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례에 가고 싶었다.
딱히 구례에 대해 잘 아는 건 아니다.
오히려 정 반대다.
하지만 그 낯섬이 궁금증으로 변하여 나를 끌어당겼다.
고향이 있는 충청도는 어디라도 익숙한듯하여 편안하고
경주는 몇 번 가본 곳이라 그리움에 언제라도 또 가고싶다면
구례는 잘 모르기에 호기심이 인 아프리카 같은 곳이다.
물론 음식과 사람들, 풍경에 대한 기대도 컸다.
지리산 자락에 있는 산수유로 유명한 마을을 찾았다.
3월이면 노란 산수유꽃이 지천으로 흐드러진다지만
지금은 산수유꽃이 피는 철이 아니기에 꽃구경을 하려는게 아니다.
그저 지리산 자락에서 고향 시골집에 온듯 며칠 쉬고 싶었다.
농번기를 맞은 산수유마을은 일손이 바빴다.
동네구경도 할겸 배낭을 내려놓고 정자에 앉아 있었더니 동네노인들이 산수유꽃철도 아닌데 바쁜 시골에는 무슨 일인가 하는
표정으로 쳐다본다.
중동, 반석, 상위마을은 산수유꽃이 흐드러지는 봄에는 전국 제일의 관광명소라고 했다.
전국에서 꽃구경을 하러 사람과 차가 모여든다고 했다.
동네는 온통 노오란 산수유꽃으로 물들고 축제분위가라고 했다.
아닌게 아니라 산수유꽃은 진작에 졌지만 동네에 산수유가 지천이었다.
민박집 주인아주머니는 산수유를 발효시켜 만든 원액으로 산수유차를 끓여 주기도 하고 원액을 희석시켜 만든 시원한 산수유 음료도 먹어보라며 내왔다. 산수유로 담근 술을 권하기도 했다.
산수유 음료를 늘상 먹는 손주들은 일년에 감기 한번 안걸리고 산수유주를 반주삼아 먹는 주인장도 잔병치레가 없다고 했다.
아주머니 역시 물대신 산수유차며 음료를 일상적으로 마시는데 그 덕분인지 산나물 뜯어다 내다팔랴 집안일하랴 농사일하랴 바쁘고 힘들지만 쉽게 피로하지 않다고 했다.
인심좋게 권하는 산수유차를 마시며 아주머니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찌뿌등하던 일상의 피로가 스러지며 정신이 맑아지는 것같다.
이름도 어여쁜 꽃담길을 따라 걷다보니 중동마을이다. 해마다 산수유꽃이 만발하는 봄에는 꽃놀이를 하러 오는 사람들로
온 마을이 들썩일테지만 평소엔 지리산의 너른 품에 안기어 사는 조용한 산간 마을이다.
도시에 사는 이들은 하루의 고단한 몸을 뉘일 집을 찾아 퇴근을 서두를 시간인데
산골 마을에서 해질녘은 고즈넉하기만 하다.
해가 지자 산수유공원 정상에 있는 산수유꽃을 형상화한 조형물이 조명을 받아 노란 산수유꽃이 활짝 피었다.
산수유는 봄철에는 노란 산수유꽃으로 마을을 풍성하게 해주고
열매는 발효과정을 거쳐 원액을 이용해 술이나 차 음료를 만들어 일년 내내 마을의 살림살이를 윤택하게 해주고 있다.
병풍처럼 마을을 에워싼 산 능선은 작년에 백두대간을 하면서 걸었던 길이다.
성삼재에서 정령치로 가는 길에 내려다봤던 마을에서 이번에는 그때 걸었던 백두대간을 올려다보고 있다.
상위마을에서 묘봉치로 오르는 등산안내지도를 보고 있으려니 마음이 설렌다.
한달음에 묘봉치에 오른 후 노고단과 임걸령을 지나 천왕봉까지 가고 싶다.
아님 만복대를 지나 정령치로 가서 가슴이 뻥 뜷릴 것같은 풍경을 마주해도 좋을 것같다.
점심때가 되자 주인 아주머니가 팥칼국수를 끓였다며 주신다. 안그래도 끼니 때마다 김치는 있냐 김부각을 맛봐라 직접 담근 된장맛이 좋으니 상추와 싸먹어라 직접 재배한 표고버섯을 줄테니 찌개 끓일 때 넣으라며 소소하게 신경을 쓰셨는데 오늘은 전라도식 팥칼국수를 맛보게 해주신다. 아주머니는 세심하게 입맛에 맞게 넣으라며 설탕과 소금을 함께 내오고 팥칼국수와 잘 어울리는 물김치도 한보시기 담아오셨다. 간소한듯 보이지만 아주머니의 정성과 마음이 담뿍 담긴 풍성한 웰빙 상차림이다.
후루륵 후루륵 순식간에 먹어버린 전라도식 팥칼국수,투박하면서도 입맛을 당기는 별미중 별미다.
상위마을로 산책을 가는데 주인집 개인 순돌이가 따라나선다.
순돌이는 처음 만났을 때는 주인없는 집을 지키고 있다가 낯선 이가 들어서자 경계를 하느라 사납게 짖던 녀석이다. 하지만 묵으러 온 손님이라는걸 알자 이내 꼬리를 살랑거리며 손님대접을 해주었다. 순돌이는 걸을 때마다 한쪽 다리를 절뚝거렸는데 알고 보니 얼마 전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했다. 주인 아주머니는 그만하길 천만다행이라고 했지만 걷거나 달릴 때 영 부자연스러워서 안쓰럽다. 하지만 녀석은 아랑 곳없이 앞서 내달리기도 하고 너무 멀어지는가 싶으면 기다리고 있기도 했다. 집에서 멀어질수록 혼자 저만치 내달리는 대신 주위를 맴돌며 보조를 맞춘다.
이름처럼 순둥이인 순돌이에게 한 마음이 들어 정답게 이름도 불러주고 안보이면 기다려주면서 제법 먼 상위마을까지 함께 산책을 했다.
그 뒤로 순돌이는 볼 때마다 꼬리를 살랑거렸고 아침이면 반가운 기색으로 아는체를 했다.
떠나는 날 순돌이가 배웅을 한다. 그동안 나눈 정이 있으니 문앞까지 배웅을 하려니 했는데 녀석이 계속 따라온다. 정 많은 녀석이 서운해서 그러나싶어 집이 보이는 길 끝까지 오도록 놔두었다. 그쯤에서 한 번 더 작별 인사를 하면 이내 발길을 돌릴 줄 알았다. 하지만 잠시 멈칫 하더니 거리를 두고 계속 따라온다. 모른척하면 돌아갈까 싶어 뒤돌아보지 않고 걷다가 혹시나 해서 돌아보면 여전히 따라오고 있다.
손을 휘휘 저으며 안녕이라고 말해보지만 순돌이는 아직 헤어질 마음의 준비가 안됐나보다. 그래도 동구밖은 벗어나지 못하겠거니하며 천천히 걷는다. 순돌이는 자꾸 뒤돌아보며 집까지의 거리를 가늠하기도 하고 이쯤에서 돌아설까 망설이듯 잠시 멈추기도 했다.
대로변이다. 너무 멀리 왔다. 아직 돌아설 마음을 못내고 있는 순돌이에게 다가가 쓰담쓰담한다.
순돌아 ..이제 집에 가야지..
언제 왔냐는듯 훌쩍 떠날 객에게 이렇게 마음을 내주다니 너도 많이 외로웠구나..
그 후로도 순돌이는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면서 멀찍이서 따라왔다.
그리고 마침내 결심을 했는지 움직이지 않고 오래오래 배웅을 한다.
여행 tip.....교통 : .구례구역~구례시외버스터미널(구례구역앞에서 승차)~(35분)~중동~반석마을
.수원~구례구역:20,200원,
.구례구역(1100원)~구례시외버스터미널(1900원)~중동(걷는다)~반석마을
.숙소 : 반석골 한옥민박 4~5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