌림까지 당했다.생욕을 퍼부어보지만 힘없는 자의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왜 이러나~'
몸과 마음이 해질대로 해져 보기에도 민망할 지경이다.
만병통치약이라는 정로환을 먹은 보람도 없이 설사와 구토는 여전하다.
싫은 내색없이 옆을 지켜주는 사고뭉치에게 고맙다.
그가 전해준 온기와 편안함이 아니었던들 훨씬 더 고통스럽고 외로웠으리라.
번즈란4
관계를 지속시키고 단절시키는 것은 무엇일까.
하루에 두 번씩 어김없이 가는 식당 아주머니는 깔끔하고 정갈한 분이다.
언제부턴가 하루가 다르게 야채볶음밥에 들어가는 야채의 양이 늘어났고 국에 들어가는 건더기도 많아졌다.
더욱이 내 몸상태가 그리 좋지 않다는 것을 안 후에는 더 세심하게 마음을 썼다.
아침부터 밤까지 아주머니의 마른 몸은 잠시도 쉴 틈이 없다.
하지만 건내는 말 한마디는 정겹기 그지없고 웃음은 환하다.
아주머니께 삶은 감자를 부탁했다.
이래도 저래도 안되는 몸에게 밥대신 감자로 보시를 하기 위해서다.
아주머니는 압력솥에 한참을 쪄서 포근포근한 감자를 내왔다.(이마저도 성난 위가 소화시키지 못하고 게워내고야 말았지만..)
어제 저녁을 먹지 않은 덕분일까.
밤새 지독한 복통으로 인한 고통이 없었다.꿈도 꾸었지만 지독한 악몽은 아니었다.
헌데 아침부터 구토가 쏟아졌다.
새벽부터 설사를 몇차례 한 탓에 이미 기진맥진한 상태였고 게워낼래야 게워낼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런데도 몸은 하늘과 땅이 갈라지기라도 하는듯 요동치며 온갖 내장까지 밖으로 쏟아내겠다는듯 난리를 쳤다.
집앞에 있는 병원에 갔다.
<번즈란 중심위생원>
엄밀히 말해 병원은 아니다.우리네 보건소쯤이나 될까.
바로 집앞에 있었지만 그동안 가지 않았다.갖고 있는 약을 먹고 이삼일 지나면 말끔히 털고 일어나려니 했다.
하지만 오늘 아침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온 몸이 연체동물처럼 흐느적거리고 누군가 겨우 일으켜 세워놓으면 언제 그랬냐는듯 금세 흐물흐물 주저앉아 버린다.
게다가 몸속의 거대한 동물은 안으로 물 한모금,밥 한톨도 머물지 못하게 하겠다며 아래위로 쏟아냈다.
눈물이 쏙 나왔다.
보건소까지 가는 길이 천리만리나 되는 것같다.
링겔 세 병을 맞고 약도 지었다.
20위엔을 더 주고 방도 옮겼다.욕실이 딸리고 훨씬 쾌적하다.
구토가 잦아들었다.저녁으로 먹은 감자탕과 배춧국도 그런대로 자리를 잡았다.
고맙다,몸아.
링겔과 약 덕분인지 구역질도 설사도 잦아들었다.
아침에 감자국을 먹은 후에도 어떤 불길한 조짐도 보이지 않는다.
단지 그동안 약해질대로 약해진 체력때문에 계단을 오르내리기가 힘들 정도로 힘이 없을 뿐이다.
빨래도 하고 가방도 빨았다.
'내일은 가야지..'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내일 떠날 마음의 채비를 하는데 사고 뭉치가 조급해하지말고 몸을 돌보라고 한다.
중띠엔中旬(3,200m)
다시 보건소에 갔다.
약효가 떨어졌는지 다시 복통과 구토가 시작됐다.
조금전까지만해도 거의 다 나았다며 방실방실 웃으며 떠날 준비를 했는데..
덜컥 겁이 났다.
다시 링겔을 맞고 약을 타왔다.
하지만 오늘 떠나고 싶다.
마음이 원하는대로 짐을 싸고 체크아웃을 하고
밥과 두부조림과 감자국으로 정성을 다해 몸에게 보시하고 약을 먹고 출발했다.
'부탁한다,몸아..동행에게 너무 미안하지 않게 해다오.'
중띠엔까지 가는 2시간은 가깝고도 멀었다.
중띠엔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새삼 인식시키려는듯 비가 내렸다.
비때문에 초록은 더욱 선명하고 노란 유채밭도 그 색을 더했다.
저만치 송찬림사가 보인다.
아~중띠엔.
대도시에 왔다.문명세계에 왔다.과일도 풍성하고 팝콘냄새도 구수하다.
저녁에는 한국음식을 하는 식당
가뭄에 단비를 맞은듯 몸도 살아나고 마음도 살아난다.
빗방울 속에 빛깔도 선명한 노란 유채꽃처럼..
어젯밤 잔 곳은 숙소 이름치고는 희한하기 이를 데 없는 <무장부화원Armed Force Garden>이다.
휑한 것이 어설프고 온기라고는 없다.
영생반점(Tibet Hotel)으로 숙소를 옮겼다.
초겨울 날씨마냥 을씨년스럽다.
으슬으슬 춥다.
게다가 오후가 되자 속이 울렁거리고 구토의 조짐까지 보인다.
거의 몸을 회복했는가 싶었는데..상태가 고르지 못하다.
먼 길 떠나려면 최상의 컨디션으로 출발해야할텐데..자꾸 몸에 자신이 없어진다.
몸이 맘같지 않다.
하루 더 쉬어가면서 만반의 준비를 한다.
약을 더 짓고 천천히 산책을 하며 컨디션을 조절하고 된장찌개로 한번 더 몸보신을 하고 머리도 감고 마음도 다진다.
하지만 다음날도 떠나지 못했다.
지독한 설사.몸 속에 건더기 하나,수분 한 방울 남겨놓지 않겠단다.
다시 악화된 몸상태에 망연자실.부실하기 짝이 없는 몸을 어찌해야 좋을지..
언제 떠날지 기약이 없다.여행하면서 아니 살면서 이렇게 아팠던 적이 있었던가.
귀하고 맛난 미역국도 들이지 말란다.
다시 약국으로 가서 약을 지었다.평소 걸음이라면 10분정도 걸리는 약국이 천리만리나 되는 것같다.
벌써 며칠째냐.번즈란에서 8일,이곳에서 6일. 2주동안 있는대로 진을 뺐다.완전탈진이다.
배낭여행자 자격박탈이다.
KO패다.
항복이다! 항복!!
중띠엔~시앙청
중띠엔에서 시앙청으로 가는 길은 곳곳이 공사중이라 누구도 얼마가 걸릴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누구는 6시간,누구는 7시간,매표원은 8시간쯤 걸릴 거라 하고
운전기사는 9시간 30분쯤 걸릴 거라고 했지만 결국 11시간 걸렸다.
도대체 몇개의 산을 넘고 휘돌은 것일까..
흙먼지를 흠뻑 뒤집어쓰고 시앙청구에 들어서고서도 한 시간 반이 지나서야 시앙청 마을에 도착했다.
다행히 몸이 잘 견뎌주었다.
고맙다,몸아..
시앙청鄕城
아침에 사고뭉치가 채 잠이 덜 깬 목소리로 말한다.
"생일 축하해."
맞다,오늘이 내 생일이다.그렇다고 별다른 감흥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길위에서 생일을 맞이하니 마치 내가 본격적인 길위의 인생이 된 것같다.
생일이라고 저녁에 사고뭉치가 물만두와 별星星맥주 한 병을 사주었다.
리탕理塘(4600)
리탕까지 가는 길은 중띠엔에서 시앙청으로 오는 길에 비하면 고속도로다.
게다가 한시간 이상 무지막지한 크기의 돌들이 사방에 널려 있는 황량한 돌산을 지나는가 하면
거대한 천마총같은 둥글둥글한 산들을 지나 드넓은 대초원을 만나기도 한다.
도대체 몇 개의 산굽이를 돌고 골짜기를 지나온 것일까..
티벳을 여행한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이제 티벳을 느끼려면 라사에 가지 말고 쓰촨 서부를 여행하라고..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여느 한족의 대도시나 다름없이 변해가는 라사보다는
이전에 티벳땅이었고 개발의 바람에서 아직은 살짝 비껴나 있는 쓰촨 서부를 여행하면
티벳의 한 가운데에 있다는 것을 생생하게 느낄 수있다.
리탕은 그 중심에 있다.
리탕으로 진입한다는 것을 알리기라도 하듯 뜬금없이 화려한 가로등이 도로 양옆에 일렬로 줄지어 있다.
게다가 일직선으로 나있는 도로를 따라 들어선 새건물들은 돌벽돌과 흙을 섞어 지은 사다리꼴의 티벳 전통가옥들과 엇박자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거대한 하마 엉덩이 같은 초원으로 뒤덮인 산에 둘러싸인 하늘 아래 첫동네에는
원래 주인들이 살고 있다.긴 머리를 땋거나 올리고 한결같이 전통의상을 입은 키가 크고 늘씬한 티벳탄 여인들과
역시나 키가 크고 체격이 좋은 장족 사내들이 이방인을 호기심과 경계심을 섞어 바라본다.
한족과 구분이 안가는 우리를 한족 여행자로 착각할 수도 있으리라.
한낱 이방인에게 호의적일 필요는 없다.
나라를 빼앗긴 분노와 야수성을 한시도 잃지 말고
잃어버린 조국을 되찾을 그날을 위하여 눈과 칼에서 서슬을 거두지 말지니..
이곳에 거지가 왜 이리 많은 걸까..
승려도 아이들도 낯선 외지인에게 "HELLO!!"를 연발하며 성가시게 군다.
티벳땅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낯선 풍경이다.
아직은 오지로 여겨지는지 여행자도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고소때문에 머리고 띵-하고 조금만 걸어도 숨이 가쁘다.
걷다 쉬다를 반복하며 한참을 걸어 마을 제일 위쪽에 있는 곰파에 갔다.
이따금 노인들과 젊은 여인,승려들이 한손에 마니차를 돌리며 코라를 돈다.
절 뒤에 있는 산은 거대한 천마총같다.
노랗고 하얗고 보라색을 한 작은 들꽃들이 사방천지에 피어 있다.
거대한 꽃동산이다.
길이 궁금한 사고뭉치가 산등성이로 향했다.그가 보이다 안보이다하며 점점 멀어졌다.
산등성이에서는 야크들이 무리지어 풀을 뜯고 있다.
멀어져가는 사고뭉치를 뒤로 하고 마을을 보며 꽃밭에 앉았다.
6~7시간의 산책이 조금 무리였나.다시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도 아프다.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누웠는데 울렁거림이 심해지더니 그만 구토를 했다.
사고뭉치랑 두통약 두 알씩을 먹고 누웠다.몸은 피곤한데 잠이 오지 않는다.
얼핏 잠이 들었는가 싶었는데 방문 두드리는 소리가 나더니 누군가 열쇠를 따고 방으로 들어왔다.
(아직도 중국은 숙소의 방 열쇠를 복무원이 관리하는 곳이 많다)
밤 11시 30분.
경찰 세 명과 이 집에서 일하는 복무원이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다.왜 한밤중에 남의 방에 일방적으로 문을 따고 들어온거지?
들어온 경찰은 방을 한 번 휘 둘러보고는 별말없이 나간다.
무슨 일이냐는 항의에 "sorry"가 전부다.
잠이 확 깼다.
옷을 주섬주섬 입고 1층으로 내려갔다.
주인네는 별일 아니니 가서 자라 하는데 이게 별 일 아니란 말야?
그들은 경찰이 일상적인 조사를 하고 간거란다.
그들의 안하무인과 무례함을 이해할 수도 참을 수도 없다.
공안국(경찰서)으로 갔다.
조금전 왔던 공안은 외국인은 초대소에 묵어서는 안된단다.
그건 그렇고 왜 한밤중에 남의 방에 일방적으로 문을 따고 들어왔냐는 항의에 대한 대답은 하지 않고 똑같은 말만 되풀이한다.
가당치 않고 눈꼴시다.다시 숙소로 왔지만 잠이 오지 않는다.새벽 4시까지 뒤척였다.
다음날 숙소를 옮겼다.아니 옮겨야 했다.
그 잘난 공안들이 숙소 주인에게 외국인을 내몰라고 한 것이다.
<선학빈관>은 어제 묵었던 숙소와 큰 차이가 없지만 외국인이 묵도록 공식적으로 허가받은 곳이다.
대문위에'외국인 묵을 수있음'이라고 써있다.
리탕이 동부티벳으로 들어가는 관문이라 이곳에 오는 외국인들을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는 것같다.
사고뭉치의 몸상태가 심상치 않다.
고소와 몸살이 한꺼번에 온 것같다.어제 산책도 조금 무리였던 것같다.
"집에 가고 싶어.."
사고뭉치가 집에서 너무 오래,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것같다며 집을 그리워한다.
*<선학빈관>20위엔/dorm,전기장판,비교적 깨끗,티벳탄주인.
터미널에서 마을쪽으로 도로따라 5~10분 정도 가면 오른쪽에 있다.
캉딩康定
길 이야기를 할까..
버스는 4850미터인 리탕을 츨발해서 몇 시간을 4000미터 이상 되는 길을 달렸다.
높고 높은 연봉들이 눈아래 있다.산등성이를 넘고 또 넘어도 산이고 또 산이다.
거대한 천마총같은 둥글둥글한 산위에는 까만 점처럼 야크들이 플을 뜯고 있다.
아~탄성이 일며 승객들이 웅성거린다.
공가산이다.
이 길을 간다해도 날씨 때문에 온전한 모습을 보기 힘들다는 공가산이 순백의 위용을 드러냈다.
구름 한 점도 감히 근접하지 못한 완벽한 자태.
하늘 가는 길이다.
캉딩은 예상밖으로 규모가 있는 도시였다.
한동안 작은 마을들만 지나와서인지 눈이 휘둥그레진다.
생전 처음 도시 구경하는 사람마냥 보는 것마다 신기해한다.사람들도 무지 많다.
루딩淚定
"일어나!! 4시 45분이야!!!"
속편하게 한참 꿈을 꾸고 있는데 사고뭉치가 다급한 목소리로 깨웠다.
'맞아,오늘 새벽 4시 50분에 떠나는 청뚜成都행 버스를 타기로 했지.'
정신이 번쩍 든다.
"뭐,4시 45분이라구..??? "
버스 출발시간 5분전.
순식간에 옷을 갈아 입고 정신없이 배낭을 싸서 컴컴한 숙소 층계를 더듬거리며 내려와 버스터미널로 뛰어 갔다.
차가 뒤꽁무니를 내보이며 저 멀리로 사라지고 있다.
새벽부터 한바탕 법석을 피우고 차는 차대로 놓치고 다시 숙소로 왔다.
어이쿠,살다보니 이런 일도 있다.
여행하면서 처음 있는 일이다.
더구나 출발 시간이 일러 숙소도 터미널 바로 앞에 잡지 않았던가..
113위엔 주고 산 청뚜행 표를 수수료를 물고 환불한 후, 캉딩에서 42킬로미터 떨어져있는 루딩으로 갔다.
비는 부슬부슬 내리고 곳곳이 도로포장 공사중이라 길이 울통불퉁하다.
42킬로미터를 2시간만에 갔으니 간신히 시속 20킬로미터로 간거다.
더욱이 타고 온 봉고차 운전사는 루딩 입구에 차를 세우고는 버스터미널까지 가려면 10위엔을 더 내라며 수작이다.
이래저래 기운 빠진다.
다음날 청뚜로 가는 버스를 예매하고 저녁까지 먹고 나니 마음이 한결 여유로워진다.
산책을 하면서 맞은편에서 오는 아저씨에게 인사를 건넸다.
"니하오(안녕하세요)"
아저씨는, 저것이 나를 언제봤다고 아는체야 하는 눈빛으로 아무 대꾸없이 지나쳤다.
그러거나 말거나 다음에 만나는 사람에게 또 인사를 건넸다.
그 역시 처음에는 중국인 특유의 무뚝뚝한 표정으로 지나치다가 한박자 늦게 인사를 한다.
뜻하지 않게 머물게 된 루딩.
사람에게 상처받은 마음을 살랑이는 바람이,이만큼 다가온 산들이,초록의 풀들이,급한 물살로 흘러가는 강물이
말없이 다독여준다.
청뚜成都
청뚜로 가는 길은 험하다.
<서부대개발>의 일환으로 도로 포장공사를 하느라 길은 엉망이다.
울통불퉁한 길을 롤러코스트를 타듯이 두시간여동안 가다서다를 반복했다.
그 이후는 잘 닦인 포장도로,그리고 계속되는 고속도로..
쓰촨성의 성도인 청뚜는 중국의 대표적인 대도시답게 매연과 교통체증, 높은 건물과 물건들이 흐르고 넘친다.
갑자기 멀미가 나면서 하늘도 산도 손에 잡힐 듯한 단조로운 풍경들이 그리워진다.
사고뭉치의 비자를 연장하기 위해 PSB에 갔다.
대도시 PSB일수록 까다롭게 군다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전형적인 한족인, 비자 업무를 담당하는 여직원은 리지앙에서 이미 한 번 비자 연장을 한 것을 트집잡으며
한 번 이상의 비자 연장은 중국에서 불가능하다고 못박았다.
두 번까지 비자를 연장한 여행자들이 꽤 있거늘 그 무슨 섭섭한 말씀을..
(나중에 알고 보니 중국에서 두 번째 비자 연장은 되는 곳이 있고 안되는 곳이 있다.
이럴 때는 가능하면 대도시보다는 소도시에서 연장을 시도하는 것이 가능성이 높다.
한 나라의 비자 정책이 담당자에 따라 엿장수 맘대로다)
그나저나 비자만료일이 며칠 남지 않은 사고뭉치는 마음이 바쁘다.
추워서 전기장판을 깔고 잔게 불과 며칠전인데 청뚜에서는 언제 그랬냐는듯 후덥지근하고 푹푹 찐다.
버스나 길거리에서 런닝셔츠만 입거나 런닝마저 벗어버리고
보기만 해도 더운 불룩한 배를 내놓고 다니는 중국 남자들을 흔히 볼 수있다.
쏭판松藩
쏭판에 오니 청뚜의 후덥지근함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건조하다.저녁이 되자 쌀쌀하기까지 하다.
쏭판에서는 비자 업무를 하지 않는다.마음은 루얼까이로 내달린다.
*쏭판에서 구채구는 2시간 거리이다.
루얼까이
루얼까이 터미널에서 표를 파는 창구 직원이 불친절하기 그지없다.하기야 중국 어디가 예외겠냐마는..
2시 30분에 랑무쓰郞木寺로가는 차가 있는지없는지 모르겠다며 쌀쌀맞게 내쏜다.
저런 여자는 집에 가서 하루 종일 텔레비전이나 끼고 살면 딱인데
어쩌자고 여러 사람 상대하는 터미널 창구에서 일하는 걸까.
필시 생전 친절이라든가 공손함이라는 말은 듣도 보도 못했으리라.
건조한 햇볕 속에서 동네 끝에서 맞은편 끝까지 걸어다녀보지만 방구하기가 쉽지 않다.
복무원들은 하나같이 세상 귀찮다는 표정을 하질않나 하품을 있는대로 하며 뜨악한 반응을 보이지 않나,
중국인이 아닌걸 안 후에 난데없이 방값을 올리지 않나..정말 정나미 떨어지는 근무태도요 여행자 접대다.
몇 곳을 더 알아봤지만 겉은 멀쩡한데 안은 허술하기 짝이 없다.특히 변소는 전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마침내 방을 구하기는 구했다.
물론 변소는 숨막히지만......
랑무쓰郞木寺
그대,대초원을 보았는가.
지평선 끝까지 초원이 맞닿아 있고 그 초원 위에 수백 마리의 야크떼와 양떼들이 풀을 뜯고
티벳탄 텐트들이 초원 곳곳에 점점이 박혀 있는..
얼굴이 거무스름하고 기골이 장대한 티벳탄 남자들과
긴머리를 양갈래로 땋거나 하나로 묶어서 위로 올린 티벳탄 여인들,
얼굴이며 옷이며 손이 땟국에 절을대로 절은 아이들을 만날 수있는..
랑무쓰..고요가 살아있는 곳,바람의 숨소리가 들리는 곳이다.
바람의 숨소리를 들으며 하루 종일 걷는다.
고원에서만 피는 키작은 꽃들이 사방천지에 피어있는 둥글둥글한 산등성이로,
대협곡 속으로,곰파를 지나 마을과 마을 사이로 ..
점점 땅보다 하늘에 가까워진다.
마을을 지나 작은 산을 휘돌아 산등성이에 오르면 초원에 넓은 꽃밭이 펼쳐졌다.
다시 바로 앞에 있는 작은 산을 지나 그 산의 아버지뻘되는 양 떡 버티고 있는 산 정상까지 간 후 산등성이를 탔다.
대협곡을 위에서 내려다보며 산을 넘어 대협곡 입구로 내려왔다.
흐어쭈어合作
흐어쭈어로 가는 길은 몸살을 앓고 있는 <서부대개발>의 현장을 몸으로 체험하는 여정이다.
여행자들에게 아름답기로 이름난 길을 이 지경으로 해놨으니 그저 입이 굳게 다물어질 뿐이다.
안그래도 흙먼지를 조금이라도 덜 마시면서 이 길을 가려면 입을 꾹 다물어야한다.
다행히 이곳에서 그동안 노심초사하던 비자를 연장했다.160위엔.
이곳에서도 연장이 안되면 비상수단을 써서 중국을 빠져 나가야 할 판이었다.
비자업무를 담당하는 아저씨는 한국 사람이라고 하자 대뜸 자기가 그동안 본 한국드라마들을 줄줄이 얘기한다.
얼른 맞장구를 치고 아저씨의 한국에 대한 관심에 호의를 표했다.
청뚜에서 연장했더라면 마음 졸이지 않고 여유있게 다녔을텐데
어디서는 연장이 가능하고 어디서는 안된다니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샤허夏河
샤허에는 티벳 6대 사원중 하나인 라브랑스가 있다.
샤흐어夏河- 여름夏생인 내가(내 이름자에 河가 들어간다)가 오기로 예정되어 있던 곳이었을까..
키가 작고 기름기가 모두 빠져나간 흰머리카락들이 제멋대로 푸석거리고 얼굴에는 살아온 삶만큼이나 녹록치 않은 깊은 골들이
가득한 할머니가 걷기조차 힘든 몸으로 천여개가 넘는 마니차를 돌리며 3킬로미터도 더 되는 사원 둘레를 코라를 돈다.
할머니의 간절한 염원은 무엇일까..
살면서 어떤 일에 저토록 간절한 마음을 담아본 적이 있었던가.
샤허에서는 삶의 경건함에 좀더 고개숙여야 할지니..
*간쑤성甘肅城여행시...
.외국인 여행자는 <보험증서>를 의무적으로 사야한다.15일 유효,30위엔.보험증서가 없으면 창구에서 표를 팔지 않는다.
만약에 보험증서를 사길 원치 않으면 터미널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차를 타고 운전사에게 직접 차비를 내면 된다.
이 제도는 외국인 입장에서 보면 납득하기 힘들다.만약에 이 구간이 보험이 필요할 정도로 위험한 구간이면 내외국인에 상관없이
반드시 모든 승객에게 적용해야 마땅하다.하지만 유독 외국 여행자만 보험증서를 의무적으로 사라고 하는 것은 부당하다.
샤허夏河~린샤 ~난조우蘭州
청뚜만큼은 아니지만 깐쑤성의 성도인 난조우에서도 눈이 휘둥그레졌다.
터미널 앞은 분주하기 이를데없고 난주역은 크고 멋들어지다.
시장에는 먹거리 천지다.
야채비빔 칼국수와 한국식 짜장면,찐감자,찰옥수수..
내몽고를 지나 백두산까지 가려고 하룻밤만 자고 떠난다.기차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