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2001
<인도-2001>
.일정: 2001.7월 5일~2001년 9월 2일(60일)
7월27일~8월 23일(레),8월5일~8월 8일(알치)
.여정: 반바사-(하리드와르)-리쉬케쉬-우타르카시-강나니-강고트리-리쉬케쉬-(찬디가르)-
마날리-레-스리나가르-다람살라-암릿차르
**라닥어
.사랑해-잉에 케랑 삐아르쥣(힌디어)/쎄와쥣(라닥어)
.잘지내?-컴장이나?-(컴장)인
.이름이 뭐니?-니랑 밍아 찌즈랜?-니 밍아 순하쯔랜(순하야)
.나이는?-니랑 로 짜민?-니로 숨 쮸소륵(36살이야)
.몇학년이니?-니랑 짬바(grade) 실랏?
.어디사니?-니랑 까루아(where)죽삿?-아루아(저기에)/이루아(여기에)
.뭐하니?-니랑 취줫?-양스파(놀거야)
.어디가니?-니랑 까루아 좟(go)?
.아침/점심/저녁은 먹었니?-치난/자라/곤잔 돈삐낫?-돈삔(응),마조스삔(아니)
.배고프니?-수덕사락?-챠르(배불러)
.라닥데모초락-라닥이 좋아요.
.얌 뽀다잉-같이 노래해요.
.형용사...심뽀락(맛있어),닌째모(예뻐),데모(아름다워),소데쟌(행운이야),찬띠(매워),람말차스(피곤해),닷뽀(행복해)
.부사-마(매우),굴레(천천히),딴탄(정말이야)
.명사-당(어제),디링(오늘),토레(내일),초드마(야채),차(소금),찌니(설탕),죠오(커드)똑보(강),로(나이),슈끄(수제비),
야추(눈물),누(노래)
.계절- 스핏(봄),야루(여름),스톤(가을),군(겨울)
.가족관계-아마레(엄마),아바레(아빠),아짜레(언니),누모레(여동생),아쭈어레(오빠),노노레(남동생),
아빌레(할머니),아쟝(아저씨),쟈모(친구),보모(여자),뽀모(딸),뿌자(아들),막빠(남편)
.인칭대명사- 앙아(나),니랑(당신),케랑(너),코(그,그녀)
.의문대명사-찌아(왜),취(무엇),까루아(어디)까조개(어떻게),남(언제)
.동사-쪽스(좋아한다),조오(먹다),둑(앉다),짜퉁(마시다),똥(주다),넨(받다),잘렌(만나다),젤스(말하다)
.숫자세기(1~10) :칙-니스-숨-지이-나-뚝-둔-겟-구-쮸//니쮸(20),갸아(100)
.다람살라(3시간,55루피)~파탄콧~암릿차르(3시간,43루피)~구르드와르(오토릭샤10루피)
*양찬돌마Yangchan Dolma:khakhal-(ralam)near korean gonpa,leh,ladakh
.water trek:Anchar lake(숙소에서 11km,약2시간)-샬로부lake-신드sindh강-간다르발Gandarbal(신드강이 벌판과 만나는 곳)-
샤티뽀르(낚시질),2400루피/3인(개인 부담 600루피)
.부즈바사~거묵(4km)+거묵~강고트리(18km)=22km
<리쉬케쉬>
반바사에서 하리드와르행 버스를 타고 하리드와르에서 내려서 바로 리쉬케쉬행 버스로 갈아탑니다.
찾아간 <요가니케탄>에서 한사람당 500루피를 방값으로 부르는 바람에 두마디도 않고 나와서 <그린호텔>로 갑니다.
수행자의 도시답게 신성한 기운이 흐르고 강가에 나와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서 조용하면서도 분주한 움직임이 느껴집니다.
<그린호텔>은 비교적 강가 안쪽에 있어서 조용하고 한적한 편이지만 하루종일 힌두사원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끊이질 않습니다.
카트만두에서 7월 4일 4시에 출발해서 7월 6일 오전에 도착했으니 먼길을 왔습니다.
억수로 쏟아지는 빗속을 뚫고 꼬박 이틀을 버스에서 보내고 국경을 지나서 온 길입니다.
온몸이 딱풀입니다.
초티왈라에서 저녁먹고 하리드와르로 뿌자보러 갑니다.
리쉬케시에서 24킬로미터 떨어진 하리드와르는 갠지스강이 산악지대를 벗어나 처음으로 평야와 만나는 곳입니다.
힌두교도의 중요 성지중 하나지요.
하지만 멀미를 하는통에 가고오는 내내 고생입니다.
우타르카시에 가려고 버스정류장으로 가는 도중에 정확한 버스시간을 알아보려고 여행사에 들렀습니다.
여행사직원은 대뜸 지금 우타르카시로 가는 버스가 파업을 해서 운행하지 않으니 택시를 타야 한다는군요.
택시비는 1300루피랍니다.그러면서 친절하게 자기가 택시를 예약해주겠다고 합니다.
미심쩍어하자 내가 여행사에서 일하는데 그것도 모르겠냐며 떵떵 큰소리를 칩니다.
건성으로 알았다,고맙다하고 버스정류장으로 갑니다.
오토릭샤 운전사가 다가와 우타르카시행 버스는 다른 곳에서 출발하니 그리로 가야 한답니다.
그러면서 자기가 30루피에 데려다주겠답니다.
버스시간을 물어보니 1시 30분쯤일 거라고 합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른 사람에게 물었더니 오전에만 두번 출발한다는 사람에,
새벽 5시 30분에 한번 출발한다는 사람에 제각각입니다.
그러더니 택시운전사가 다가와 한사람당 130루피에 우타르카쉬까지 가자고 합니다.세사람에 330루피에 흥정을 합니다.
덕분에 150킬로미터 되는 거리를 평균시속 40킬로미터로 주파한 끝에 5시간만에 도착합니다.
끊일듯 끊일듯 이어지는 주황색 행렬..
무엇일까요.
30도를 웃도는 날씨에 새처럼 가는 다리로 하염없이 지열이 뜨거운 길을 걷게 하는 힘은...
강나니-노천온천
강나니는 우타르카쉬에서 강고트리로 가는 길에 있는 작은 마을입니다.
노천온천이 있어서 하루 쉬어갑니다.
포효하며 폭포처럼 갠지즈강이 흐르고 비는 주룩주룩 내리는데
녹음이 우거진 산천을 보면서 하는 노천온천욕이라니요.
얼마만에 담궈보는 뜨거운 물인지..반신욕을 하고 있으려니 선경 속의 선녀가 된듯합니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물표면에 리듬감있게 떨어지는 빗방울,쉼없이 이어지는 작은 파문의 향연..
냉기와 온기가 돌림노래를 부르고 있는 몸도 신이 나는지 한껏 물먹은 산천처럼 살아납니다.
강나니에서 3시간만에 하늘에 더 가까이 올라왔습니다.
강고트리(3150).
크리슈나 아쉬람을 숙소로 정합니다.
여기저기 벽은 헐어 구멍이 나기 일보직전이고 담요를 들추기만해도 벼룩떼가 쏟아져나올것 같습니다만...
고개들어 바라본 풍경에 그만 넋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하루종일 방문앞 쪽마루에 앉아서 하늘과 산만 쳐다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나무 한그루 없는 깎아지른 바위산위에 걸쳐 있는 구름이 절경입니다
하지만 아쉬람이라는 특수공간에 대한 낯섬탓인지 등산내복을 꺼내입고
겨울옷을 입고 침낭속에 들어가 잠을 청해보지만 좀체 잠이 오지 않습니다.
시멘트 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가 침낭속으로 파고들고 공중을 떠도는 한기에 코끝이 시려옵니다.
<투어리스트 레스트하우스>로 옮깁니다.
크리슈나에 비하면 천국이 따로 없습니다.빈대 걱정없고 욕실도 안에 있습니다.
하지만 밤새 한숨도 못잤습니다.
이곳에서도 벼룩과 추위와 한바탕 전쟁을 치루었습니다.
온몸을 긁다가 끝내 마음을 접고 가려움을 잊으려 혼자 말잇기를 합니다.
한도 끝도 없이 이어지는 말말말.
아침에 침낭과 옷가지들을 전부 내다 햇볕에 널고 몸도 말립니다.
거묵-갠지즈강의 시원
점심거리로 감자를 삶아서 거묵(3894)으로 갑니다.
날씨도 '아차'하고 걸음도 가볍습니다.
2킬로미터쯤 갔을까.
그 이상 가려면 외국인은 50루피씩 입장료를 내야 합니다.
산책삼아 나온 길이니 가는데까지 가보자며 걸음을 옮깁니다.
가다보니 절반을 넘어서고 조금 더 가면 무엇이 있을까 하며
또 걷다보니 어느새 산책이 트레킹으로 바뀌었습니다.
오고가는 수많은 순례객들과 인사를 나눕니다.
거묵은 강고트리에서 18킬로미터쯤 떨어진,갠지스강이 발원하는 곳입니다.
힌두교도들에게는 아주 중요한 성지입니다.
순례객들은 크고 작은 물통을 두서너개씩 들고 있는데
갠지스강의 발원지인 거묵에서 성스러운 물을 담아오기 위해서입니다.
허름한 옷에 보기에도 애처로운 새다리를 하고 슬리퍼나 맨발차림으로 물을 이고 지고 가는 사람들..
7시간을 걸어 거묵에서 4킬로미터 못미처에 있는 부즈바사에서 묵어갑니다.
다행히 <투어리스트 레스트하우스>가 있어서 아무 준비없이 왔는데도 따뜻하게 잡니다.
고단한 몸을 뉘였지만 정신이 말똥거립니다.
제멋대로 튀어나오는 상념들과 실랑이를 하고 혼자 말놀이까지 하다가 지칠 무렵 설핏 잠이 들었는데 아침입니다.
저기
광야에
홀로 걷는 이
누구인가.
나무 한그루 없고
풀 한포기 없는
하늘과 그 아래 까마귀떼
친구삼아 걷는이
누구인가.
맨발에
얇은 모포 한장 두르고
삶의 근원에
몸담그러 가는자
누구인가.
찬양할지어다.
강의 근원 시바여
'밤밤"-"밤밤"
"볼레밤"
"볼레밤"
일주일동안 강고트리에 머물다가 리쉬케쉬로 갑니다.
빗방울이 제법 굵어진다 했더니 리쉬케쉬에 도착했을 때는 폭우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몸과 마음이 홀딱 젖습니다.
사원에서 끊임없이 들려오는 노랫소리와 어우러져 강물이 힘차게 흘러갑니다.
그리고 힘찬 함성.
'밤밤"
"볼레밤"
마날리-사과향기 가득한 마을
리쉬케쉬에서 마날리까지는 16시간의 긴 버스여행입니다.
중간에 망고 과수원에서 망고 한상자를 55루피에 사서 열심히 먹습니다.
마날리는 올드마날리와 바쉬싯으로 나뉘는데 올드마날리에 숙소를 정합니다.
나무가 무성한 산과 점점이 박힌 집들,이곳 특산물인 사과나무,옥수수밭,호박 채소밭 그리고 소울음..
아침에 가볍게 산책한다고 나섰는데 하냥 걷습니다.
다리를 건너 전나무숲을 지나 네루공원으로 와서 시내를 지나쳐 한참을 걷다가 산으로 난 길을 향해 걷습니다.
마을이 나타나고 혼자 걸으면 딱 좋을 사랑스러운 길을 따라 걷노라면 길은 또다른 마을로 이어집니다.
전나무숲의 고요.하늘향해 곧게 뻗은 나무들의 정직,사과나무에 탐스럽게 매달려 익어가는 사과의 싱그러움,
파란 하늘을 배경삼아 우뚝 서있는 설산,오가며 만나는 마을 사람들과 나누는 정겨운 인사..
길이 끝나는 곳은 어디일까요,그곳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혼돈도 좋습니다만..무념이 더 좋습니다.
소는 소대로,사람은 사람대로,릭샤는 릭샤대로 차는 차대로 제 갈길을 가는 게지요.
소의 울음소리처럼,차의 부릉거림처럼,릭샤의 가릉거림도 본디 그런 거고요.
내가 나인 것처럼 너는 본디 너였던 것이고..
길은 어디로나 열려 있을 것 같습니다.
하늘로,산으로,마을로,사과나무 사이로,구름너머로,마을과 마을을 지나 산등성이를 넘어...
번화한 말도 필요할 때가 있겠습니다만 고요가 다가옵니다.
오래도록 고요속에 가만히 있고 싶습니다.
한없이 앞으로만 나아가는 발길을 가까스로 다독여 주섬주섬 돌아섭니다.
술렁술렁 네루공원으로 들어서서 전나무숲을 걷는데 할머니 몇 분이 버섯을 따고 계십니다.
할머니들께서는 이구동성으로 이쪽으로 가면 너무 한적해서 사내들이 해꼬지할지 모르니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로 가라고 신신당부하십니다.
그래도 안심이 안되시는지 자그마한 체구의 할머니 한분이 길안내를 자청하며 앞장서십니다.
염소 한마리도 줄레줄레 따라옵니다.
할머니가 입으신 전통옷 앞자락에 버섯송이들이 가득 담겨있습니다.
골깊은 얼굴에는 고스란히 세월을 담고 계십니다.
안전한 곳까지 온 후 적이 안심되는 표정으로 이길로 쭈욱 가면 된다고 손짓하십니다.
손녀딸 걱정하듯 걱정하시는 할머니가 눈물나게 고맙습니다.
할머니를 꼬옥 안아드립니다.
키크고 덩치도 큰 이방의 손녀딸을 작은 체구의 할머니께서 더 힘껏 안아주십니다.
왈칵 눈물이 쏟아집니다.
레leh-샹그릴라 가는 길
꿈에 그리던 레로 향합니다.
로컬 버스정류장에서 400루피에 버스표를 삽니다.
길이 멀고 험하기에 입맛은 없지만 우격다짐으로 빵이며 우유,짜이를 양껏 먹습니다.
3980m의 로탕패스를 넘어야합니다.
5일만에 떠나는 마날리에 아쉬움이 큽니다만 다시 오마는 무언의 약속을 합니다.
버스는 6시간 30분만에 다르차darcha에 도착합니다.
마날리에서 다르차까지가 145km이니 시속 20킬로미터로 달린 셈입니다.
길은 구불구불 산꼭대기까지 오르락내리락을 반복하는데
채 눈이 녹지 않은 봉우리에 하얀 모자를 쓴듯한 뾰족산과 바로 그 위에 파란 하늘과 구름,
눈이 녹으면서 흘러내려 급기야는 장쾌하게 흐르는 폭포를 일별합니다.
오늘 밤은 사추sarchu를 조금 지난 곳에서 묵어갑니다.반남짓 왔습니다.
큰 텐트에서 십여명이 함께 잤는데 하룻밤에 30루피입니다.
눈부시게 밝고 환한 초승달이 빛을 발하고 별이 총총한 밤입니다.
얼굴에 한가득 별이 쏟아져 주근깨처럼 알알이 박혔으면요.
그럼 반짝반짝 빛나는 얼굴이 되겠지요.
"별들아,이렇게 얼굴을 들고 있을테니 내 얼굴에 놀러와서 별주근깨 얼굴을 만들어줘~"
별들이 우스운지 대답은 않고 반짝반짝 웃기만 합니다.
새벽 5시 50분에 계란 프라이와 밥을 우걱우걱 먹고 출발합니다.
예정대로라면 오늘 저녁이면 레에 도착하기에 한껏 들뜹니다.
2시간 남짓 갔을까.차가 고장입니다.
1시간쯤후에 다시 출발했지만 임시방편으로 고쳤는지 황소걸음입니다.
그래도 가는게 어딥니까.
하지만 결국은 팡pang캠프(4630m)에서 다시 주저앉고 맙니다.
이른 점심을 먹고 기다렸지만 차는 한발짝도 더는 못움직이겠답니다.
다른 승객들은 200루피를 더 주고 다른 차를 타고 가고 한국인 네 명만 남습니다.
레에서 차가 와야하는데 적어도 6시간이상을 기다려야 합니다.
"This is India.slowly slowly."
오늘밤 잠자리는 버스안입니다.침낭을 폅니다.
이제 겨우 8시인데 하늘도 땅도 깜깜합니다.
노다지를 캐는 광부처럼 헤드랜턴을 켜고
버스에서 만난 현령님에게 빌린 <생쥐와 인간>을 읽다가 불을 끕니다.
온통 까맣습니다.
별도 달도 없는 밤.
아침에 눈뜨자마자 히말라야를 알현합니다.
레에서 출발한 버스가 도착합니다.
얏호!
이제 몇시간후면 레에 도착합니다.
운전사와 차장아저씨는 듬직한 체구의 시크교도입니다.
넓고 단단한 어깨,힘있는 팔뚝 그리고 균형잡힌 몸 전체에서 발산되는 에너지로
안정감있고 속도감있게 운전하는 아저씨,"쨩"입니다.
5328m의 타그랑라를 넘어 가다보면 'Leh 89km'라고 적힌 이정표가 눈에 확 들어옵니다.
Welcome to LADAK
마침내 그토록 오고 싶었던 레에 닿았습니다.
그저께 오전 7시 30분에 마날리에서 출발했으니
2박 3일,정확히는 55시간 10분만에 도착했습니다.
한동안 이곳에 머물면서 레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렵니다.
버스정류장에서 한국절로 가기 위해 택시를 탑니다.
"Korean Temple is here."
택시기사가 다왔다며 차를 세우는데 기와도 단청도 안보이고 현판도 없습니다.
절은 레 특유의 주택양식을 본따 지어서 주변의 집들이며 산천과 어우렁더우렁 어우러집니다.
한동안 머물 생각으로 왔건만,주인은 없고 마당에는 개 두마리가 늘어지게 자고 있습니다.
한 녀석은 낯선 이들이 나타났건말건 모르새고 다른 녀석은 줄레줄레 따라오며 참견입니다.
빨랫줄에 걸린 빨래들이 집주인이 곧 올거라고 말해주는듯 합니다.
어스름한 저녁,스님은 여전히 아니오십니다.
근처 게스트하우스에서 하룻밤 묵습니다.
전깃불도 없고 씻을 물도 없는데 주인 할머니께서 내주시는
버터차와 랏시의 시큼한 맛이 입안에 생기를 돋웁니다.
아침에 대청보사에 다시 가니 어제 잠깐 뵌 한국스님 두 분이 아침 준비를 하십니다.
근대국에 밥,김치,계란찜..성찬입니다.
대청보사 바로 옆에 있는<CH NO.6>에 방을 구합니다.
열아홉살인 큰딸은 찬디가르로, 열한살인 아들은 쉼라로 유학보내고
부부가 맞벌이하며 깨끗하고 아담하게 꾸며놓고 사는 집입니다.
햇빛이 한가득 들어오는 넓은 창이 있는 방이 한사람당 80루피.마음에 꼭 듭니다.
줄레JULLE~
탁툭곰파에서 오늘과 내일 축제를 합니다.
실컷 축제 구경하면서 하루 자고 올 요량으로 큰 배낭에 이틀거리 짐을 챙겨 삭티로 갑니다.
음악은 느리면서 우울하고 춤추는 스님들도 단순한 동작에 거의 변화가 없습니다.
점심먹고 이어지는 무대도 비슷합니다.
하는 수없지요.
무지한 중생이 동작 하나하나의 깊은 뜻을 눈곱만큼도 이해하지 못하니..짐싸들고 다시 올 수밖에요.
한아름 장을 보고 집으로 오는 길.
하나는 어깨에,다른 하나는 손에 물통을 들고 가시는 할머니를 만납니다.
너무 무거워보여 얼른 물통을 받아듭니다.
할머니는 집 근처에 오자 집에 들어와서 차 한잔 하고 가라고 하십니다.
우유에 소금과 버터를 넣은 위구르차와 우유에 설탕과 버터를 넣은 장하르모라는 차를 주십니다.
집집마다 차맛이 다르다는데 할머니네 차는 맑고 담백해서 몇 잔을 마십니다.
엊저녁부터 밤새 풍악소리가 그치지 않더니 오늘도 이어집니다.
마을축제입니다.
힘차게 치는 북소리, 간드러진 나팔소리에 이끌려 소리나는 곳으로 갑니다.
이웃한 세 마을 사람들이 어울려 춤도 추고 활쏘기 시합도 하고 음식도 서로 나누면서
이틀동안 흐드러지게 놀면서 우의를 다지는 축제입니다.
전통의상을 차려입고 춤을 추는 여인들의 내디딜듯말듯한 발놀림과 살짝 치켜든 손가락,
유연하게 돌아가는 허리, 아스라한 미소에 마음을 빼앗깁니다.
어제 만난 할머니께서도 한껏 멋을 내고 오셔서 설핏설핏 수줍게 웃으시며 춤을 춥니다.
전깃줄에 앉은 참새들마냥 담벼락 위에 나란히 앉아 신기한듯 보고 있는 올망졸망 꼬맹이들도 이쁩니다.
미정님..
양지바른 곳에 의자를 내놓고 책-<신실크로드>,수문출판사,1994-을 읽고 있는데 누군가 문을 두드립니다.
햐아~이쁜 미정님입니다.
어제 영화보고 왔더니 이미 다녀갔길래 못내 섭섭했는데 반가운 손님입니다.
언제나처럼 생글생글 웃으며 오늘 떠나려고 작별인사하러 왔답니다.
카트만두와 마날리 그리고 이곳 레에서 만난 인연.
만날 때마다 하냥 반가운 길벗입니다.
전생..
나는 어디서 태어난 것일까..
그야 충남 대덕군 진잠면...이잖아.
혹 레에서 태어난건 아닐까.대청보사 옆집에서..
쌀가루를 뿌려놓은듯 설산이 눈앞에 있고
하늘향해 곧게 뻗은 나무사이를 지나 거칠 것없이 날아다니는 새들의 날개짓 소리가 들리는..
모를 일이지.
생일..
오랜만에 부모님께 엽서를 씁니다.
한자한자 정성들여 꾹꾹 눌러씁니다.
어머니,아버지
건강하시지요.
저도 잘 지내고 있습니다.
세상구경도 하고 제 마음속 풍경도 보고
세상 사람들도 만나고 제 자신도 만나고 있습니다.
이렇게 오래오래 천천히 여행하다보면 만나지겠지요.
급할것없는 걸음으로 가만가만 걷다보면은요.
사심이 없다고 어머니께서는 늘 걱정하셨지만 저는 늘 아무 마음도 없고 싶습니다.
들고나는 마음없이 살려구요.
그러러면 얼마나 풍요롭고 여유가 있어야할까요.
얼마나 부지런하고 나눌 것이 많아야할까요.
마음이 있으니
가다보면,
가다보면 만나지겠지요.
음력보름
달님을 마중하러 초저녁부터 하늘을 우러렀지만
하늘엔 하나 가득 먹장구름이 진을 치고 있습니다.
불이 들어오지 않는 밤.
먹장구름 사이로 보름달님이 뽀얀 얼굴을 살짝 내비칩니다.
아이~어여뻐라~
알치Alchi
레에서 60km 조금 더 되는 길을 3시간만에 옵니다.
알치에 가려고 짐맡기러 온 현령님도 함께 갑니다.
알치..
살구가 흐드러진 마을입니다.
사과가 익어가는 마을입니다.
나무마다 흥부네 자식들마냥 사과와 살구가 당알당알 매달려 있습니다.
크기만 보면 저것이 살구인지 사과인지..
집집마다 마당에는 고만고만한 살구와 사과가 뒹굴고 있습니다.
라닥에서 꼭 가봐야 할 곳이 알치라지요.
사람들의 마음을 빼앗아 간 것은 무엇일까요.
꼭꼭 쟁여둔 사심 한조각까지 모조리 가져갈듯한 알치의 바람은 아닐른지요.
깍아지른 암벽산 아래로 흐르는 인더스강과 결고운 모래가 주는 조화와 자유때문일까요.
어쩌면 거위가 황금알을 낳듯 산골짜기에서 밤마다 떠오르는 달님과 매일밤 만나고 싶어서인지도 모릅니다.
아침 산책길,
강가로 나가 신발과 양말을 벗고 결고운 모래를 베개삼아 하늘을 향해 눕습니다.
앉아서 보던 강과 산과 하늘과는 다른 세상입니다.
강물은 몸속으로 흘러들어와 출렁이고
하늘도 고스란히 몸속으로 들어와 강물에 훤히 비추다가 강물과 함께 흘러갑니다.
당신도 바람결에 들어와 속살거리다
석류알터지듯 세포 하나하나 까르륵까르륵 터뜨려놓고 가셨으면요.
아침 먹으러 간 가든레스토랑 마당 한켠에서 살구를 한아름 줍습니다.
깨끗이 씻어 하얀 접시에 담으니 한가득입니다.
보기만해도 사랑스러운 살구들이 접시에 한가득 있는 모습이 아침식단을 풍성하게 합니다.
그 중 가장 앙증맞고 사랑스러운 녀석을 골라 입안에 넣습니다.
제 몸의 절반은 되는 씨앗을 품은 살구는 깨무는 순간 입안에 생기와 활기를 불어넣습니다.
살구씨가 앞에 쌓이고 그 중 몇 개를 골라 공기놀이를 합니다.
추억놀이를 합니다.
초결스님이 심장재단 후원자인 두명의 일본 사람들에게 알치를 안내하러 오셨습니다.
잠시 후에 레로 돌아간다기에 현령님과 함께 얹혀갑니다.
오는 길에 리키르Lekir곰파에 들릅니다.
대웅전 한가운데 만다라가 모셔져 있습니다.
색색의 돌가루가 꽃이 되고 새가 되고 사슴이 되었습니다.
지상낙원입니다.
일년에 한번 만다라를 만드는데 오늘은 일주일동안 보존했던 지상낙원의 마지막 날입니다.
북소리 나팔소리에 맞춰 스님들이 경을 읽습니다.
큰스님께서 먼저 만다라에서 돌가루를 조금씩 집으시고 이어서 몇 개의 손들이 지상낙원을 쓸어담습니다.
만다라를 만들었던 돌가루를 품고 있으면 액운을 물리친다지요.
여행자나 스님이나 바램은 한결같아서 지상낙원의 한조각을 소중하게 가슴에 품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지상낙원의 일부를 갖고 싶어하는 꼬마 스님들의 욕심도 그저 사랑스럽기만 합니다.
어느새 만다라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스님들이 특유의 모자를 쓰고 깃발을 앞세우고
줄지어 인더스 강줄기가 흐르는 마을 어귀까지 갑니다.
그곳에서 다시 의식을 행하고 지상낙원을 강물에 흘려보냅니다.
umla와 phey 마을도 들릅니다.
처음 이곳에 왔다는 두 일본인은 다가오는 풍경에 감탄을 연발하며 사진찍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열두 가구가 한 마을을 이루고 사는,큰 도로에서 차로도 한참을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 작은 마을입니다.
보리추수를 혼자 하고 계시는 할머니께서 정답게 인사하십니다.
줄레~
고요한 절집,
때이르게 핀 코스모스,마당 한가운데서 늘어지게 자고있는 검둥이,제 세상을 만난 참새들의 왁자한 수다,
텅빈 빨랫줄,연이은 줄을 타고 올라오는 덩굴의 왕성한 꿈틀거림
그리고 이 모든 것과 상관없는 소리없는 아우성,아우성.
이웃사촌인 소남빨모 언니는 쌍둥이인 양첸돌마와 린첸돌마 그리고 막내딸 군장돌마 이렇게 세딸이 큰 재산입니다.
열여덟살에 결혼해서 지금은 마흔입니다.
쌍둥이 두 딸은 열일곱이고 막둥이는 열한살입니다.
집앞 개울가에서 아는 라닥어 총동원해서 깔깔거리며 수다를 떱니다.
어느새 빨모언니는 집에 가더니 마당에 심었던 양배추 한통과 순무 네뿌리,당근 대여섯개를 가져와
시냇물에 씻더니 맛있게 해먹으라며 건넵니다.
언니두 참..두체체~
소데쟌Luckey!!
린첸돌마를 따라 집으로 놀러갑니다.마당 한가득 파며 무,당근,양배추가 풍성합니다.
언니는 구르구르차를 준다, 짜이를 내온다, 과자를 권하고 계란을 삶느라 분주합니다.
린첸돌마에게 라닥말을 배웁니다.
언니는 분주한 와중에 연신 차를 따라 주기도 하고 환하게 웃으며 춤과 노래도 가르쳐줍니다.
1년이상 여행할 계획이라는 말에 깜짝 놀라며 부러운 눈빛으로 말합니다.
"순하 소데쟌"(순하야,너는 좋겠다)
저는 결혼해서 이쁜 딸이 셋이나 있는 언니더러 소데쟌이라고 합니다.
저는 언니가,언니는 제가 부러운 걸까요.
린첸돌마는 올해 10학년을 졸업하고 몇 개월후에는 다른 학교로 진학할 예정입니다.
선하고 맑은 큰 눈과 야무진 입매, 환한 웃음, 똑부러지게 말하는 이쁜 린첸돌마의 꿈은 초모(비구니)가 되는 것입니다.
벌써 빨모언니의 허락도 받았습니다.
그녀가 입고 있는 분홍색 셔츠 중간 단추가 떨어져 핀으로 임시방편을 했습니다.
내 파란색 셔츠를 린첸돌마가 입으면 예쁠 것같습니다.
집에 가서 파란셔츠를 가져와 린첸돌마에게 주자 좋아합니다.
어느새 갈아입고 온 모습이 어찌나 환하던지요.
열일곱 소녀가 활짝 피어나는 것같습니다.
"린첸, 고마워.나야말로 너를 만나서 소데쟌이야."
양첸돌마의 아버지는 술주정뱅이였답니다.
린첸돌마의 깊고 아름다운 눈속에 담긴 슬픔 한조각은 아버지였던가요.
해맑은 군장돌마와 언니의 환한 표정은 얼마나 좋은지요.
오늘도 집앞 시냇물은 뿔루뿔루 흐릅니다.
걀네 식구들이 들일을 하고 있습니다.
첫째 앙모가 징빠 가득 점심을 담아오고 찻통을 든 씨마와 익찐이 그 뒤를 따릅니다.
노래 배우러 갔다가 얼결에 들에서 대식구와 점심을 먹습니다.
밥에 사브지를 얹어주는 소박한 식사지만 꿀맛입니다.
밥값도 하고 흥겨움도 더하려 <구찌구찌호따헤>를 멋드러지게 부르자 인기만점입니다.
아첸,린첸,군장돌마랑 소남언니 심부름으로 빵이랑 치즈를 사러 갑니다.
앙죽네 집앞을 지나다 앙죽엄마와 아빠를 만납니다.
앙죽릴람이 저를 보자마자 라다키같다고 합니다.
신이나서 "두체체~"를 연발합니다.
작곡가이자 만능연주자이기도 한 앙죽릴람은 인기가요인 <라닥까스똔>의 작곡자입니다.
흥얼거리며 연이어 라닥까스또네를 듣습니다.
앙죽은 제 아빠노래에 맞춰 춤을 춥니다.
다음날은 그가 작곡한 명상음악을 듣습니다.
불이 들어오지 않는 밤.
푸르스름한 빛어 새들어오고 고요한 방안에 음악이 가득합니다.
온세상이 하얗게 바뀌고 밤새 내린 눈위를 혼자 걷는듯 합니다.
어루만져지고 위로받습니다.
양 간을 안주삼아 반병 남짓한 럼을 마시고 행복해하며 나선 밤길.
까만 어둠 속에 푸르스름한 빛이 감돌고 흥에 겨워 부르는 <라닥까스똔>에 맞춰 별님들도 반짝입니다.
떠나기전에 초콜릿을 삽니다.
임자있는 초콜릿들입니다.
첫 임자인 할머니에게 갑니다.
할머니는 풀베기하러 나가시고 델과 며느리만 있습니다.
마침 점심참을 내가려던 참이라 함께 들로 갑니다.
일꾼 여섯,에 할머니,델삼촌...
어제에 이어 오늘도 들판에서 점심을 먹습니다.
티쓰루 스투파에 올라가 하늘을 향해 눕습니다.
한달 가까이 있으면서 저 하늘 한조각도 마음에 담아가지 못합니다.
낮이나 밤이나 하늘을 우러렀으면서도 마음속 풍경하나 바꿔놓지 못합니다.
하늘을 닮은 레 사람들과 매일 어울리면서도 그들의 미소 한조각 닮지 못합니다.
Life is...
Everything is like a dream.
You should hit and expect echo the sound of dream.
내일 여섯시에 떠나는 표를 예매합니다.
소남언니네로 인사하러 갑니다.
언니는 내일 떠난다는 말에 밀크티를 내고 코낙을 연신 따릅니다.
과자를 먹으라고 성화고 귀한 달걀 3개를 깨서 프라이를 하고
언제나처럼 웃으며 농담을 하지만 서운한 마음은 어쩌지 못합니다.
그동안 정들었던 얼렝이가 눈물을 참지 못합니다.
양첸돌마도 울음을 떠뜨립니다.
아기 양첸이라고 놀리며 꼬옥 안아주었지만 쉽사리 울음을 그치지 못합니다.
소남언니가 버스타고 가면서 먹으라며 과자를 싸줍니다.
극구 사양하다가 언니의 마음이 느껴져 한아름 받아듭니다.
그렇게 만나고 헤어집니다.
서로의 건강과 안녕을 빌며 작별합니다.
레에서 280km떨어진 드라스에 오후 5시 30분에 도착합니다.
오늘밤에 묵을 곳은 까길이 아니라 드라스입니다.
350루피나 하면서 형편없는 숙소를 뒤로 하고 고단한 심신을 뉘일 곳을 찾습니다.
깨끗해보이는 투어리스트 방갈로Tourist Banglou는 이미 모든 방이 "FULL"입니다.
다른 마땅한 숙소가 없어서 어디라도 좋으니 하룻밤 묵어갈 수있기를 사정합니다.
그리하여 아직 공사중인 방에 묵습니다.양면이 전면유리인 glass room입니다.
휑한 방에 달랑 깔개 하나 깔려있습니다.하지만 이것도 황송합니다.
게다가 방값도 "As you like"랍니다.
덩그마니 방안에 앉아 있자니 커튼이 달려 있지 않아서 유리창 너머로 밖이 환히 보입니다.
지나던 투숙객들이 신기하고 우스운지 눈을 떼지 못합니다.
졸지에 투명유리 속에 갇혀(?) 구경거리가 됩니다.
금세 날이 저물고 밖은 바람이 거세 나뭇잎이 사정없이 흔들립니다.
방 인심을 쓴 지배인이 따끈하고 달짝지근한 짜이(밀크티)를 권합니다.
새벽 3시.
소남 언니가 싸준 과자와 짜이로 이른 아침을 먹고 출발합니다.
소남마르그를 거쳐 스리나가르에 도착하니 10시 30분.
몇번인가 머리를 쿵쿵 박고 엉덩이도 들썩들썩하면서 왔습니다.
찾아간 하우스보트에 숙박객은 한국인 한 명이 전부입니다.
소문이 흉흉한 스리나가르 사정을 대변하는듯 합니다.
방값은 세끼 식사를 포함해서 150루피.
주문할 것도 없이 주는대로 점심을 먹고 나서 깊은 잠의 나락에 빠집니다.
달호수에 떠있는 하우스보트들,연꽃바다,시카라를 타고 유유히 오가는 사람들..
풍경은 아름답기만한데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레의 하늘과 구름,사람들,나무,길,코스모스가 눈에 선합니다.
어쩌자고 레를 떠나왔을까.대체 무엇이 충분했단 말인가.
근처 회교사원에서 기도소리가 크게 들려올수록 레의 고요가 그리워집니다.
시냇물소리,참새들의 지저귐,소울음,할머니의 웃음,소남언니와 아이들..
"앙..나,돌아갈래~"
WATER TREK
1박 2일 여정으로 트레킹을 떠납니다.물길을 따라가는 WATER TREK입니다.
몸과 발이 편한 트레킹입니다.
두명의 시카라맨이 노를 젓고 밀크티도 만들고 점심도 준비합니다.
세 명의 트레커(?)들은 시카라의 움직임에 몸을 흔들며 장단맞춰 돌림노래를 부르고 연꽃바다도 구경합니다.
그러다 꼬맹이들에게 손을 흔들고 시카라타고 오가는 사람들과 인사하고
난생처음 킹피셔도 보고 책을 읽다가 한숨 잡니다.
참 발편하고 속편한 트레킹입니다.
점심먹고 후식으로 연자밥을 먹습니다.갓딴 햇밤맛입니다.
시카라 주인인 라시드아저씨는 올해 마흔입니다.
그의 시카라는 'Heaven of Flower'입니다.
어떤 염원을 품고 이런 멋드러진 이름을 지었을까요.
7시 넘어 간다르발에 시카라를 정박하고 푸른 초원에 담요를 깔고 저녁을 먹습니다.
달님도 뽀오얀 얼굴을 내밀고 별님도 하나둘 반짝입니다.
바람없는 밤.
누워서 하늘과 마주합니다.
휘이익 지나가는 별똥별을 보며 "남북.."
채 "통일"을 빌기도 전에 별똥별은 사라져 버립니다.
오늘밤 잠자리는 초원위의 작은 텐트입니다.
브레이크없는 자동차처럼 레로만 달려가는 마음을 가만히 다독입니다.
다음날 라시드아저씨는 연자밥을 따줍니다.
풋풋한 햇밤을 닮은 연자밥 향이 입안에 가득한데,어느새 연자밥대신 숩스를 까먹는 착각에 빠집니다.
소남언니는 목에 걸리지않게 천천히 먹으라고 연신 당부를 하고..
소남언니도 린첸돌마도 나도 열심히 까먹은 통에 금세 절집 대문앞엔 숩스껍질이 널려 있습니다.
행여 스님이 와서 듣기싫은 소리 할세라 냉큼 달아나자며 서둘러 달아나는 시늉을 하니
린첸도 소남언니도 까르르까르르 웃습니다.
보고 싶습니다.그립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니 6시 입니다.
라시드아저씨,술탄아저씨 고맙습니다.
천리만리 마다않고 금방이라도 달려갈 것처럼 레로 치닫는 마음을 주체못해 서둘러 떠난 곳인데,
한시간 동안 혼자 간다르발 초원에 앉아 노래부르며
느릿느릿 강물위를 떠다니며 밤하늘을 베개삼아 안온하게 꿈꾸며 작별을 합니다.
얼렝이 메일
언니의 비밀을 알았어요.
언니가 이를 자주 닦는 이유는?
-크게 웃기 위해서지요.(레에서 눈치챘지만 말 안하고 있었어요)
이제 내일 잠무로 떠나면 레와는 조금 더 멀어집니다.
어쩌면 다시 만날 날이 그만큼 더 가까워지는 건지도 모릅니다.
레로 떠나는 이에게 양찬돌마에게 쓴 엽서를 부탁합니다.
그리움이 한껏 담겨있습니다.
잠무를 거쳐 다람살라에 도착해서 숙소를 알아보다가 영주를 만납니다.
영주는 다람살라에 열흘정도 있었고 모레는 비자때문에 떠날 예정이랍니다.
같이 자장면을 먹으러 가자는 말에 눈이 휘둥그레집니다.
다람살라에서 자장면이라니요.
이곳에서 살고 있는,음식을 아주 잘 만드는 한국인이 초대를 했는데 '오늘의 메뉴'가 자장면이랍니다.
어젯밤 꿈이 뭐였더라~배고프던 차에 횡재합니다.
다람살라 풍경은 얼핏 마날리를 생각나게 합니다.
녹음도 푸르고 걸어다니고 싶은 길들도 사방으로 열려 있습니다.
박수나 폭포까지는 중심지에서 30분남짓 걸립니다.
마날리에서 레로 오는 길에 장쾌하게 쏟아지는 폭포들을 보았기에 푹포자체는 큰 감흥은 없습니다만
한동안 하우스보트에 갇혀(?)있다가 맘껏 걸어다니니 좋습니다.
델리로 가는 두 명의 여행자를 배웅하고 세븐힐SEVEN HILL에서 영주와 차를 마십니다.
창밖엔 달님이 가득차 오고 찻집에는 한국사람들이 많습니다.
인사동 어디 찻집에라도 온듯 합니다.
달라이라마가 거주하는 왕궁은 아담하고 정갈하게 가꾸어져 있습니다.
왕궁옆에 있는 티벳박물관은 티벳독립의 염원을 담아 티벳의 어제와 오늘을 보여줍니다.
FREE TIBET!!
몬순이 지나갔다더니 오전에 쨍하던 햇빛은 어느샌가 자취를 감추고 비가 공세를 시작합니다.
방문앞에서 빗소리를 들으며 책을 읽고 있는데 스르르 졸음이 찾아옵니다.
간만의 낮잠입니다.
두어시간 자고 일어나야지 했는데 자고나니 저녁입니다.자그마치 5시간 30분이나 잤습니다.
하지만 말끔히 세수하고 거울앞에 선것마냥 개운합니다.
파탄곳에서 암릿차르로 가는 길.
환상적인 길이지만 경적을 쉼없이 울리며 속도와 경쟁을 하는 건장한 시크교도 운전사옆에 앉아오면서
가슴이 콩알만해집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짜이 두 잔 마시고 맨발로 황금사원을 걷습니다.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 맨발이 닿으니 명징해집니다.
사원 2층에서 해돋이하고 올라간 3층에서
정성스럽게 3층 바닥의 먼지를 쓸고 있던 구르세브 싱을 만납니다.
싱은 바닥을 먼지 하나없이 만들고는 사원을 구경시켜주겠다며 조용히 앞장섭니다.
영어라고는 기초단어 몇마디가 전부인 그가 사원 곳곳을 안내합니다.
박물관에서 만난 신심이 깊은 할아버지는 자상하게 박물관에 걸려 있는 그림 하나하나의 의미를 일깨워줍니다.
싱은 조금 떨어져서 가만히 듣고 있습니다.
한시간 이상 박물관 탐방을 마치고 나니 시크교가 좀더 가깝게 다가오는듯 합니다.
할아버지와 싱덕분에 훨씬 친근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싱은 시크교의 상징인 칼루(팔찌)와 빗 그리고 염주를 사줍니다.
근처에 있는 잘리안왈라 공원은 200여명의 시크교도들이 학살된 현장입니다.
오늘은 산책나온 가족들이 담소를 즐기기도 하고
한가로이 낮잠을 자는 이도 있습니다.
따뜻한 햇빛과 바람이 상처를 가만가만 다독입니다.
싱이 서늘한 바람이 부는 나무그늘아래서 노래를 부릅니다.
사레가마~(네히헤~)
사레가마~(허엉어~)
떼레네노 메레네노 세~
정성스레 대리석 바닥을 쓸어낼 때만큼이나 노래하는 모습에도 정성과 기쁨이 담겨 있습니다.
노래를 가르쳐줄 때에도 서두르지도 앞서가지도 않고 한소절씩 부릅니다.
암릿차르와 일별이 끝나갈때쯤 싱과도 이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