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산행-설화산>
.일시:2013년 12월 26일
.교통:온양온천역 근처 버스 정류장에서 100~130번대 버스타고 송악농협 하차~외암마을(도보 10분)
.외암리 민속마을~설화산~민속마을: 약 4km
친구와 온양에서 만나기로 했지만 별 작정은 없었다.
인터넷으로 온양이나 아산을 검색하면 시티투어를 비롯해서 온천 산 민속박물관 민속마을 현충사까지 갈 곳이 많았다.
대부분 안가본 곳들이니 마실가는 기분으로 나선다면 어디라도 괜찮을 것같았다.
하지만 온양온천역에 내렸을 때 산으로 가고 싶을지 몰라 집을 나서면서 스틱을 챙겼다.
온양온천역 앞에 있는 관광안내소에서 지도를 구하고 외암리 민속마을로 가는 버스를 탔다.
한해를 보내며 묵은 때를 벗기고 싶은 마음에 온천을 생각하기도 했지만
민속마을을 둘러보고 마을 뒷산인 설화산에 올라도 좋을 것같았다.
몇년전 친구와 광덕산에 갔다가 강당리로 내려오면서 이곳에 들른 적이 있다.
때는 가을이어서 밤이 풍성했고 고즈넉한 가을 풍경속에 잠시 판소리에 잠기기도 했다.
한 겨울에 다시 온 마을은 그때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이맘때 여느 시골 마을이 그렇듯 논도 밭도 텅 비어 있고 골목에는 아이들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하릴없는 동네 개들만 골목이나 논밭을 어슬렁거린다.
줄에 묶여 집을 지키고 있던 개들도 낯선 이들이 지나가면 의마무지로 컹컹대다 만다.
옛 고향마을 같은 동네를 산책하며 산 초입으로 들어섰다.
정자에서 잠시 쉴 때 슬그머니 다가온 개 한마리가 따라온다.
몸에 비해 다리가 유난히 짧아 보는 이가 애처로운데 힐끔힐끔 눈치를 살피는게 영락없이 사랑받지 못한 개다.
집으로 돌아가라고 재촉해보지만 녀석은 마땅히 갈 곳이 없는지 쭈뼛거리면서도 몇발짝 뒤로 계속 따라왔다.
안부 사거리까지는 이 동네에 살면 매일 산책삼아 걸어도 좋을 길이다.
눈발이 흩날린다.
몇년전 배방산~태학산~망경산~광덕산 종주를 한 적이 있어 잠시 광덕산과 설화산으로 갈리는 갈림길에서 감회에 젖는데
눈발이 점점 굵어지고 바람까지 세차게 분다.
하지만 240미터만 가면 정상인데 여기서 돌아설 생각은 없다.
고작 240미터다.
이런 내게 맞짱을 뜨려는지 눈보라가 이래도 올라갈테냐며 몰아친다.
급경사에 퍼붓는 눈.
사실 올라갈 일보다는 눈길에 내려올 일이 더 걱정이지만
일단 올라가는데 힘을 쏟는다.
밧줄구간이 이어진다.
멍멍이는 눈 속에 빠져가면서도 잘 올라온다.
너무 춥거나 발이 시리지는 않을까..
낯선 환경과 상황에 겁을 먹고 있는건 아닐까...
지금 저 녀석의 유일한 의지처가 만난지 몇 분 안되는
거의 생면부지나 다름없는 우리다.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며 녀석을 보니
녀석은 우리를 놓치지 않으려는듯 바싹 붙어 있다.
눈발은 점점 거세지고
세상은 온통 회색이다.
가볍게 나선 산행이 한순간에 히말라야 동계등반(^^)으로 바뀌었다.
설화산이 늦은 가을부터 이른 봄까지 눈덮인 풍경이 장관을 이룬다하여 '눈이 찬란하게 빛나는 산'이라는 의미를 지닌
雪華山 이라는 이름을 얻었다는데 오늘 이름값을 톡톡히 하려나보다.
마침내 정상.
눈바람이 휘몰아치고 한치 앞이 안보인다.
해발 441m의 산 정상에는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다.
다이내믹한 송년산행이다.
정상에서 다른 방향으로 하산하려 했지만 녀석을 안전하게 데려다주기 위해 다시 마을로 내려왔다.
줄곧 보조를 맞추던 녀석은 동네에 다 와가자 여기부터는 자신의 터전이라는듯 혼자 논밭을 다니더니 다른 이들을 따라간다.
슬그머니 다가와 잠시 인연을 맺더니 우리의 인연은 여기까지라는듯 뒤도 안돌아보고 가버린 녀석.
이름을 몰라 제 이름 한번 불러주지 못했고
산에서 내려 오면 배낭 안에 있는 뭐라도 나눠 먹으려 했는데 그럴 사이도 없이 가버렸다.
(인연은) 이만큼인가보다.
동네에 내려서니 언제 그랬냐싶게 하늘이 개었다가 다시 눈을 퍼붓기를 반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