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오피아

곤다르,에티오피아-2010

나는 걷는다 2012. 9. 5. 06:45

 

<곤다르Gondar>

 

바히르다르에서 3시간 30분만에 곤다르에 도착했다.

이동거리가 긴 다른 구간에 비하면 엎어지면 코닿을 데 있는 셈이다. 

 

곤다르는 17~8세기에 번성했던 옛 도시로 곤다르 성으로 유명하다.

곤다르성은 약 900미터에 달하는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곤다르의 중심축 역할을 하는 곤다르 성 때문일까.

바히르다르와 또 다른 분위기다.

바히르다르가 일상적인 분위기라면 곤다르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것같다.

 

 

 

 

세월의 흔적이 역력한 높은 곤다르성이 위엄을 더 하고 난 시간여행을 떠나길 주저하는 사람처럼 성 주위를 맴맴 돈다.

 

 

 

또 다른 유적지 입구에서 하얀 두건과 망토를 쓴 문지기는 들어올테냐고, 시간여행을 떠나볼테냐고 묻는다.

 

 

 

과거로 가는 대신 곤다르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산에 올랐다.

걸어다닐 때에는 그리 커보이지 않았는데 막상 위에서 내려다보니 200년 이상 에티오피아의 수도로 손색이 없어 보인다.

산으로 에워싸인 드넓은 분지는 1632~1855년까지 당시 왕국의 수도였다.

 

 

 

 

내일 악숨으로 가려면 신새벽에 길을 나서야 하는데 지금 머무는 숙소에서 터미널로 가려면 30분 가까이 걷던지 탈것을 타야 한다. 그 시간에 탈것을 찾는 것도 배낭매고 걷는 것도 부담스럽다.

 

그래서 터미널 근처로 숙소를 옮겼다.

외국인 숙박객은 눈에 띄지 않는다. 

방은 많았지만 어느 여행책자에도 소개되지 않은 곳이라 외국 여행자를 만나면 오히려 놀랄 것같다.

 

숙소에서 일하는 친구들은 뜻밖에 찾아 온 이방의 손님을 무심한듯 편한 미소로 대했다.

지나친 관심보다는 오히려 무심하게 대해주는걸 편안해하는 나는 그들의 환대법이 고맙다.

 

 

 

대부분의 숙박객들이 버스를 타기 위해 이른 새벽에 숙소를 떠나기때문에 그들은 출근하자마자 한바탕 청소를 하고 나서  

빵과 커피로 아침을 먹는다.이른 시간에 일터에 도착하기 위해 새벽같이 집을 나선터라 모두 아침은 먹지 못했다.

 

환하게 웃고 있는 두 처자의 나이는 채 스무살이 되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태어났다면 아침밥을 먹네 안먹네 퉅툴거리며 학교에 갈 나이다.

 

부드러움과 달콤함의 유혹이 생략된 담백한 빵과 커피 한 잔이

매일 아침 그들의 일용한 양식이다.

 

 

 

시간가는줄 모르고 그녀가 집앞 골목에서 빨래하는 것을 지켜본다.

 

그녀는 엄청난 빨랫감을 지금 당장 생활사 박물관에 전시해도 손색이 없을 것같은 양철 함지박 두 개와 최소한의 물과

세제로 깨끗하게 빤다. 유난히 흰 빨랫감들이 많았지만 몇 번이고 치대고 문지르면서 때를 뺀다.

그 다음 함지박에 아주 적은 양의 물을 붓고 빨래를 하나씩 다시 치대고 물기를 꼭 짜길 서너 번 반복하면 '빨래 끝'이다.

 

그녀에 비하면 나의 빨래법은 물 한 번 원없이 써보자는 식이다.

몇 개 안되는 빨랫감을 비눗물을 멀끔히 헹궈내겠다는 일념으로 물을 넉넉히 해서 몇 번이고 헹구니 말이다.

그녀가 빨래하면서 내가 쓰는 물의 양을 본다면 기절초풍할 지도 모른다.

그녀만이 아니라 에티오피아 여인들이 입을 모아 빨래의 기본부터 다시 배우라고 한참을 지청구할지도 모른다.

 

 위생과 청결은 주어진 환경과 관념에 따라 다양한 표정을 하고 있다.

 

 

 

타닥타닥 탁탁탁탁탁탁..

짧고 요란한 소리가 양철 지붕을 때린다.

 

 비가 내리나 했는데 싸래기다.

 멀쩡하던 하늘이 갑자기 회색으로 변하더니 싸래기를 쏟아낸다.

 쌀가루를 얇게 흩뿌려놓은듯 순식간에 골목과 양철 지붕이 하얀 싸래기눈으로 뒤덮였다.

 

집앞 골목에 널어 논 빨래를 걷는 손길이 분주하고 인젤라를 만들던 아주머니도 잠시 일손을 멈추었다.

한동안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흙을 퍼나르던 맞은편 건축 현장에서 일하는 인부들도 더는 안되겠던지 철수한다.

모든 움직이는 것들이 사라진 골목과 공사장이 텅 비었다.

 

싸래기는 제 존재를 증명이라도 해보이겠다는듯 텅 빈 공간에 알알이 떨어져 잠시 지상에 머물다 스러진다.

 

창밖으로 회색 하늘을 오래도록 바라보려니 마음까지 회색빛이 되어가려는데

양철지붕을 때리는 리드미컬한 소리와 쌩한 바람에 안으로 밀려든 싸래기 몇 알이 

볼에 톡톡 떨어져 생기를 돋운다.

 

 

 

악숨으로 가기 위해 부산하게 짐을 꾸려 어둑한 길을 나서는데 골목 한켠에서 아주머니는 벌써 불을 지펴 인젤라를 만들 준비를 한다.

가로등은 커녕 집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조차 없는 골목에 그녀가 지핀 불씨가 불꽃을 일으키며 어둠을 밀어내고 있다.

 

터미널앞은 먹거리 장사들로 부산하다.

어둑해서 뭘 파는지도 분간이 잘 안되는데 장거리를 이동하려면 뭐든 먹어야하기에 현지인들처럼 도넛을 몇 개 샀다.

도넛이 담긴 봉지가 따끈따끈하다.

도넛에 엷은 커피까지 한 잔 마시고 나니 이제 길떠나는 일만 남았다.

 

곤다르에서 악숨은 1박 2일이 걸리는 긴 여정이다.

먼저 쉬레까지 가서 하룻밤을 보낸 후 다음날 악숨으로 간다.

 

쉬레에서 악숨은 채 2시간이 안걸리지만 곤다르에서 쉬레까지가 워낙 먼 길이라 쉬레에 도착하면 이미 날은 어두워지고

그 시간에 악숨으로 가는 차는 없다.

 

 

 

쉬레로 가는 길,

아프리카에서 네 번째로 높은 산이자 에티오피아에서 가장 높은 산인 시미엔산Mt.Simien(4620m)을 트레킹하는 기점

마을을 지난다.

시미엔산이 지척이다.

 

버스는 헉헉대며 산 위로 올라가더니 다시 비포장 흙길을 아슬아슬하게 내려온다.

산마루에서 바라본 장대한 풍경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아무래도 힘에 부쳐보인다했더니 아니나다를까 버스가 한숨을 푹 내쉬며 주저앉았다.

운전사가 바퀴를 갈아끼우고 기름칠도 하며 다독인다.

 

 

 

큼직한 붓으로 커다란 화판에 슥슥 그린 것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그 속에 사람은 한 점으로 남아 있다.

 

쉬레에 도착하면 해가 지고도 한참 지나있을 것이다.

서두른다고 될 일이 아니다.

 

시미엔산 자락에서 잠시 쉬어간들 어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