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마온 히말라야(핀다리.카프니 빙하트레킹)-2010
<핀다리 카프니 빙하 트레킹-2010>
.일정: 2010.4.10 - 4.19(10일)
.여정: 코사니-(바기스와르)-(바라리) - 송song - 어퍼로하켓 - 카티 - 푸키아 - 핀다리 빙하(3820)- 드왈리 - 카티야 -
카프니 빙하(3800)- 드왈리- 카티 - 다쿠리 - 코사니
.경비: .퍼밋- 어퍼로하켓 입구에서 받는다. 60루피(매표소가 따로 없다. 어퍼로하켓에는 숙소가 두 곳 있는데 입구에 있는
첫번째 숙소 사무실에서 퍼밋을 발행한다. 이따금 매표원이 없어서 퍼밋없이 트레킹을 하는 트레커들도 있다.
(트레킹중에 퍼밋검사를 하지는 않는다)
.숙박비- 어퍼로하켓80/dorm, 카티200/dbl, 푸키아150/dorm, 드왈리300/dbl, 카티야150/dorm, 다쿠리220/dbl
.식비-고도가 높아지면서 식비가 올라가는 네팔 트레킹과는 달리 고도와 식비는 큰 상관이 없다.
대부분 식당이 따로 없어서 묵는 숙소에서 해결. 밥+사브지(야채요리)-40루피(약 1달러)
.준비물 : 침낭(필수. 숙소에 담요가 있긴 하지만 고도가 높아질수록 침낭에 담요까지 덮어도 춥다), 장갑,
모자(겨울용, 햇빛가리개용), 슬리퍼, 선크림, 비상식량(짐을 가볍게 하기 위해 최소화)
방한복(일교차가 심해서 한낮에는 덥고 햇볕이 따갑지만 저녁에는 으스스하다)
*텐트(초경량 텐트가 있을 경우 이따금 빈대와 벼룩도 나오는 숙소에서 자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숙박시설이 없는 핀다리빙하에서 야영을 할 수도 있다.)
.1일 : 코사니(버스,3hr,37루피) - 바기스와르(버스,1hr 30min,25루피) - 바라리(합승지프,30min,25루피) - 송 - upper로하켓
.트레킹 기점..송Song. 코사니에서 송까지 단번에 가는 공공 교통편이 없어서 세 번 갈아탔다.
.송~upper로하켓: 가파른 오르막, 2시간.
.2일 : upper 로하켓 - 다쿠리 패스(2,800,,4hrs) - 다쿠리(30min) - 카티(2210,3hrs) , 8시간
.3일 : 카티(2210) - 드왈리(2,575, 4시간) - 푸키야(3260, 2시간) : 6시간
.4일: 푸키야-핀다리빙하(3820)-푸키야-드왈리(2,575): 6시간 30분
.5일: 드왈리-카티야 :3시간+주변 산책(1시간 30분)
.6일: 카티야-카프니 빙하(3800)-카티야-드왈리 : 9시간
.7일: 드왈리-카티: 5시간
.8일: 카티
.9일: 카티-다쿠리: 4시간 30분
.10일: 다쿠리-송: 4시간
송-바라르(합승지프,20루피)-바기스와르(합승지프,30루피)-고루(버스,20루피)-코사니(합승지프,15루피)
<1일>
.코사니 - 바기스와르 - 바라르 - 송 - 어퍼로하켓: 7시간(이동) + 2시간(트레킹)
열흘동안 코사니에 머물면서 새벽같이 일어나 꾸마온 히말라야를 알현하기 위해 달려갔다.
하지만 쾌청한 날이 드물어서 감질만 났다.
해뜨기 전 꾸마온 히말라야는 검은 고독이다.
그러다 서서히 해가 떠오르면 검은 산은 정상부근부터 벗겨지면서 순백의 위용을 드러낸다.
하지만 감탄할 틈도 없이 순식간에 구름이 피어오르면서 산 정상부를 가리기 시작한다.
그러다 오후가 되면 어김없이 산 전체를 휘감는다.
순백의 쿠마온 히말라야를 알현하기 위해 열흘 내내 새벽같이 일어났지만
온전한 자태를 감상하기가 쉽지 않다.
며칠동안 숙소에 다른 숙박객이 없어서 마치 숙소 2층 전체를 전세낸 양 휘휘 저으며 지냈다.
어느 날 한 여행자가 왔다.
그에게서 바람냄새가 났다.
풀냄새, 나무냄새, 흙냄새도 났다.
그는 막 빙하트레킹을 마치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그에게 생생한 정보를 듣자마자 다음날 바로 설산과 빙하를 보기 위해 떠났다.
큰 배낭은 숙소에 맡기고 가볍게 걷기 위해 짐을 최소화했다.
트레킹 기점인 송song까지 단번에 가는 대중교통편이 없어서 일단 버스를 타고 바기스와르로 향했다.
바기스와르는 코사니와는 비교도 안되는 큰 마을이다.
시장도 제법 크게 형성되어 있어서 트레킹에 필요한 어지간한 물건들은 손쉽게 구입할 수 있다.
시장 구경을 하고 유명한 힌두사원에 들렀다.
신께 간절히 염원해야 할 일들이 많은 중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마음을 정히 하고 시바신께, 가네샤신께 꽃을 봉헌하며 빌고 또 빈다.
사람들의 옷차림이 유난히 화려하고 마을에 생기가 돈다했더니
마침 오늘이 사내 아이들이 힌두의식에 따라 삭발식을 하는 날이다.
코사니에서 아침 일찍 출발했건만 직행편이 없어서 몇 번을 갈아타느라
트레킹 기점인 송Song에 다다르니 3시가 훌쩍 넘었다.
송은 길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집과 상점들이 있는 마을이랄 것도 없는 작은 마을이다.
길을 잘 아는 동네 사람들이 길잡이가 필요하지 않은지 물어 온다.
물론 안필요하다.
오랜만에 히말라야 자락에 왔다.
열흘간 천천히 걸으며 설산과 빙하를 만끽할 생각에 한껏 들떠 걸음을 내딛는다.
송에서 걸어서 두시간 거리인 어퍼 로하켓까지는 도로길이 나 있다.
안그래도 송까지 타고 온 합승지프 운전사는 돈을 더 내면 어퍼로하켓까지 태워주겠다고 했다.
시간 단축과 에너지 비축을 위해 이따금 어퍼 로하켓까지 차로 이동하는 트레커가 있는 모양이지만 그럴 마음은 조금도 없다.
한걸음 한걸음 천천히 걸으며 히말라야의 품에 안길 것이다.
에둘러가는 도로길대신 지름길을 택한다.
아랫마을 로하켓에서 윗마을upper 로하켓까지는 가파른 오르막이다.
어퍼 로하켓으로 가는 오르막길이 숨가쁘다.
마음은 점점 가벼워지고 상쾌해지는데 첫날이어서인지 몸은 무겁다.
넘치는 의욕과는 달리 몇 걸음 걷다 멈추고 뒤돌아보곤 한다.
마지막 오르막을 치고 올라갔더니 어퍼 로하켓이다.
기대와 달리 마을은 조금 떨어져 있다.
숙소 두 곳중 가까운 곳으로 갔다.
다른 숙박객은 없다.
퍼밋을 사고 저녁을 주문했다. 밥과 사브지.
주인장이 머슴밥을 주고도 밥이 더 필요한지 묻는다.
밥 인심 한 번 넉넉하다.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할 생각에 밥을 먹고 일찌감치 잘 준비를 한다.
다인실 병동처럼 침대가 일렬로 나란히 붙어있는 도미토리.
언제 트레커가 다녀갔는지 사람의 온기라곤 없다.
밤이 되자 기온이 급작스럽게 내려가고 바람은 심하다.
얼음장같은 차가운 물로 대충 씻고 불을 껐다.
온전한 어둠 그리고 적막.
<2일>
.어퍼 로하켓 - 다쿠리 패스(2,800m) - 다쿠리 - 카티(2210m): 8시간
upper로하켓에서 다쿠리패스까지도 계속되는 오르막이다.
울긋불긋 흐드러진 랄리구라스의 향연이 없었다면 목마르고 힘겨운 길이다.
다행히 이따금 찻집이 있어서 밀크티를 마시며 다리쉼을 한다.
트레커는 보이지않고 앞서거니뒤서거니 걸으며 카티까지 가는 현지인들이 길동무다.
다쿠리에서 3시간쯤 떨어진 카티마을까지 물건을 져나르거나 일을 보러 현지인들이 간간이 오간다.
그들 덕분에 어제 오늘 트레커를 한 명도 만나지 못했어도 긴장되거나 외롭지 않다.
그 중 한 명은 커다란 유리를 져나르고 있다.
3시간이 넘도록 계속되는 오르막에 발걸음이 자꾸 더뎌진다.
어퍼 로하켓을 떠난 지 4시간만에 다쿠리패스에 도착했다. 아직 몸이 적응되지 않아 생각보다 힘들다.
다쿠리패스에도 붉은 랄리구라스가 흐드러지고 빛바랜 깃발들이 나부끼고 있다.
높은 고개마다 기도깃발이 나부끼는 티벳 고개를 닮았다.
날씨가 좋으면 다쿠리 패스에서 설산을 볼 수 있다는 말에 서둘렀건만 쉬기반 걷기반 하느라 시간을 많이 지체했다.
다행히 패스에 도착하자 저 멀리 설산이 보인다(금세 구름 속으로 사라져버렸지만..)
저 아래 보이는 다쿠리가 손에 잡힐듯하다.
패스에서 다쿠리까지 단숨에 내려갔다.
찻집을 겸한 식당에서 몇몇 현지인들이 차를 마시며 쉬고 있다.
다쿠리패스를 향해 가는 사람들이나 길고 힘겨운 오르막을 지나 다쿠리패스에서 내려온 이들 모두에게 맞춤한 쉼터다.
다쿠리에서 날씨만 좋으면 설산이 잘 보인다고 하니
돌아오는 길에 다쿠리에서 하룻밤 자면서 느긋하게 즐겨야겠다.
오늘의 목적지는 다쿠리에서 3시간쯤 떨어진 카티다.
세드릭이 하도 자랑을 해서 카티 마을에 대한 기대가 크다.
한 무리의 아낙들을 만났다. 카티가 가까워진 모양이다.
그녀들은 나무 위로 올라가 낫으로 잎이 무성한 줄기를 툭툭 쳐냈다.
높이가 높아 보는 사람은 보는 것만으로도 불안불안한데 노래까지 부르며 천하태평이다.
한 소녀가 나무위에서 땅으로 던진 나뭇가지들을 그러모은다.
소녀의 모습이 어여뻐 사진에 담고 싶다고 했더니 활짝 웃으며 낫을 얼굴에 살포시 기댄다.
<3일>
.카티(2210m) - 드왈리(2,575m,4시간) - 푸키야(3260m,2시간): 6시간
카티에서 드왈리까지 룰루랄라다.
길도 어여쁘고 산천도 어여쁘다.
드왈리는 핀다리빙하와 카프니 빙하로 가는 갈림길에 있다.
걸어온 길이 산밑자락에 실처럼 이어져있다.
한 무리의 트레커들이 내려온다.
핀다리빙하에서 텐트를 치고 하룻밤 잤다며 행복해한다.
텐트만 있으면 나도 그러고 싶다.
드왈리에는 숙소가 두 곳 있지만 아직 본격적인 트레킹철이 시작되지 않아서인지 한 곳은 문을 열지 않았다.
빈 집 주변을 놀이터삼아 놀던 흰원숭이들이 낯선 이가 나타나자 후다닥 달아났다가
그 중 한 녀석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빼꼼히 고개를 내민다.
드왈리에서 푸키야까지는 2시간 정도 올라가야 한다.
그 사이에 700미터 정도 고도를 올려야 하기때문에 길은 가파르다.
3000미터를 넘어서자 숨이 차다.
푸키야에 거의 다 와갈 무렵 내려오는 트레커를 만났다. 그는 털모자에 방한용 장갑과 방한복을 입고 있다.
푸키야에 도착하자마자 옷을 더 껴 입고 방한모자도 썼다.
그런데도 기온이 뚝 떨어져 몸이 움츠러든다.
온기를 찾아 부엌으로 가 짜파티와 사브지를 만드는 화덕 주위를 맴돈다.
푸키야에도 숙소가 두 곳 있지만 한 곳은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음식솜씨 좋은 주인장이 만든 달과 사브지로 거한 저녁을 먹고 진한 짜이도 한 잔 마시고나니 몸에 훈기가 돈다.
내일 핀다리빙하로 가는 길에 설산과 빙하를 마음껏 즐기려면 일찍 서둘러야 한다.
주인장에게 5시에 아침을 먹고 바로 출발하겠다고 단단히 일렀다. 그리고 점심도시락으로 알루난을 부탁했다.
도미토리에 다른 숙박객은 없다.
냉기 가득한 방에서 침낭과 찜찜한 담요를 덮고 눈을 꾹 감는다.
<4일>
.푸키야-핀다리빙하-푸키야-드왈리(2,575m): 6시간 30분
어제까지 꽃들의 향연에 눈이 호사했다면 오늘은 설산과 빙하의 향연을 즐길 차례다.
핀다리빙하로 이어진 길을 눈으로 좇는다.
성실한 주인장은 약속시간에 맞춰 이른 아침밥을 준비했다.
그리고 점심용으로 주문한 알루난을 정성스레 종이로 말아주었다.
종이 안에 말린 갓 구운 알루난의 온기가 손바닥에 고스란히 전해진다.
찬 공기는 코끝이 시릴 정도로 알싸한데 손바닥은 따끈따끈하다.
앞으로 나아갈수록 산이 벗겨진다.
'이럴 때는 절대 걸음을 빨리 놀려서는 안돼지.
아주 천천히 음미하면서 걷는거야'
'아니지,아니지..구름이 몰려와 설산을 삼켜버리기전에 어서 가서 설산과 빙하의 완벽한 자태를 즐겨야지'
마음이 왔다갔다하는사이 걸음이 늦춰졌다 빨라졌다한다.
세드릭이 몇몇 위험한 구간이 있다더니 여기였나...
가파른 빙설지대는 넓고도 길다.
자칫 발을 잘못 디뎠다가는 대책없이 미끄러질 것이기에
두 다리와 나무지팡이에 잔뜩 힘을 준다.
난다캇과 난다콧(6861)이 바로 눈앞에 있다.
핀다리빙하가 생각만큼 인상적이지는 않지만
4일을 걸어 설산과 빙하가 어우러진 멋진 풍경을 즐길 수 있어서 행복하다.
한 사두가 집을 짓고 살면서 십수년째 수행을 하고 있다.
어젯밤 텐트에서 잔 트레커들은 주변 트레킹을 갔는지 조용하다.
<5일>
.드왈리(2,575) - 카티야: 3시간 + 주변 산책(1시간 30분)
히말라야 트레킹은 아침 일찍 출발해서 오후 2시 이전에 마치는게 좋다.
오전내내 하늘이 맑다가도 오후만 되면 구름이 몰려오기 때문이다.
이곳도 예외가 아니다.
내일 카프니 빙하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 오늘은 3시간거리인 카티야까지만 간다.
카티야에 도착하자 트레커가 하루에 한 명 있을까말까해서 무료해하던 주인장이
방을 안내하고는 더이상 무료함을 참지 못하겠다는듯 마당에 매트를 깔고 해바라기를 하며 누웠다.
내일 갈 길도 익히고 고소적응도 할겸 빙하방향으로 산책을 한다.
앞산에 가려 있던 설산이 파란 하늘에 병풍을 친듯 펼쳐졌다.
숨이 가빠오는걸보니 내일은 최대한 천천히 걸어야겠다.
산사태 구간은 소리소문없이 민첩하고 조용하게 통과하고..
카프니 빙하의 입구까지 갔다가 돌아섰다.
만찬은 내일이다!!
<6일>
.카티야 - 카프니 빙하 - 카티야 - 드왈리 : 9시간
창문틈으로 황소바람이 들어와 뼛속까지 시리다.
있는 옷을 다 껴입고 침낭과 담요를 둘둘 말고 잠을 청하지만..
그래도
춥다.
푸른 새벽, 밖으로 나오니 별빛이 쏟아졌다.
고요가 숨쉬는 땅에 별들의 속삼임이 넘쳐난다.
주인장이 잠이 덜깬 눈을 부비며
불씨를 돋우어 이른 아침을 준비한다.
어제 내려온 이도 오늘 올라가는 이도 없다.
라면으로 몸에 온기를 불어넣고 마치 아무도 걷지 않은 길을 걷듯 빙하로 향한다.
구름이 깨기 전에 카프니에 닿을 것이다.
오르막이 숨가쁘다.
산사태 구간을 통과하고 빙설구간을 지나자 뜻하지않게 너른 초지가 나타났다.
성수기에는 초지에 수십 동의 텐트가 세워진다지만 지금은 아니다.
미처 철거하지 못한 이동식 화장실들이 그때의 떠들썩함을 대변하는 듯하다.
핀다리빙하가 빙하보다는 설산을 즐기는 곳이라면
카프니 빙하는 설산과 빙하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야생 사슴류 몇 마리가 모레인 위에 모여들었다.
푸른 하늘과 순백의 설산과 얼음바다!!
키작은 꽃이 삐죽이 고개를 내밀고 나비들이 무리지어 맴돈다.
중생을 어여삐 여겨 신께서 내려 주신
자연의 종합선물앞에서 나는 무엇을 더 바랄 것인가..
<7일>
.드왈리 - 카티: 5시간
이맘때 카티에서는 집집마다 대나무를 쪼개 말리고 다 마른 것으로 돗자리며 바구니 등을 만드느라 일손이 분주하다.
일부는 집에서 쓰기도 하지만 대부분 내다팔아서 목돈을 마련한다.
아이고 노인이고 집 안의 일손이란 일손은 다 동원된다.
보리볶은 것을 간식으로 먹으며 여럿이 하다보면 시간가는줄 모른다.
대나무 돗자리나 바구니를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대나무 가지를 잘라 단으로 묶어서 집으로 가져와야 한다.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무게도 만만치 않아 신역이 고되다.
집에는 아무도 없고 대여섯살박이 아이 혼자 놀고 있다.
집안에만 있기가 심심한 아이는 지붕 위로 올라왔다.
지붕 위에서 보는 세상이 신기한지 아이가 베시시 웃는다.
마을을 굽어보는 곳에 자리잡은 <자이난다 호텔>은 식당과 찻집을 겸한 숙소이면서
구멍가게도 겸하고 있어서 동네 사랑방이기도 하다.
오가는 동네 남정네들이 방앗간을 그냥 못지나는 참새들마냥 짜이 한 잔을 주문하며 눅지근하게 엉덩이를 붙인다.
짜이를 마시러 오는게 목적인지 다른 볼일을 보러 가는 중에 잠시 들른 것인지 헷갈릴정도로 노닥노닥 일어설 줄을 모른다.
직접 농사지은 쌀로 지어서 그런지 밥은 꿀맛이고 고맙게도 무한리필이다.
사브지도 맛깔스러워서 식사 후에 짜이까지 한 잔 마시고 나면 근사한 정식만찬을 즐긴 기분이다.
동네를 산책하면서 내일 하루 더 쉬어갈 것이다.
사람사는 동네 카티에서..
<8일>
.카티
트레킹 중에 거의 유일한 마을다운 마을인 카티.
고만고만한 집들이 서로 어깨를 겯고 의지하며 살아간다.
집마다 개별 상수도가 없어 동네 공동 수돗가에 설거지거리를 들고 와서 설거지를 하노라면
목마른 소도 와서 목을 축인다.
마을에 있는 개방형 공동샤워장이자 빨래터에서는
샤워도 하고 빨래도 하고...
그런가하면 감자밭에도 돌담밑에도 소담스레(?)
차라스가 자라고 있다.
차라스 없이도 매일 자연에 취해 살 것같건만 평생 이곳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단조로운 삶이 한없이 밋밋하게 여겨질지도 모를 일이다.
<9일>
.카티 - 다쿠리: 4시간 30분
오늘은 다쿠리까지만 갈거다.
술렁술렁가도 네다섯시간이면 거뜬할 터라 여유를 부린다.
어제 만났던 러시아 친구는 몇 년전부터 매년 한 철을 카티에서 보낸다고 했다.
대개의 외지인들은 트레킹을 위해 카티를 찾지만 그는 성성한 기운이 감도는 이곳에서 한동안 지내기 위해서 온다.
나도 언젠가 다시 올 것이다.
다쿠리패스를 넘을 일이 큰일이지만 고개 너머에는 카티가 있지 않은가..
카티는 또 다른 트레킹코스인 순다리둥가로 가는 갈림길이기도 해서 앞으로 우리의 인연은 깊어질 일만 남았다.
그래도 떠나는 것이 못내 아쉬워 아침을 주문해놓고 동네를 돌아본다.
아침부터 마을 공동 수돗가에 동네 꼬마들이 모였다.
물장난을 치기에도 그만이고 뭔가 재미있는 일이 있을 것만 같아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한 것이다.
아침인사를 건네자 녀석들도 두 손을 모은다.
"나마스떼"
다쿠리로 가는 발걸음이 가볍다.
아는 길인데다 길도 편편한 까닭이다.
전망이 좋아서, 꽃이 이뻐서, 찻집이 나와서, 너른 바위가 쉬어가라 손짓해서
발걸음을 멈춘다.
걷기반 쉬기반이다.
그러다 제 흥에 겨워 흩날리는 꽃잎을 보며 노래도 흥얼거린다.
이따금 이정표가 있어 걸어 온 길과 갈 길을 가늠하기도 한다.
하나같이 힌두어로 쓰여져 있지만
온 길과 갈 길이 정해져 있으니 어느쪽이건 숫자로 거리를 짐작하는데는 별 어려움이 없다.
다쿠리에서 한 무리의 양들이 풀을 뜯고 있다.
설산은 진작에 구름 저편으로 숨어 버려 내일을 기약한다.
저녁녘이 되자 안개세상이다.
모든 것이 아련한 실루엣으로만 남아있다.
마치 먹의 농담이 어우러진 한폭의 산수화같다.
<10일>
.다쿠리-송: 4시간
.송-바라르(합승지프,20루피)-바기스와르(합승지프,30루피)-고루(버스,20루피)-코사니(합승지프,15루피)
또 배운다.
세상사 뜻같지 않다는 것을...
다쿠리에서 아침나절 설산을 실컷 볼 생각에 며칠전부터 들떴건만 구름가득이다.
덕분에 오늘이 생일인 친구에게 자연의 선물을 듬뿍 안겨주려던 계획도 어긋났다.
그래도 좋아하는 곳에서 생일을 맞이한게 어디냐며
특별히 계란넣은 라면을 주문해서 생일상을 차렸다.
송에 거의 다 와갈 무렵 학교를 파하고 집으로 가는 아이들을 만났다.
엄마 심부름인지 몇몇 아이들 손에는 밀가루며 우유,식용유 등이 들려 있다.
가지런히 양갈래로 머리를 땋고 코발트색 펀자비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에게 인사를 건네자
수줍게 웃고 지나가면서 저희들끼리 까르르 웃음을 날린다.
열흘전 도착했던 트레킹 출발지점으로 다시 왔다.
코사니까지 가야 할 길이 남아 있지만 트레킹은 끝났다!!
막 도착한 합승지프가 손짓을 한다..
며칠후 리쉬케시에서 우연히 세드릭을 다시 만났다.지금쯤 마날리 산자락에 있을 줄 알았기에 뜻밖이었다.
그는 계획을 바꿔 리쉬케시에서 아쉬람에 머물면서 요가를 배우고 있었다.
여전히 그에게서는 바람냄새가 났다.
그는 내년에 다시 와서 순다리둥가를 트레킹을 할 생각이라고 했다.
인연이 닿으면 길 위에서 다시 만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