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

파키스탄-2001

나는 걷는다 2009. 9. 17. 05:01

 

<파키스탄-2001>

 

 .일정: 2001년 9월 3일~10월 21일(49일) 

 .여정: 라호르~카라치~발루치스탄~라왈핀디~훈자~길깃~라왈핀디~라호르

 .환율: $100 = 5750루피(2004.7.14.현재)

 .화폐단위:루피

 

 **Tip...여자여행자의 경우 헐렁한 옷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대개는 파키스탄이나 인도에서 펀자비드레를 산다.

            그래야만 파키스탄 남정네들의 부담스러운 시선에서 조금이나마 자유로울 수있다.

           .라호르, 라왈핀디, 길깃 등 머무는 곳에서 소지품에 특별히 유의해야한다. 특히 라호르는 악명높기로 유명하다.

            파키스탄을 여행하는 동안 '당했다'는 여행자들의 얘기를 수없이 들었다. 나역시 두 번 '당했다'.

 

.숙소...라호르: <클립톤 호텔>50루피/3인,w/b, 쾌적하고 안전하다.

           .카리마바드: <하이더 인>(50루피/bed)

 

.교통...라호르~카라치: 기차(economy class,sleeper), 410루피, 20시간

           .라왈핀디~길깃: 나트코버스(460루피)

 

 

<라호르Lahor>

 

국경을 넘어 환전을 하고 라호르까지 버스타고  갑니다.

인도 루피:파키스탄 루피= 1:1.4

국경을 넘었다하나 차창밖 풍경은 익히 보아온 인도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하늘로 날아갈 듯한 우르드어가 그득 쓰인 간판들과 남녀로 구분되어 있는 버스,

눈을 제외한 온 몸을 가린 여인들의 모습이 다른 나라에 왔음을 일깨워 줍니다.

 

라호르에 도착해서 숙소를 찾다가 싼 값을 들이미는 호객꾼을 따라 갑니다.

들어가는 입구부터 으스스합니다.

체크인을 하자 갑자기 정전이 되더니 숙소 직원이 보기에도 안스러울 정도로 가느다란 초를 가져옵니다.

몇 번 불이 들어왔다 나갔다를 반복해서 정신없이 만들더니 마침내 다시 불이 들어옵니다.

그 와중에 주인이라는 자는 인상이 심상치 않은 낯선 자를 데리고와서

이 사람은 자기 친구인데 의사이니 몸이 안좋거나 문제가 있을 때는 이야기하라 합니다.

 

한 사람이 채 샤워를 마치기도 전에 단수가 되어 비상사태를 만들더니 같은 상황이 몇 번 반복됩니다.

방 안은 손바닥만한 조각 창문도 없어 어둡고 환기가 안되는데다 찜통이라 침대를 옥상으로 옮깁니다.

덕분에 모기의 집중공격을 받습니다.

 

비상!!

옥상에서 서늘한 옥상에서 밤하늘을 보며 수다를 떨고 있는데

일행인 연정씨가 가방에 넣어둔 1000루피가 없어졌다며 화들짝 놀라 옥상으로 올라왔습니다.

방으로 가서 있던 배낭을 점검해보니 누군가의 손이 헤집고 다닌 것이 분명합니다.

더위를 피해 모두들 옥상으로 올라가고 전깃불이 들어왔다 나갔다 어수선해서

문단속이 제대로 안된 틈을 타서 다녀간 것입니다.

여행 떠날 때 엄마가 준 신권 만원짜리 석장과 천원짜리 넉장도 사라졌습니다.

 

숙소 주인에게 이야기했더니 즉석에서 연정씨가 잃어버린 1000루피는 돌려주었습니다만..

제 돈은 그 돈이 달러로 환산하면 얼마정도 되느냐, 전부 몇 장을 잃어버렸느냐며 같은 질문을 되풀이합니다.

아마도 0이 네개나 있는 만원짜리가 10000루피쯤 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기다리라고 말하고는 한참이 지나도록 아무말이 없기에 다시 가서 따졌더니

네가 흘렸을지도 모르니 방으로 가서 다시 찾아보자고 합니다.

'의사'라는 험상궂은 인상의 '친구'와 함께 방으로 들어와서는

'의사 친구'가 침대밑으로 몸을 굽히더니 여기 떨어져 있지 않냐며 꼬깃꼬깃 접힌 돈을 손에서 펼칩니다.

 

눈뜨고 아웅하기.

한바탕 마술쇼를 펼칩니다. 

 

라호르가 악명이 높다고 누누이 들었건만 당하고 보니 참말이지 눈뜨고 코베어가는 곳입니다.

정식 명칭<비너스 인>, 우리가 붙인 별칭<델리카트슨 인>

등장인물 : 배불뚝이 주인장, 험상궂으면서 얼빵한 삐끼, 의사를 가장한 제 3의 인물

어쩐지 방값이 너무 싸다 했더니 다 속사정이 있었습니다.

 

아침 먹고 숙소로 오니 배낭이 밖에 나와 있습니다.

어제는 25루피라더니 오늘부터 숙박비가 100루피랍니다.

이유는 어제는 파격적인 서비스 가격이었답니다.

여섯 명이라는 적지않은 숫자를 상대로 사기치기가 조금 부담스러웠나 봅니다.

음..조금 아쉽지만 델리카트슨 사람들과 이별합니다.

 

 

 

카라치~발루치스탄

 

카라치를 향해 떠나는 기차가 정각에 출발합니다.

기차는 깨끗한 편이고 2층으로 되어 있습니다. 위층은 슬리퍼, 아래층은 4인용 좌석입니다.

 

기차에서 만난 아리프는 법 공부를 한 28세 청년입니다.

카라치에 사는 친구 결혼식에 가는 중입니다. 카라치는 이번이 두번째입니다.

집은 이슬라마바드에서 네 다섯 시간 더 가야합니다.

30시간이 넘는 카라치까지 가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아리프는 찬 음료를 사준다, 짜이를 사준다하더니

점심도 사고  맛난 사과랑 포도까지 수시로 먹거리를 챙깁니다.

우르드어와 사라예끼어 선생님이 되어 질문이 많은 학생에게 차근차근 가르쳐 주기도 합니다.

덕분에 18시간 30분동안 편하고 안전하게 왔습니다.

 

밤 12시 30분에 카라치에 도착합니다.

그 시간에 숙소를 찾아 다니기가 엄두가 안나 대합실에서 날이 밝을 때까지 기다리려고 했는데

아리프를 마중나온 친구의 배려로 아리프 친구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집니다.

 

다음날 숙소를 찾아 나섭니다.

택시기사는 마땅한 숙소를 찾지 못한 채 빙빙 돌고

가는 숙소마다 남자 동행없이 여행하는 사람에게는 방을 내줄 수없다며 문전박대를 합니다.

한참만에 간신히 숙소를 잡았지만 이제 택시기사와 실랑이가 남았습니다.

 

밖은 후덥지근하고 안은 습하기만 합니다.

깨끗한 침대와 베개에서 자건만 개운치 않습니다.

택시기사와 실랑이..나와 실랑이, 눅지근하게 달라 붙은 눅눅함을 떨궈내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발루치스탄-가팔네

 

큰가팔네 집은 동네에서도 한눈에 뛸만큼 크고 멋진 새 집입니다.

가팔이 한국에서 번 돈으로 장만한 보금자리입니다.

한국에 있는 가팔이 사진으로만 본 집에 제가 먼저 옵니다.

어머니와 남동생 자한기르zahangir, 여동생 리팟rifat 그리고 삼촌이 함께 살고 있습니다.

 

"누나,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어.누나가 우리집에 있다니..."

 

전화기 저편, 한국에서 가팔의 목소리가 들떠 있습니다.

 

가팔아, 글쎄 말이다.

와보니 네가 얼마나 자랑스럽게 느껴지는지..한국에서 고생한 보람이 있네.

이 집에서 웃음많고 강단 있으신 어머니와 티없이 밝고 건강한 리팟, 너와 똑같이 생긴 자한기르

그리고 삼촌까지 모두가 얼마나 편안하고 아늑하게 살고 있는지..

부지런한 어머니는 이 귀한 집을 매일 쓸고 닦으신다.

그리고 집안 곳곳을 누비고 다니시는 발걸음에 힘이 넘친다.

 

2층에 네 방을 꾸밀거라구?

그래, 다음에 올때는 네 방을 구경시켜다오.

그 방에서 예쁜 색시를 얻어 너를 닮은 아이 낳아서 사는 모습을 보여다오.

가족들에게 내년에 올거라고 약속했다지. 누나도 다시 올 것을 약속하마.

안양 롯데리아가 아니라 이곳에서 만나자꾸나.

 

가팔이 온듯 온 가족이 반갑게 맞아줍니다.

소문을 듣고 동네 아낙들이 모여듭니다.

호기심 가득한 눈빛들이 궁금증을 하나둘 쏟아냅니다.

 

외국인을 처음 보는 아이들은 엄마 치마폭에 고개를 묻거나 등뒤에 숨었다가도

어느샌가 고개를 내밀고 유심히 바라보다 눈길이 마주칠 때마다 환하게 웃습니다.

 

가다니Gadani로 가는 길에 라자를 만납니다.

7월 20일에 왔다니 한 달반쯤 됐습니다.

라자를 이곳에서 만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즉석 저녁초대에 기쁘게 응합니다.

 

가다니는 사막을 지나 한적한 곳에 있는 아라비아 해변입니다.

일요일이면 사람들이 몰려든다는데 오늘은 한적합니다.

해변 끝에서 끝까지 결고운 모래 위를 걷습니다. 파도와 슬쩍슬쩍 장난도 치면서요.

암마랑 리팟도 같이 왔더라면  좋았을텐데..

 

자한기르말로는 발루치스탄 여인들은 바깥출입을 안하기 때문에 암마도 리팟도 이곳에 와본 적이 없답니다.

집안과 동네가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 다른 세상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넓은 옥빛 바다에서 같이 물장구도 치고 가슴 가득 바닷바람도 마시고 싶습니다.

함께 모래 위를 힘껏 달리고 바다 저멀리 까르르까르르 웃음도 날리고 싶습니다.

 

저녁초대에 갑니다.

 

데리러 온 라자가 내 옷차림을 보자 한 마디 합니다.

"누나, 식구들한테 한국에서 왕비가 왔다고 했는데 왕비옷이 뭐 그래?"

갖고 있던 옷중에서 가장 깨끗한 것으로 골라 입었건만

바지는 색이 바랠대로 바랬고 윗도리 역시 풀기 한 모금 머금지 못해 축 쳐져 있습니다.

너무했나싶어 리팟옷을 빌려입습니다. 금빛 구슬장식이 화려한 검정색 펀잡 드레스입니다.

금세 발루치스탄 여인네로 변신합니다.

 

 온 식구가 치장을 하고 차로 15분거리인 라자네 집으로 갑니다.

 

동네 사람들이 거의 가족이고 친척인지라 여인네건 남정네건 아이들이건 한껏 치장을 하고 모여듭니다.

특히나 여자들은 곱게 화장을 하고 목걸이며 팔찌를 있는대로 하고 가장 예쁜 옷을 입었습니다.

적어도 너댓개의 귀걸이와 팔이 한쪽으로 기울어질 정도로 여러 개의 반쩍이는 팔찌며 반지를 한 

그들에게 귀걸이 하나 없는 제 귀가 밋밋하기만 한가 봅니다.

 

라자는 얼마있으면 한국에서 만난 여자친구와 결혼하려고 합니다.

그 전에 부모님께 허락을 받으려고 왔습니다.

라자와 한국말로 실컷 떠들고 융숭한 식사대접을 받고 족히 100명은 됨직한 친척들과 만나고

뒷풀이로 태진아 노래에 맞춰 신나게 춤을 추는 두 명의 아이들이 펼치는 댄스쇼 보면서

입 안이 얼얼할 정도로 웃습니다.

 

 

 

<라스벨라Las Bela>

 

라스벨라에는 카슴과 작은 가팔집이 있습니다.

가팔과 카슴이 되어 떨리는 마음으로 가족들을 만나러 갑니다.

가팔과 카슴이 7년전에 떠나온 고향집입니다.

가팔이 전화할 때마다 어서오라는 말만 몇 번이고 되풀이하셨다는 엄마도,

얼굴이 검은편이라 별명이 '방글라데시 동생'이 되버린 가팔의 여동생도 보고싶습니다.

 

어머니를 뵙는 순간 왈칵 눈물이 쏟아집니다.

'너무 많이 늙으셨구나..'

천리만리 먼 땅으로 돈 벌러 떠나 돌아오지 않는 아들을 그리다 그리다 눈이 짓무르도록

눈물이 마를 날 없었구나. 그러고도 또 흐르는 눈물..

 

아들이 있는 땅에서 온 손님을 보자마자 어머니 눈에서 눈물이 하염없이 흐릅니다.

강물이 되고 바다가 되어 아들에게 닿고도 남을 눈물..

 

마침 놀러오신 카슴의 할머니 눈에서도 눈물이 넘쳐 흐릅니다.

울음섞인 할머니 말씀이 애절합니다.

"왜 내 손자는 안오고 너희들만 왔니? 카슴보고 빨리 오라고 해라. 내가 언제까지 살지 모르잖니?

다른 세상으로 가기 전에 카슴을 보고 싶구나. 보~고~싶~어~."

 

무스타파와 그의 아내와 아이들도 만납니다. 태어난지 몇 개월밖에 안된 딸도 있습니다.

70여명의 가족과 친척이 한 집에 모여 삽니다.

방글라 동생 나시마(19세), 싸미나(12세)도 만나고 가팔의 할머니 할아버지도 뵙습니다.

 

카슴이 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리는 약혼녀 쟈밀라와 엄마를 닮아 카슴처럼 선이 굵은 여동생

바리다Fareeda도 만납니다. 카슴과 가팔에게 전해줄 양으로 나시마와 바리다에게 오빠들에게

편지를 쓰라고 합니다. 사진과 함께 숙녀가 된 동생들과 만나게 하려고요.

 

집에 오니 10시가 넘었습니다.

리펏에게도 가팔오빠에게 편지를 쓰라고 하자 금세 눈물이 한가득 고입니다.

 

"보고싶은 오빠에게"

 

이제 겨우 한줄을 썼을 뿐인데..

툭툭툭.

언제난 웃음기를 머금은 리펏의 큰 눈에서 굵은 눈물 방울이 쉴새없이 떨어집니다.

 

"오빠, 나 막내동생 리펏이야. 보고싶어..."

 

흐르는 눈물을 채 닦기도 전에 또 흐르고..

7년이나 보지 못한 오빠에 대한 그리움이 절절합니다.

가팔이 되어 눈물을 닦아주고 꼬옥 안아줍니다.

 

"리펏, 조금나만 기다려. 가팔은 네 오빠답게 언제나 가족을 생각하며 열심히 일하고 있어.

그리고 가족들과 다시 만날 날을 고대하면서 잘 지내고 있어.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가슴 한가득 안은채 말야. 그러니 리펏 너도 조금만 참아."

 

암마랑 리펏과 밤에 이웃집에 마실갑니다.

 

나 : 앗살라말라이꿈~(안녕하세요)

동네사람: 말라이꿈살람~(안녕하세요)

나 : 뚬세 멜까르 봇 꾸시위(만나서 반가워요)

동네사람: 하메브위이(저두요)

나 : 뚬 랏따까나 가오기?(저녁은 드셨어요?)

동네사람 :메 까룽기(네 먹었어요)

나 : 메라남 순하헤. 아프가 까남헤?(저는 순하예요.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암마랑 자한기르, 리펏에게 배운 우르드어를 총동원해서 마실 간 집에서 수다를 떱니다.

신기하고 재미있는지 까르르까르르 웃음이 끊이질 않습니다.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쉴새없이 얘기하는 암마도 리펏도 신이 났습니다.

 

넷이서 손잡고 집으로 오는길 ,선선한 저녁 바람이 암마와 세 딸을 감쌉니다.

 

 딜세Dil Se

낮에 라자와 카라치에 갔다가 라자가 사준 비디오입니다.

꼭 한 번 보고 싶었는데 역시나입니다.

새벽 5시가 넘도록 보고 또 봅니다.

 

 

 

<라자이야기>-하나

 

2001아울렛앞에 라자가 앉아 있습니다.

 

나   : 여기서 뭐해?

라자: 여자 기다려...

나  : 약속있어?

라자: 아냐. (맘에 드는 여자에게)시간을 물어봐야 돼.

나  : ...... 

 

 

 

<라자 이야기>-

 

2001아울렛 앞에서 라자를 만납니다.

 

나 : 여기서 뭐해?

라자: 그냥..앉아 있어.

나 : 무슨 일 있어?

라자: 그냥..조금 문제 있어.

나 : 여자 친구와 헤어진거야?

라자: 응..여자친구는 나를 좋아하는데 가족들이 반대해. 다시는 만나지 말래.

        그래서 나도 마음을 바꿨어.지금 힘들어. 여자가 자꾸 전화하는데 마음 아파.

        하지만 나 안만날거야.

 

 

 

<라자 이야기>-

 

라자를 만납니다. hub바자르에서요.

 

나 :   (저도모르게 목소리가 한옥타브 올라가서)라자, 너 여기서 뭐해?

라자: (똑같이 놀라며)누나는 여기서 뭐해?

나 :    언제 왔어?

라자: 누나..여기서 만날 줄은 생각도 못했어. 나 7월 20일날 왔어.

         결혼하기전에 가족들에게 인사하려고...

나 :    누구랑 결혼하는데?

라자:  (여유있게 웃으며)있어..한국 여자.

나 :    혹시 마음씨 착한 대학생?

라자: 응..그런데 누나가 어떻게 알아?

나 :    다 알고 있어.세상에 비밀은 없어.

라자:  만난지 1년쯤 됐어. 지금 대학 4학년이야. 12월쯤에 결혼하려고.

나 :    축하해!!

라자: 누나, 오늘 저녁에 우리집에 와서 저녁 먹어.

나 :   (기쁘게)응.좋아..

 

 

 

<라자 이야기>-

 

이곳에서 만난 라자는 어엿한 이 땅의 주인입니다.

자상하게 가족 한 명 한 명을 소개하고 불편하지않게 여러 가지로 마음을 씁니다.

 

벨라에서 오는 길.

황량한 사막 한가운데 라자의 먼 친척이 사는 동네에 잠시 들릅니다.

푸르스름한 하늘의 기운이 깜깜한 사막에 감돌고 있습니다.

 

라자: 누나,여기는 전기도 수도도 없어. 아파도 병원가기 너무 힘들어 .이런데서 사람들이 살아.

나 :   그렇구나..바람이 좋아.하늘도..

라자: 그래서 여기는 선풍기가 필요없어. 그거 한가지는 좋아. 하지만 근처에 뱀이 많아서 위험해.

         아이들은 학교에 못가. TV가 뭔지도 몰라. 너무 불쌍해.

나 :   그래,그렇구나..

라자: 누나,만약에 사랑하는 사람이 여기서 살자고 하면 살 수있어?

나 :   잘 모르겠어. 하지만 살.고.싶. 어.

라자: 누나,못살아. 너무 힘들어.

나 :   그런 곳에 아주 오래동안 사람들이 살아왔구나. 지금까지.. 

 

갑자기 찾아온 손님들에게 차를 내느라 한 집에서 촛불을 켭니다.

촛불이 밝혀진 집이 사막 한가운데에 이정표처럼 서 있습니다.

촛불을 받아 든 라자의 얼굴이 빛납니다.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라자의 눈빛이 빛납니다.

 

그래, 라자야. 그렇구나. 앞으로 네가 해야 할 일이 많겠구나.

 

라자네 집에 다시 놀러갑니다.

둘짜형네 딸 둘이 어찌나 이쁘던지 자꾸 눈길이 갑니다.

몇 학년이냐고 물어보니 학교에 다니지 않는답니다.

동네에 중학교가 없어서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집에 있습니다.

 

나 :   그래도 좀더 공부를 하면 좋을텐데. 저렇게 똑똑하고 예쁜데 집에만 있어야 하다니..

라자: 나도 정말 마음 아퍼. 내가 한국에 가기전에 1년정도 아이들 모아놓고 영어를 가르쳤어.

        결혼하고 돈벌면 하나하나 바꿔갈거야. 아내에게도 잘 얘기해서 함께 해나갈거야.

        누군가 시작해야지.

 

라자는 더이상 2001아울렛앞에서 지나가는 여자들에게 시간있냐고 물어보던 라자가 아닙니다.

생각해왔던 것을 실천에 옮기려는 생각하는 젊은이 입니다.

 

라자의 사촌형이 저녁식사에 초대합니다.

레드포트를 본따 만들었다는 레스토랑에서 한끼에 400루피나 하는 뷔페입니다.

촛불조차 밝히지 못하고 밤을 보내는 사막의 사람들이 생각나 속이 짠합니다.

 

떠나기전에 암마와 리펏에게 줄 작은 선물을 고르는데 자한기르가 협조를 안합니다.

그저 주려고만하는 동생탓에 애꿎은 제 물건만 한가득입니다. 이게 아닌데..

 

후세인 집에 놀러갑니다.

할머니, 엄마, 여동생 사메라, 수메라, 막둥이 우메라까지 가족 모두를 만납니다.

전화도 자주 하지 않고 돈도 잘 부치지 않는 아들에게 농담처럼 집 살 돈을 부치라 하십니다.

큰 여동생 사메라는 여자 후세인이라고 할 정도로 닮았습니다. 어찌나 미인이던지요.

어머니께 후세인은 한국에서 건강하게 잘 지내니 걱정마시라고 말씀드립니다.

돈 많이 벌어서 올거라고..

어머니께서 모든 것은 알라신의 뜻대로 될거라며 걱정 안한다고 하십니다.

인샬라.

 

헤어질 때 엄마와 할머니께서 마치 후세인을 대하듯 꼭 안아주십니다.

수줍음 많은 우메라도 낯가림이 끝났는지 활짝 웃으며 팔찌를 건넵니다.

사메라, 수메라, 우메라를 꼬옥 안습니다.

따뜻합니다.

 

아쉬팍 동생이 하는 비디오 가게에 들르고

라자집에 가서 저녁 마실을 끝내고 오니 열한시가 홀쩍 넘었습니다.

그 때까지 밥 안먹고 기다린 식구들과 저녁을 먹습니다. 마지막 만찬입니다.

 

자한기르와 리펏 그리고 라자에게 엽서를 쓰고..짐꾸리고 아침을 먹습니다.

리펏은 땀을 뻘뻘 흘리며 집안 구석구석을 청소하고 아저씨는 신문을 읽고..

 

일상이 되버린 아침 풍경속에서 걸어나와야 할 때입니다.

떠날 시간은 다가오는데 어떻게 작별인사를 건내야 할지 막막합니다.

하지만 헤어짐은 또 다른 만남의 시작인 것을 믿습니다.

암마와 리펏을 꼬옥 안습니다.

다음을 기약하건만 흐르는 눈물은 어쩔 수없습니다.

 

기차역까지 배웅나온 라자와 자한기르와도 이별을 합니다.

마지막까지 농담을 하며 웃지만 어색하기만 합니다.

라자는 못내 걱정이 되는지 누가 말걸어도 상대하지 말고

낯선 사람이 음료수 사주면 절대 먹지 말라는둥 가방은 항상 주의깊게

챙겨야 한다는둥 당부가 많습니다.

 

기차역까지 태워다주신 운전사 아저씨에게도 감사인사를 드립니다.

슈끄리아 지, 슈끄리야,라자, 슈끄리아,자한기르..

기차가 출발합니다.

 

26시간 30분만에 라왈핀디에 도착했습니다.

밤새 자고 낮에도 조각잠을 잔 덕분인지 그리 길게 여겨지지 않습니다.

<파플러인>으로 와서 라자와 리펏에게 무사히 도착했음을 알립니다.

 

<파플러인>은 어수선합니다.

로비에 있는 텔레비전에서는 긴박감 넘치는 기자의 목소리를 담은 CNN을 하루종일 방송합니다.

911이후 세계뉴스의 초점이 되어버린 파키스탄.

졸지에 파키스탄 사람 전부를 테러리스트로 만들어버리는 서방 언론에

이곳 사람들은 할말이 많습니다. 현지인들도 여행자들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오후 3시에 출발하는 나트코버스를 타고 길깃으로 갑니다.

맨앞자리에 앉아 편하게 갑니다.

졸음에 겨워 수없이 눈주위를 창문쪽 긴쇠 손잡이에 박아댔지만..

 

911이후 상황은 점점 악화 되어가는 듯합니다.

하지만 속세의 어지러움과는 상관없이 눈앞에 펼쳐진 놀라운 풍경에 환호성을 지릅니다.

 

숙소에는 일본 여행자와 한국여행자가 세 명씩 있습니다.

6년동안 자전거로 세계를 누비고 있는 일본청년과 2년째 여행중인 여자 여행자도 만납니다.

마실 온 산악인겸 자유기고가 김창호님 덕분에 훈자에서 김치를 먹습니다.

룸메이트인 아일랜도 친구가 연주하는 기타 소리는 먼길 달려온 여행자의 지친 심신을 쉬게 합니다.

 

어제는 닫혔던 중국 국경이 오늘부터 3일동안 열려서 일본 여행자 두 명이 떠났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니 산이 가득 창으로 들어옵니다.

이토록 푸른 하늘이 얼마만이던가..레에서 보고 거의 처음이니 한달반만입니다.

 

물어물어 도착한 우체국에는 문에서 입구로 들어가는 길지 않은 길 양옆으로 코스모스가 한창입니다.

꽃분홍, 연분홍, 연보라 코스모스들이 활짝 웃고 있습니다.

환한 웃음으로 화답하니 마음밭이 환해집니다.

 

학교 마치고 집으로 가다가 앉아서 수다떠는 여고생들과 인사를 나누고

만나면 무턱대고 "곤니찌와"부터 하고보는 어른이나 아이들에게"사요나라"라고 대답해주기도 하고

밭일하시는 할머니께 인사를 건내고 마을구경도 하면서 걷고 걷습니다.

 

가을이 익어가고 있습니다.

들판에는 여전히 연노랑,연초록,진한 초록 물결이 무성한데

나뭇가지 끝에 매달린 잎사귀에서 가을이 익어가고 있습니다.

 

마을을 에워싼 눈덮인 산과 파란 하늘을 배경삼아 대추들이 제 빛깔을 내며 영글어가고

사과도 볼을 발그스레 붉히며 마을 전체를 사과향으로 물들이고 있습니다.

날개를 펴듯 팔을 쭈욱 펴고 가을을 한껏 들이마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