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빠이-2011

나는 걷는다 2012. 3. 14. 04:28

 

<pai에서 보낸 3주일>

 

.일정-2011.4.18~5.8

 

.날씨-우기 초입이라 자주 비가 내린다.

 

.숙소- .<Prove's House>200밧/dbl,w/b,발코니,정원,깨끗,시장,터미널과 가깝다.

          .<Don't Cry Bungalow>120밧/r,w/b,hot shower,tv,장기로 묵을 경우 할인

 

.환율- $1= 약 30밧

.물가- 밥과 반찬,국종류는 각10~15밧,

         토마토 1kg10~15밧,찰옥수수 한 봉지(3~5개)10~15밧,제과빵(3개) 20밧,

         두부10밧,배추 한통(중간크기)15~20밧

 

.장날- 매일 오전 시내에 아침 먹거리며 야채와 과일등을 파는 상설장이 서고

          오후에는 조금 떨어진 다른 곳에서 오후장이 열린다.

          그와는 별도로 요일을 달리하며 장이 선다.

         월요시장-공항가는길, 화요시장-타운에 있는 마켓, 수요시장-치앙마이 가는길,

         토요시장-저녁시장 열리는 곳

 

.

  

   

 pai-첫쨋날

 

치앙마이 시내에서 여행사를 통해 빠이로 가는 미니버스를 타면 빠이까지 편하고 쉽게 갈 수 있지만

온통 외국여행자들이 승객인 차를 타고 이동하는 것이 내키지 않아

치앙마이 아케이드 버스터미널로 가서 로컬버스를 탔다.

 

태국에도 이런 버스가 있나 싶을 정도로 차체가 낡았다.

승객은 모두 현지인이고  외국 여행자는 우리 말고는 서양 할아버지 한 명이 전부다.

마치 인도네시아나 미얀마를 여행하는 기분이다.

 

차는 쌩하니 시내를 빠져나가더니 구불구불 산길로 접어든다.

계속되는 오르막.

산위로 올라갈수록 바람에 서늘한 기운이 묻어난다.

얼마나 올라왔을까..산 위로 오르자 저 건너 산들이 내려다보인다.

 

도로 상태가 워낙 좋아서 차는 제 실력 이상을 발휘하며 달려서 정각에 빠이에 도착했다.

이름은 빠이 버스터미널이지만 실은 손바닥만한 공터에 외국인 승객 세 명을 부려놓고

버스는 종점인 메홍손을 향해 떠났다.

 

상전이 벽해가 됐다.

9년전 빠이의 모습은 찾기 힘들다.

오랜 기억의 갈피들을 더듬거려보지만 전에 묵었던 마당이 넓었던 숙소를 찾지 못했다.

동네 아저씨말로는 몇년전 홍수로 근처의 숙소들이 모두 물에 잠겨서 새로 지은 숙소들이 많다고 했다.

 

우선은 하룻밤 잘 숙소를 시내에 정하고 한동안 묵을 숙소를 알아보러 다닌다.

우기가 시작된 탓에 많은 방갈로들이 문을 닫았다.

부엌이 있는 <트윈 방갈로>는 고즈넉하긴 한데 숙박객이 아무도 없다.

무엇보다 비가 오면 지붕에서 물이 새서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되는 다음 달에 문을 닫을 예정이고 방갈로를 정비한 후 다시 문을 연다고 했다.

아닌게아니라 겉보기에는 제법 그럴듯한데 안은 구멍이 숭숭 뜷려 쥐도 무시로 드나들고

비가 오면 대책이 없을 것같다. 

 

대나무다리 건너에 있는 방갈로 단지에 있는 방갈로들 중에 새로 지은 것들은

돼지 삼형제 중 막내가 지은 집처럼

비가 와도 끄덕없을 정도로 튼튼하고 욕실도 딸렸고 더운 물 샤워는 물론 텔레비전까지 있다.

비수기인 요즘은 방갈로 한 채에 150밧정도 하는데 시설에 비해 훌륭한 가격이다.

하지만 좀더 자연미가 묻어나는 곳을 찾는다.

.

3시간 가까이 돌아다닌끝에 논 한가운데 있는 방갈로를 구했다.

하룻밤에 120밧,장기로 묵으면 100밧이다.

  

 

 

  pai- 둘쨋날

 

<Don't Cry Bungalows>

 

부엌이 없어 아쉽기는 하지만 욕실이 딸려 있고 핫샤워도 되고 텔레비전도 있다.

무엇보다 사방으로 탁 트인 풍경이 맘에 든다.

 

시장까지는 느릿느릿 걸어도 20여분이면 족하다.

먹거리때문에 하루에 두 번은 시내에 있는 장에 가야하지만

번잡한 시내와 적당한 거리를 두고 싶은 나에게는 맞춤한 거리다.

 

주인집 개 두 마리가 반갑다고 꼬리를 흔들며 달려온다.

20일치 방값을 선불로 냈으니 앞으로 20일동안은 '내 집'이다. 

 

 '집 장만'하고 느긋한 마음으로

산밑까지 저녁 산책을 한다.

 

길은 산과 산 사이로 계속 이어지고...

 

 

 

어둠이 내려앉았다.

 

풀벌레 소리가 가득하다.

 

 대나무로 만든 벽이 바람에 흔들린다.

 

천둥번개가 치고 비가 내린다.

 

잠이 오지 않는다.

 

 

 

 

  pai-셋째날 

 

숙소 책꽂이에서 책을 두 권 골랐다.

한 권은 남미를 여행할 때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읽은 <wild swan>이고

다른 하나는 <Those Who Save Us>.

 

<우리를 구원한 사람들>이라...

제목만 보고 무슨 내용일까 궁금했는데 표지 안쪽을 보니 나치와 유대인과 관련된 가족사를 다룬 소설이다. 

저자의 가족사와 무관하지 않은듯하다. 

 

아침에만 문을 여는 시장 반찬집에서 먹거리를 사다 하루의 식사를 해결한다.

다양한 종류의 반찬과 밥을 10밧 단위로 판다.

국,어묵,잡채,닭고기야채볶음,양배추조림,생선구이,삶은 계란 ...

 

사방이 탁 트인 자연속에서 먹는 밥맛이 일품이다.

검둥이들이 냄새를 맡고 득달같이 달려왔다.

녀석들에게는 안된 일이지만 앞으로의 관계설정을 위해서 먹을 것을 주지 않았다.

대신 어미 검둥이는 방문앞 대나무마루가 제집인양 올라와서는 몇 시간씩 낮잠을 즐긴다.

 

오후 느즈막에 어제 갔던 길로 산책을 한다.

2킬로미터쯤 가자 큰 길이 끝나고 밀림으로 접어들었다.

캠핑을 하려는지 서양 아이들 셋이 큰 배낭을 옆에 두고 물가에 자리를 잡았다.

산책 내내 앞장서던 어미 검둥이가 밀림 입구에서 다음을 기약하며 돌아선다.

우리도 더 가기에는 시간이 너무 늦어 발걸음을 돌렸다.

 

숙소 주인집에 물을 대주는 사람에게 생수를 샀다.

20리터들이 물통이 20밧.보증금 100밧을 내야 하지만 주인 아주머니가 보증을 서주어 내지 않았다.

물도 사놓았으니 앞으로 시내에서 물을 사나르지 않아도 된다.

숙소에서 큰 접시 하나와 그릇 두 개를 빌리니 제법 살림살이 모양새가 난다.

 

 

 pai-쨋날 

 

밤에는 춥고 아침에는 조금 서늘하고 한낮에는 찜통이고 해가 진 후에는 바람이 세다.

 

김치를 담글 작정으로 배추 한 통과 마늘 양파를 샀다.

고춧가루와 소금은 우선 있는 걸로 하고.. 

 

배추를 씻어서 절이는 동안 마늘과 양파 껍질을 깐 뒤 씻어서 앙파는 채썰고 마늘은 돌로 다졌다.

고춧가루에 다진 마늘과 양파 소금 설탕을 적당히 넣고 절여놓은 배추를 한번 더 씻어 버무린다.

이렇다 할 그릇이 없어 비닐봉지에 물을 받아서 배추를 절이고 씻었다.

어딘가 엉성해보이면서도 김치의 포스가 한껏 느껴지는 김치를 담아 비닐봉지에 넣어

기둥에 매달아 놓으니 흐믓하다.

 

 

 

 

 pai-  다섯쨋날 

 

어제 담근 김치가 하룻밤만에 다 익었다.

작은 배추 한 통이라 오늘 다 먹었다.

 

하루에 두번 시장에 가는게 하루의 중요한 일과가 되었다.

아침에는 아침시장에 가서 반찬집에서 아침과 점심거리를 사고

오후에는 저녁시장에 가서 간식을 산다.

 

밤이 되자 오늘도 어김없이 천둥번개가 치고 비바람이 몰아친다.

집이 흔들린다.

 

 

 

 pai- 여섯쨋날 

 

배추김치를 또 담궜다.그런데 새로 산 고춧가루가 너무 맵다.

밥과 함께 김치를 먹는데도 너무 매워서 속이 아리고 혀에 불이 났다.

남은 김치를 먹을 일이 큰 일이다.

 

다행히 저녁에 두부를 사서 두부김치로 먹었더니 고소한 두부와 어우러져 매운맛이 덜하다.

 

밤이 되자 온갖 풀벌레들이 합창을 한다.

 

 

 

 pai- 일곱쨋날 

 

밤새 쥐들이 천장을 갉아댔다.마치 이갈이라도 하는 것같다.

자다말고 산책길에 만든 지팡이로 천장을 툭툭 치며 경고를 보내지만 그때만 잠시 조용하다가 다시 시작한다.

이가 근질거려서 뭐라도 물어뜯지 않고는 도저히 못배기겠다는 투다.

저러다 대나무살을 엮어 만든 천장에 구멍을 내는 것도 시간문제지 싶다.

 

달팽이 두 마리도 같이 산다.

방갈로에 온 첫날 창가를 느릿느릿 기어가고 있는 달팽이 한 마리를 보고  반가웠는데

또 다른 한 마리도 목욕탕에 둥지를 틀고 있다.

목욕탕에 있는 녀석은 어쩐 일인지 며칠이 지나도록 꼼짝을 안한다.

행여 방해가 될까봐 전혀 아는체를 안하고 있다.

 

왕개미,사마귀 그리고 각종 풀벌레들이 무시로 드나든다.

물것들도 많아서 낮이고 밤이고 물린 자리를 긁는게 일이다.

 

방갈로 주변에 풀들은 제멋대로 자라고

밤이면 반딧불이 어둠 속에서 반짝반짝 저공 비행을 한다.

 

 

 

pai- 여덟쨋날   

 

빠이에 온 후로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밤이면 천둥번개가 치고 비가 내렸다.

오늘은 낮에도 비가 내렸다.

그래 그랬는지 어젯밤 내내 풀벌레들의 합창이 유난했다.

 

빠이 주변에서는 요일을 달리하며 시장이 열리는데

오늘은 공항으로 가는 길에 있는 공터에서 월요시장이 열리는 날이다.

망고 파인애플 수박 국수류 젓갈류는 물론 옷이며 가전제품들도 장에 나왔다.

손두부 두 모와 삶은 고구마 바지를 샀다.

 

집에 와서 바지 양쪽에 달린 커다린 주머니를 떼어내고 다시 입어본다.

주황색을 기조로 날염한 하늘거리는 소시지형 바지를 입으니 아라비안 나이트 속으로 들어가면 딱 어울릴 것같다.

 

며칠동안 옆 방갈로에 묵던 여행객들이 떠나서 분위기는 더욱 적막한데 주인은 바쁜 일이 있는지 도통 보이지 않는다.

저녁이면 숙소 주변을 밝히던 희미한 등마저 켜지 않아서 방 불을 끄자 방안도 밖도 어둠에 잠겼다.

 

오늘 밤에도 비가 오려나...

 

 

 

pai- 아홉쨋날    

 

<우리를 구원한 사람들Those Who Save Us>

 

2차 세계대전(1939~1945)당시 나치치하의 독일에서 살아내야했던 한 독일여성의 삶을 다루고 있다.

전쟁은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고 일상적인 삶을 초토화시키고 영혼을 황폐화시킨다.

전쟁이 끝나고 이 모든 것은 어떻게 치유되고 제자리를 찾는가...

 

책을 읽는 내내 홀로코스트,유태인,폴란드,아우슈비츠,레지스땅스,히틀러,게슈타포,SS,광기,전쟁,이념...

같은 단어들이 맴돈다.

 

무슨 까닭인지 믿거라하는 아침 반찬집이 열지 않아 아침과 점심거리가 막연해졌다.

하지만 곰곰 생각하면 그럴 까닭이 전혀 없다.

밥이 없으면 국수로,국수가 싫으면 빵이나 라면을 먹으면 그만인 것을

고작 며칠 아침마다 같은 집에서 밥을 사먹는 일상에 익숙해졌다고,

잠시의 안주가 깨졌다고 당황하다니..

 

이런...틀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구나..

 

 

 

 pai-쨋날 

 

물어물어 찾아간 수요시장은 월요시장이나 상설시장보다 규모가 훨씬 컸다.

하지만 비가 후득여서인지 9시가 다 되어가는데도 장은 다 펼쳐지지 않았다.

 

망고가 제철이라 싱싱하고 가격도 싸다.

1kg에 10밧.큼지막한 것 네 개 올렸더니 12밧이다.

옥수수는 작고 야물진 찰옥수수가 사라지고 크고 조금 심심한 메옥수수가 나왔다.

대신 찐고구마가 많다.

태국 고구마들은 하나같이 크기가 작은 물고구마인데 달짝지근한게 여간 맛나는게 아니다.

 

5일장은 상설시장보다 물가가 싼편이고 물건도 다양하다.

노란 두부 튀긴것,손두부,옥수수,멸치튀김,잡채,찹쌀떡,망고를 산다.

달디단 노오란 망고 속살이 그만이다.

 

하루종일 하늘은 낮게 내려앉고 비는 오락가락한다.

그러다가 저녁나절 선물처럼 하늘이 갰다.

 

 

 

pai- 열하루쨋날 

 

풀잎마다 이슬방울이 당알당알 맺혔다.

 

물기를 잔뜩 머금은 초가지붕,골짜기 너머에서 피어오르는 안개,

짹짹짹 구구구 쑤욱쑤욱 새들의 아침인사,낮게 내려앉은 하늘,

엷은 바람, 팔랑거리며 날아다니는 나비...

 

밤새 내린 비로 초가 지붕이 포옥 젖었다.

이제는 낮이고 밤이고 무시로 비가 내린다.

 

김치를 담궜다.

다행히 새로 산 고추가루는 지난번보다 덜 맵다.

 

 

 

 pai- 열두쨋날 

 

새로 읽기 시작한 책은 제목이 특이하다.

 

<선禪과 오토바이 수리기술ZEN and the Art of Motorcycle Maintenance>

 

전혀 어울릴 것같지 않은 선禪 과 오토바이,수리기술이라는 단어들이 일렬로 늘어서 제목이 되었다.

저자는 오토바이를 타고 11살인 아들과 친구 내외와 여행을 한다.

그리고 수시로 고장나는 오토바이를 수리하면서 사유한다.

 

절반 가량을 읽었는데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을 막연히 짐작할 뿐이다.

뉴욕타임즈는 이 책을 '고차원적인 지적 유희'라고 평했다.

 

 

 

 pai- 열셋쨋날 

 

전원생활이 좋기는 한데 온갖 물것들에게 시달리는게 고역이다.

대표적인 물것 세가지는 눈곱보다 작은 벌레와 날개달린 왕개미(?) 그리고 모기.

 

눈곱보다 작은 벌레인 요놈은 소리소문도 없이 앉아서 따꼼하게 문다.그러고나면 극도의 가려움증이 찾아온다.

날개달린 왕개미는 날개가 있어서 활동영역이 넓다.몸집도 크고 길어서 위협적이기까지 하다.물린 후에는 크게 부풀어오른다.

모기는 특히 밤에 극성이다.무차별 공세가 밤마다 이어진다.

잘 때 모기장을 치고 자건만 밤마다 모기장안에서 모기들이 활개친다.

눈곱만한 개미들은 밤낮을 안가린다.

사방팔방 안가는데가 없고 긴팔옷과 긴바지를 입어도 옷위에서 공격!!

 

가려움이 심해지면 하루에도 몇 번씩 핫샤워로 열탕소독을 한다.

그러면 잠시나마 가려움이 잦아든다.

 

요녀석들로부터 먹거리를 안전하게 지키는 일도 큰일이다.

비닐봉지에 꼭꼭 여며놓아도 악착같이 틈새로 파고들기 때문이다.

 

하루종일 하늘은 울음보가 터지기 직전의 표정을 하고 있다가

지나가는 바람이 살짝 건드리는 시늉만해도 시도때도없이 울음을 터뜨린다.

 

오후장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앙~하고 울기 시작하더니 한시간이 지나도록 대성통곡이다.

본격적인 우기는 6월부터라는데 올해는 더 일찍 찾아올 것같다.

 

 

 

pai- 열넷쨋날 

 

배추 한포기를 사서 김치를 담그면 하루나 이틀이면 다  먹는 통에 요즘은 김치 담그는게 일이다.

 

오늘도 배추 한통을 사왔다.

몇 번 담궈보니 김치담그는게 일도 아니다.

초간단 김치 담그기의 모토는 최소한의 양념으로 간단하게,소박하게,맛있게!!

 

무에타이 체육관을 지나 조금 더 걷다보면 폭포로 향하는 길과 왼쪽으로 꺾어져 마을로 향하는 갈림길이 나온다.

오늘은 왼쪽길로 접어든다.

언제나처럼 어미 검둥이도 따라나서고  천방지축 새끼 검둥이도 함께 간다.

차 한 대가 다닐  수있을 정도의 흙길은 쉴새없이 비가 온 탓에 물이 고여있고 채 마르지 않은 곳은 질척하다.

이 길을 주욱 따라가면 도로와 맞닿는지라 다시 왼쪽으로 꺾어 흙길을 이어 걷는다.

 

이렇게 멀리 나오기는 처음인지 새끼 검둥이는 주저주저하며 우리가 올 때까지 기다리기도 하고

앞서가는 어미 검둥이에게 내쳐 달려가기도 한다.

도로로 접어들기 전에 어미 검둥이는 제갈길로 갔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새끼는 제 어미를 따라갈 생각을 않고 우리를 따라온다.

어미도 새끼를 챙기지 않는다.

 

도로를 따라 조금 내려가다 가로질러가면 방갈로촌으로 이어진다.

한창때는 이 많은 방갈로들이 여행자들로 북적거렸을 테지만 비수기인 지금은 한두 명의 여행자가 보일 뿐이다.

 

대나무다리를 건너면 바로 시내인데 며칠전까지만해도 멀쩡하던 대나무다리가 비때문에 두동강이 났다.

강 건널 곳을 찾아보니 한 곳 빼고 모두 절단났다.

 

시장에서 망고와 삶은 고구마를 사는데 다시 비가 내린다.

처마밑에서 비가 긋기를 기다린다.

 

 

 

 pai- 열다섯쨋날 

 

월요장날이지만 장에 가지 않았다.오후 시장도 생략이다.

하루종일 <wild swan>을 읽는다.

 

안가본 길로  저녁 산책을 하는데 그 새를 못참고 서너차례 비가 내렸다그었다한다.

오늘도 심심한 어미 검둥이가 따라나섰다.

개울을 몇 차례 건너야하는데 그동안 내린 비로 물이 불어 있다.

 

어미 검둥이는 다른 마을로 들어서는 마지막 개울을 건너고는

더이상 자기 영역이 아니라는듯 온길을 되짚어갔다.

 

언덕 위에 있는 사원에서는 빠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해가 산 너머로 뉘엿뉘엿 지고 있다.

 

밤에는 천둥번개가 치고 비가 쏟아졌다.

 

 

 

 pai- 열여섯쨋날 

 

주인장이 새끼검둥이를 못보았냐고 물었다.

이틀전 함께 저녁 산책을 하다 헤어지고는 못봤다.

주인장은 어제와 오늘 내내 찾아다녔는데도 못찾았다고 했다.

그렇담 엊그제 우리와 헤어진후 집을 찾아오지 못한게 분명하다.

 

이름은 똥담.이제 태어난지 3개월됐다고 했다.

그렇게 어린줄 알았으면 챙겨서 데리고 다녔을텐데..

 

서둘러 녀석과 헤어진 곳으로 가서 동네 사람들에게 물어보았지만 하나같이 고개를 젖는다.

 

똥담아,어디 있니?

 

<룩마(little dog) 똥담을 찾습니다>

 

 

 

 pai- 열일곱쨋날 

 

주인왈,그저께 누군가 똥담을 보았단다.

하지만 어제는 봤다는 사람이 없다고...

 

똥담과 헤어진 장소로 다시 갔다.

어린 녀석이 어미와 친근한 주인과 헤어져 3일밤을 지냈을 생각을 하니 짠하다.

 

똥담과 헤어진 지점에 막 도착했는데 놀랍게도 녀석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현지인 가족과 걸어오고 있다.

 

"똥담!"

 

와락 반가움이 솟는다.

그동안 별일없이 지내줘서 고맙기 그지없다.

 

천방지축인 이 녀석을 무사히 집까지 데리고 가야한다.

보도가 따로 없는 2차선 도로 한켠으로 걸어야하는데 녀석은 겁이 많으면서도 기본 교통규칙을 지키지 않아서

차나 오토바이가 올 때마다 이리 뛰고 저리뛰고 아슬아슬하다.

 

아무래도 안되겠다싶어 도로대신 논길을 가로질러 가까스로 녀석을 집으로 데려왔다.

똥담은 집가까이 오자 어미에게 냅다 달려간다.

어미 검둥이도 똥담을 보자 비호처럼 달려와 부비고 쓸어준다.모자상봉이 눈물겹다.

주인장도 똥담을 보자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다.

 

실종된 똥담때문에 내내 마음 한켠이 무거웠는데 이제야 가볍다.

녀석때문에 애태운 생각을 하면 언제고 주인몰래 꿀밤 한 대 줘야지...

 

 

 

pai- 열여덟쨋날 

 

똥담에게 중벌이 내려졌다.

 

"끼깅~낑~"

 

뛰어다니는 곳이 다 자기 세상이었던 녀석의 목에 줄이 채워졌다.

줄은 나무말뚝에 매여 있어 2미터남짓되는 줄이 행동반경의 전부다.

갑자기 매인 몸이 된 녀석은 갑갑해서 못견디겠다며 이리 뛰고 저리 뛰어보지만 "뛰어봤자 벼룩'이다.

 

우리를 보자 애처로운 눈빛으로 끼깅대며 하소연을 한다.

마음같아서는 당장 밧줄을 풀어주고 싶지만 지금 녀석은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온몸으로 배우는 중이다.

어미검둥이가 이따금 똥담에게 가서 놀아주며 위로한다.

덩치가 커서 얼핏 보아서는 3개월된 강아지같지 않은데 몸만 컸지 하는 짓은 영락없는'아기'다.

 

"끼깅~낑~"

똥담의 하소연은 계속된다. 

 

 

 

 pai- 열아홉쨋날 

 

"끼깅~낑~"

 

여전히 매인몸인 똥담은 '나에게 자유를 달라'며 아침부터 하소연이다.

다행히 오늘은 숙소에서 공사일을 하는 일꾼의 아들이 놀러와 친구가 되어준 덕분에 잠시 풀려났다.

아이는 똥담이 매여 있던 줄을 잡고 데리고 다니려 하지만 똥담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바람에 금세 줄을 놓치고 만다.

 

똥담은 잠시나마 되찾은 자유를 만끽하면서 집주변 들판을 신나게 뛰어다녔다.

그러다가 소년에게 달려와 장난을 친다.

 

한동안 놀아주던 소년이 떠난 뒤 관리차원에서 똥담은 다시 매인 몸이 되었다.

 

오랜만에 하루종일 날씨가 맑다.

하늘은 맑고 비는 한번도 오지 않았으며 낮에는 꽤 무덥다.

 

 

 

pai- 스무쨋날   

 

"끼깅 낑~"

 

어제처럼 똥담은 풀려났다 매였다하며 자유와 구속의 의미를 몸으로 배우고 있다.

 

똥담을 보며 생각한다.

 

나는 자유인인가..?

 

십 년넘게 길위에 있지만 나는 자유인인가...

 

나를 구속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관계,자라온 환경,몸에 밴 관습들..

 

정신의 칼날을 벼르기보다는 기본적인 욕구에 충실하고 있는 이 미물은 무엇이냣?

 

 

 

 pai- 스물한번쨋날 

 

10년넘게 일상과 자라온 환경과 거리를 두었다이었다했지만 나는 여전히 매여 있다.

 

오늘은 주인이 똥담을 말뚝에서 풀어주었지만 똥담은 어쩐 일인지 마당을 벗어나지 않고 있다.

 

똥담,벌써 구속에 길들여진거냣?

 

며칠전부터 아껴가며 읽기 시작한 <wild swan>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다.

한국에서는 <대륙의 딸>로 번역된 책이다.

3대에 걸쳐 중국의 딸들이 질곡의 현대사를 살아온 이야기다.

 

몇 년 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묵었던 숙소 책꽂이에서 발견해서 처음 읽게 되었는데 빠이에서 다시 만났다.

여행지에서 두번이나 우연히 만난 책은 마치 오래전에 만났던 여행자를  다시 만난 것마냥 반갑다.

 

모택동에 대한 평가때문인지 중국에서는 금서라고 한다.

 

3주동안  머물렀던 오두막을 떠나 메홍손으로 향한다.

숙소에서 빌린 그릇과 책을 반납했다.

 

똥담이 말뚝에 묶인채 눈으로 배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