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유산 종주(육십령~삼공리)
<덕유산 종주>
.일시: 2012년 8월 21일~22일
.산행: 1일: 육십령(734m) - 할미봉 - 서봉(1492m) - 남덕유산(1507m )- 삿갓골대피소(1박)
2일: 삿갓골대피소 - 무룡산(1491m) - 동엽령 - 중봉 - 향적봉(1614m) - 백련사 - 삼공리
.종주거리: 31.6km
.교통: .대전-(1시간50분)-장계-(20분)-육십령
.삼공리-(40분)-무주-(50분)-대전
.준비물...카메라,썬크림,모자,소금(양치용,치약사용 금지),헤드랜턴,비옷,키친타월,물티슈,화장지(설거지,세수용),
자켓(일교차가 심하고 바람은 거세다),수건,무릎보호대,스틱,비닐봉지,양말,버너,코펠,먹거리
. 경비....교통비: .수원~대전왕복: 7700원+7700=15400원
.대전~장계~육십령: 8500원+2000원=10500원
.삼공리~무주~대전: 3900원+4100원=8000원
.기타(전철,버스비): 4700원
.숙박비: .대피소8000원+1000(담요 1장)
.제일산장 3만원
.먹거리: .17000원
<덕유산 산행 개념도>
<1일>
육십령(734m)-할미봉-서봉(1492m)-남덕유산(1507m)-삿갓골대피소 (1박): 13.1km,7시간 40분
억수로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배낭을 꾸린다.
어지간하면 우산을 가져가고 싶지 않지만 산에 가기도 전에 비를 쫄딱 맞을 수는 없다.
일기예보에 덕유산부근은 오늘과 내일 흐리지만 비는 안온다고 했으니 철썩같이 믿어본다.
혹시나해서 우비를 가져가지만 소용이 없었으면 좋겠다.
대전에 도착하니 7시 40분이다.
비는 안오지만 언제라도 쏟아부을 태세다.
터미널로 가서 두 시간 거리인 장계로 가는 표를 샀다.
장계에서 덕유산 종주 들머리인 육십령까지는 버스로 15~20분이면 가지만 차편이 자주 없다.
택시를 타든지 11시 50분에 육십령을 지나 서상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려야 한다.
버스기사는 당신도 전에 덕유산 종주를 했는데 서봉까지 힘들었다며 우리의 갈 길을 걱정한다.
출발이 늦었다.
육십령에서 점심을 먹느라 들머리에 들어서니 한 시다.
입구에 있는 덕유산 등산지도를 보니 할미봉에서 서봉까지 가파른 오르막이다.
산행의 험난함을 예고해주는 듯하다.
그나저나 저 높이 솟아있는 산이 서봉..?
산행을 시작하자마자 빗방울이 후득인다.
출발이 늦었는데 빗방울까지 떨어지자 조바심이 인다.
모른체하고 걷다가 빗방울이 굵어져 아무래도 안되겠다싶어 우비를 꺼내 입었다.
그러다 얼마 안되어 다시 벗고 또 다시 입고..
우비를 입었다벗었다하며 할미봉에 도착했다.
육십령에서 점심을 먹었던 정자가 멀리 보인다.
비때문에 바위가 미끄럽다.
서봉까지는 바위도 밧줄 구간도 많다.
한 구간에서 양 발을 양쪽 바위에 대고 밧줄을 풀어가며 내려와야하는데 다리가 후들거려서 발이 떼어지지 않는다.
할미봉에서 서봉까지 세 시간이 더 걸렸다.
오늘따라 다리가 풀리고 걸음은 더디다.
산,산,산...
산들이 물결치듯 사방을 에워싸고 있다.
하늘에는 먹구름이 가득하다.
언제라도 비를 뿌릴 기세다.
서봉을 지나 남덕유산으로 향하는데 한 구간에서 또 막힌다.
이번에는 밧줄도 없다.
바위가 미끄럽고 배낭이 무거워 앞으로 쏠리면서 미끄러질 것만같다.
6시에 남덕유산에 도착했다.
안개천지다.
안개만 아니면 탁 트인 전망을 선사할테지만
지금은 온통 안개세상이다.
삿갓재 대피소까지 가려면 4.3km를 더 가야 한다.
대피소에 늦겠다고 연락을 하고 서두른다.
비박을 할게 아니라면 산길 4km이상을 더 가야 쉴 곳이 있다는게 믿기지 않지만
가 야 했 다.
식욕은 없고 갈증만 더한다.
월성재다.
남덕유산에서 그 사이 1.4km를 걸었다.
삿갓재대피소지기는 대피소까지 오려면 시간이 너무 늦어지니 황점으로 하산하길 권했다.
황점마을로 가려면 여기서 내려가야 한다.
하지만 대피소를 향하여 직진한다.
7시가 넘자 숲에 어둠이 스며든다.
랜턴을 켰다.
비가 부슬거리다말다 한다.
물기를 가득 머금은 공기에 빛이 번진다.
발밑을 밝히며 걷는다.
고요..
앞으로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만 생각한다.
내가 한 발을 내딛지 않으면 대피소와의 물리적 거리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는다.
조급함과 두려움이 사라진 자리에 풀벌레 소리와 고요함이 가득하다.
오직 한마음으로 걷는 나를 내가 가만히 지켜본다.
'삿갓재대피소 0.3km'라고 씌어진 이정표가 나오자 안도의 한숨을 쉰다.
마침내 삿갓재 대피소에 도착했다.
8시 40분.
쉽지 않은 길이다.
하루에 덕유산 종주를 마치는 사람들은 산꾼중의 산꾼이다.
이슬비에 번지는 불빛에 의존해 발밑을 밝히며 걷는 시간.
이슬비에 번지는 불빛에 의존해 발밑을 밝히며 걷는
<2일>
삿갓재대피소-무룡산(1491m)-동엽령-중봉-향로봉(1614m)-백련사-삼공리: 18.5km,8시간+휴식
어젯밤 삿갓재 대피소는 진정한 대피소였다.
밤새 몇몇 산객들이 고저와 장단을 맞추고 미리 바리톤과 베이스까지 정한듯 화음을 맞춰 코를 골아댔지만
어둔 밤 산길을 걸어 온 산객에게 이곳보다 더 안전하고 아늑한 곳은 없었다.
어제 걸어온 길이 궁금하여 고개를 쳐들어보지만 산은 여전히 구름과 안개 저 너머에 있다.
밤새 비가 내리더니 다행히 아침에 그쳤다.
오늘은 덕유산을 맘껏 즐기며 룰루랄라 걷고 싶다.
두터운 먹장구름이 낮게 내려 앉았지만 그 사이 얼핏 보이는 파란 하늘 한 조각을 믿는다.
좋다..
쾌청한 날 나무마다 새순이 돋고 꽃이 피거나 오색 단풍이 들 때 능선에서 사방으로 탁 트인 풍경을 조망하며 걷는대신
바람 한 줌 없는 땡볕 속을 걷거나 바위투성이 가파른 길을 오르내리거나 비를 흠뻑 맞기도 하는 산행이어서 기껍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오르막을 오른 후 달디 단 물 한 모금이나 한줄기 바람이 얼마나 귀한지 알게 되어 행복하다.
오르막이 있으니 내리막도 당연하고 오르막이 가파를수록 내리막도 깊다.
그 무엇도 좋지도 나쁘지도 않으며 주어진 것에 순응하며 즐기는 삶이 '행복한 삶'이라는걸 산은 내게 가르쳐 준다.
느긋하게 풍경을 즐기며 무룡산에 올라 땀을 식힌다.
하늘은 잔뜩 울상을 하고 있으면서도 고맙게도 비는 뿌리지 않는다.
'더도 말고 향적봉까지 갈 동안만 참아다오...'
하지만 동엽령으로 가는 도중에 먹구름이 빠르게 이동한다싶더니 그예 비를 뿌린다.
그래도 더 세차게 오지 않아서 다행이다.
어제도 그랬다.
어둠 속을 랜턴에 의지해 걷는데 비마저 세차게 내렸다면 어땠을까를 생각하면 그저 고마울뿐이다.
어제에 비하면 오늘은 길도 고속도로(?)다.
동엽령을 지나 한 시간 거리인 백암봉으로 향한다.
백암봉은 백두대간 길인 신풍령으로 길이 갈라지는 곳이다.
한시간 거리인 향적봉은 대간에서 비껴서 있다.
중봉이 원래 바람이 많은 곳인가..
중봉을 향해 오르는데 비를 동반한 초강풍이 분다.
빗줄기에서 툭툭 분절된 빗방울들이 초고속 바람에 힘입어 사정없이 얼굴을 강타한다.
한여름에 저체온증이 걱정될 정도로 무섭게 비바람이 몰아친다.
잠시 바람을 피하기 위해 바위밑으로 갔다.우비밑에 방풍재킷을 입고 다시 걷는다.
초강풍에 몇 번 벗겨질 뻔한 친구의 배낭커버가 순식간에 바람에 날아갔다.
중봉을 벗어나자 바람이 잦아들었다.
향적봉 대피소 근처에 경고문이 붙어 있다.
<산객이 심장마비를 일으킨 곳이니 각별히 주의하시오>
...그렇구나..
향적봉 대피소에서 점심으로 라면을 먹고 향적봉에 오른다.
사방이 안개천지다.
0.6km만 가면 무주리조트로 이어지는 곤돌라를 타는 곳이다.
한 쌍의 연인이 구두를 신고 우산을 받쳐 들고 향적봉에 올랐다.
비를 흠뻑 맞으며 이틀동안 몇 개의 봉우리를 넘어 온 곳에 곤돌라를 타고 몇 분만에 숑~ 올 수도 있다는게 재미있다.
향적봉 대피소에서 하루 더 자고 내일 아침 향적봉에 다시 오를까 생각해보지만
내일 날씨 역시 장담할 수없고 일기예보에도 내일은 종일 비가 온다고 한터라 하산한다.
백련사까지는 가파른 내리막.
우비를 입었어도 온 몸이 빗물을 흠뻑 머금었다.
하지만 발바닥에서는 불이 났다.
백련사에서 잠시 쉬어간다.
부처님전에 무사히 산행을 마치게 해주신 것에 감사드린다.
어렴풋이 알 것같다.
이 모든 것은 내 의지가 아니라는 것을..
백련사에서 삼공리 탐방지원센터까지는 5.5km.
멀기도 하다.
아니지..산길이 아니니 걷다보면 금방일게다.
버스터미널에는 6시 10분에 무주로 나가는 버스와 6시 40분에 출발하는 대전행 막차가 대기하고 있다.
하지만 신발이고 옷이고 흠뻑 젖은 몰골로 이동한다는게 부담스럽다.
말로만 듣던 무주 구천동 계곡에서 쉬어간다.
<제일산장>
이름에 걸맞게 산장 분위기가 물씬 난다.
더구나 주방시설이 완비된 공동주방까지 있어 남은 재료로 밥을 짓고 찌개를 끓였다.
산장 옆으로 구천동 계곡물이 포효하며 흐른다.
덕유산은 여전히 구름 저 너머에 있다.
사진 속에는 가파른 오르막이나 내리막,고생한 암벽구간과 야간 산행은 없다.
오르막과 내리막에서의 거친 숨소리와 타는 갈증,예기치 않은 야간 산행의 어둠과 불안,풀벌레 소리
그리고 그 후에 찾아온 마음의 고요는 사진에 담겨있지 않다.
수많은 현재가 과거가 된 시간 속에서 무엇이 남는 걸까..
그렇담 덕유산행은 얼마나 오래동안 남아 있을까..
여전히 쑤시는 종아리와 허벅지,어깨 근육 그리고 전체적으로 묵직한 몸이
덕유산에 다녀 온 일이 아직은 '현재'라고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