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오피아

랄리벨라,에티오피아-2010

나는 걷는다 2012. 9. 7. 07:36

<랄리벨라Lalibela>

 

드디어 올 것이 왔다.

그동안 악명높은 침대벌레를 피하느라 갖은 애를 썼건만 어젯밤에 제대로 당했다.

 

랄리벨라로 가기 위해 메켈레에 도착한 것은 악숨을 떠난지 6시간만이었다.

차에서 내리자 울디아로 가는 합승봉고가 호객을 하고 있었지만 앞으로 6시간을 더 가야 할 일이 아득해서

메켈레에서 하루 머물기로 했다.

 

절대 엄살이 아니다.

새벽에 일어나 터미널로 가서 직각 의자-정직하게 90도이다-에 앉아 온 6시간은

어지간한 길 12시간 이상을 달려온 듯 피로하다.

몸은 무조건 휴식을 원했다.

 

터미널 근처 숙소들은 시설에 비해 턱없이 비싸거나 형편없었다.  

그런 숙소에서 침대벌레가 무더기로 나온다고해도 하나도 이상할 것같지 않았다.그럼에도 에티오피아에 온지 3주가 지나도록 침대벌레와 일별을 하지 않았다는 점과 오늘밤도 억세게 운이 좋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턱없이 비싼 숙소대신 턱없이 형편없는 숙소를 택했다.

 

방에서 쉬어야하지만 찜찜해서 어두울 때 들어가서 자고 새벽에 나오리라 결심하며 엄마에게 혼나고 집밖으로 겉도는 아이마냥 하릴없이 동네를 돌아다녔다.

 

 

 

여느때처럼 침대 위에 텐트를 쳤다.

그래도 찜찜한 마음에 쉽게 잠을 못이루다가 피곤에 지쳐 잠이 들었다.

 

아악~!! 

느낌이 이상해서 불을 켰다. 새벽 2시 20분.

비상이다. 몸 여기저기가 가렵다했더니 불을 켜자 노란색 텐트 위로 침대벌레가 기어다닌다.

이미 텐트안으로 들어와 느긋하게 기어다니는 녀석들도 족히 스무 마리는 되고

텐트 밖에서 안으로 들어올 구멍을 찾으며 기어다니는 놈들도 그만큼이다.

노란 텐트 위에서 꼬물거리는 까만 점들..

비대한 몸으로 여유를 부리며 제 세상인양 기어다니는 저 놈들을 어찌할꺼나..

 

눈에 불을 켜고 대대적인 소탕작전을 벌였다.

빈대든 벼룩이든 눈에 보이는대로 섬멸하고 입은 옷이며 침낭을 뒤집어 탁탁 털었다.

몇몇 녀석들은 약올리듯 높은 점프력을 과시하며 숨바꼭질을 하잔다.

 

잠이 확 달아났다.

아직 아침이 오려면 몇 시간을 더 기다려야 하지만 더 이상 침대에서 잘 엄두가 나지 않는다.

 

 

 

자는둥마는둥 새벽같이 숙소를 나섰다.

침대벌레에게 물린 곳들이 가렵고 가렵다. 하지만 앞으로가 더 문제다.

한 마리든 두 마리든 침낭이나 옷에 붙어 있으면 세를 불리며 낮이고 밤이고 괴롭힐 테니까.

-그 후로 에티오피아를 떠날 때까지 자기 전과 자고 나서 침낭이며 옷을 뒤집어서 있는 힘껏 털고 햇볕에 일광욕을 시키는 일이 반복되었다.

 

메켈레에서 울디아까지는 악숨에서 메켈레까지 온만큼 걸렸다. 그리고 울디아에서 랄리벨라까지도 꼭 그만큼 더 가야

한다. 어젯밤에 호되게 당한터라 울디아에서 신중하게 숙소를 찾아보지만 숙소 사정은 어젯밤과 별반 다르지 않다.

오늘밤을 무사히 넘기기를 고대하며 터미널앞에 있는 숙소 중 그나마 나은 곳에 짐을 풀었다.

 

 

 

악숨에서 메켈레와 울디아를 거쳐 랄리벨라로 가는 2박 3일동안 몸은 고되기 한량없지만 눈은 호사한다.

특히 고원을 달리는 울디아에서 랄리벨라로 가는 길은 인상적이다.

 

랄리벨라가 멀지 않은 곳에서 한 무리의 아이들이 박수를 치고 춤을 추며 달리는 버스를 쫓아온다.

 

 

 

랄리벨라에 도착해서 버스에서 내리자 어디선가 노래소리가 들리고 사람들이 북적인다.

숙소 구할 생각은 뒷전이고 소리나는 쪽으로 향했다.

똑같은 머리 모양을 하고 기독교 제의를 할 때 입을 듯한 십자 수가 놓인 하얀 옷을 입은 여인들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거리를 행진한다.

 

운좋게 잔칫날 놀러왔나보다.

 

 

 

 

랄리벨라는 유서깊은 곳이건만 워낙 오가는 길이 만만치않아 여행자들은 주로 비행기를 이용하거나 건너뛰기도 한다.

 

12세기에 랄리벨라 왕은 악숨에서 로하로 수도를 옮긴 후 자신의 이름을 따서 랄리벨라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후 랄리벨라는 130여년간 지그웨왕조의 수도 역할을 했다.

 

 

 

왕은 수도를 옮긴 후 조국의 번영과 이슬람 세력의 확장으로 쇠퇴한 기독교의 부흥을 꿈꾸며

지하 암굴 교회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약 120여년간에 걸쳐 완성된 11개의 암굴교회들은

온전히 보존되어 성지 순례자들과 여행자들을 맞이한다.

 

 

 

랄리벨라는 한 때 한 나라의 수도였다는게 실감나지 않을 정도로 작은 마을로 변해버렸지만

여전히 깊은 신심으로 전통을 지키며 살아가는 후손들이 있다.

 

 

 

 

 

날이 밝았다.

암굴교회군 매표소가 있는 북쪽 교회옆 공터가 오늘의 행사장이다.

 

화려하게 꾸민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행사장으로 모여든다.

비가 부슬거리고 땅은 질척했지만 축제의 열기에 휩싸인 사람들은 개의치 않았다.

 

아직 행사전이건만 속속 도착하는 팀들이 몸풀기라도 하듯 흥을 돋우며 춤판을 벌인다.

 

 

 

여자들은 머리카락을 몇가딕씩 잡아 야무지게 반정도 땋고 나머지는 풀어 여성미를 살리고 

귀걸이와 목걸이로 한껏 멋을 냈다.

남자들은 군인복 분위기가 나는 옷에 스팽글을 달아 멋을 더하고 긴 장대를 들었다.

 

한 팀에서 시작하면 바로 옆에 있는 팀도 뒤질세라 함성을 드높이며 춤을 추기 시작한다.

춤꾼들의 흥을 돋우는 것은 빙 둘러싼 이들의 추임새다.

선동적인 추임새가 높고 빨라질수록 사뿐사뿐 시작한 춤은 어깨가 탈골될 정도로 격렬해진다. 

 

 

 

사회자가 시작을 알리자 하얀 두건과 망토를 두른 사제들이 등장했다.

북 단에 맞춰 줄지어 앞으로 걸음을 옮기면 맞은편에 있는 사제들은 뒤로 물러나고 다시 반대로 하기를 반복한다.

 

 

 

마치 우리집에 왜왔니 왜왔니 왜왔니 놀이를 아주 천천히 하는 것같다.

춤이라기보다는 제의같다.

 

사제들이 이렇게 한자리에 모이는 것도 귀한 일이라고 한다.

 

 

사제들의 의식에 이어 본격적인 축제가 벌어졌다.

각 팀은 순서가 되면 무대 앞으로 나와 춤을 춘다.

각 팀의 춤과 노래는 비슷한듯 조금씩 달랐다.

 

상대의 실력을 가늠해 보려는듯 처음에는 웃음을 지으며 여유있게 어깨를 살짝살짝 들썩이다가 장단이 빨라질수록 

춤사위가 격렬해진다.

두 사람의 호흡이 척척이다. 만약 춤을 통해 배우자를 찾는다면 그들은 천상배필같다.

 

 

 

호기심에 가득 차서 거의 무아지경에 이른 춤꾼들을 지켜보는 여자아이의 눈길이 예사롭지 않다. 

 

 

 

 

공연이 끝나자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에티오피아가 먹거리가 귀한 곳이긴 한가보다. 사람들이 많이 모인 잔칫날이건만 이렇다할 먹거리 장사가 보이지 않는다.

밭에서 막 캐온 듯 흙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잘디잔 당근을 자루에 담아서 입구에서 파는 아이가 있긴 했다.

누군가 살라치면 아이는 그 자리에서 당근 잎을 떼어낸뒤 내밀고 산 사람은 씻을 것도 없이 그 자리에서 입으로

꼬랑지를 베어내고 먹는다.

 

잘고 시큼해보이는 레몬을 작은 양동이에 담아 파는 아이도 있다.

레몬을 산 사내는 마치 사과나 되는 양 시큼한 기색도 없이 그 자리에서 베어 문다.

 

도넛장사나 보리를 볶아서 파는 장사들은 이런 대목에 어디 가서 뭐 하는지 모르겠다.

 

 

 

오후가 되자 춤꾼들은 가게나 집을 돌며 한바탕 춤을 추고 주인에게 돈이나 음식을 제공받았다.

마치 1년동안 무탈하기를 기원하는 액막이 춤을 추는 것같았다.

 

우리 숙소에도 춤패가 왔다.

어제는 여자들이 와서 한바탕 놀고 거하게 대접받고 가더니 오늘은 남자들이다.

마을 유지인 주인 아주머니가 나와 그들을 맞는다.

 

 

 

여자들이 추는 춤이 아무리 격렬하다해도 남자들이 추는 파워풀한 격렬함에 비할 바가 아니다.

 

춤패는 먼저 주인에게 왔다는 인사를 하고 둥그렇게 원을 그리고 앉았다 일어났다하며 분위기를 잡더니

그 중 한 사내가 일어나 춤을 추기 시작한다.처음에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듯 추는듯마는듯 시작한다.

그러다 함성이 점점 높아지면서 춤은 격렬해지고 제 흥에 못이긴 다른 사내가 일어나 춤판을 벌인다.

 

 

 

통 큰 주인 아주머니는 최고의 춤꾼에게 주겠다며 상금을 걸었다.

환호성과 함께 춤은 더욱 격렬해지고 앉아서 분위기만 보던 다른 춤꾼들도 일어서기 시작한다.

  

 

 

이제 흥은 최고조에 올랐다.

이마에 떡 하니 구경꾼들이 준 돈을  붙인 춤꾼들은 신명났다.

그들의 신명에 앞으로 이 근방에 잡귀는 얼씬도 못할 것같다.

 

 한바탕 흐드러지게 논 춤꾼들은 주인이 정성스레 준비한 식사와 술대접을 받았다.

 한바탕 잔치는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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