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샤머니-아와사-아르바민치-진카-콘소-모얄레
<아와사-배낭을 도둑맞다>
이른 새벽
어둑한 터미널을 돌아다니며 아르바민치로 가기 위해 탈 버스를 찾는다. 영어로 된 표지판은 커녕 어두워서 주변을 제대로 분간할 수조차 없다. 한 현지인 사내가 도와주겠다며 앞장서더니 버스를 찾아서 자리를 안내한다. 불편함을 감수하고라도 배낭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큰 배낭을 짐칸에 두는 대신 발 아래 두었더니 안그래도 좁은 자리가 더 비좁다. 발 둘 곳이 마땅치 않다. 사내가 평소 무릎에 두던 작은 배낭을 선반 위에 올려놓겠다며 달란다. 오늘 따라 무거워서 바로 머리 위니까 수시로 올려다봐야지하며 넘겨줬다.
모든 것이 어수선하고 희미하다.
사내가 내리고 잠시 후 올려다보니 작은 배낭이 없다. 앗차싶어 선반 전체를 둘러보며 혹시나 하고 사내를 찾아 내렸으나 사내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꾼에게 걸려든 것이다.
멀쩡하게 옷입고 어수선한 새벽 터미널에서 외국인에게 접근해서 도와주는 척하며 배낭을 들고 나르는 전문 꾼.
그는 큰 배낭을 노렸을 테지만 여의치 않자 작은 배낭을 낚은 것이다.
멘붕~
방금 전에 일어난 일이 믿기지 않는다. 많은 일을 겪으며 수년동안 여행했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다. 특히나 이동할 때는 더 주의를 기울이곤 했다. 무엇이 잘못 되었을까.. 배낭이 바닥에 떨어졌거나 한쪽으로 밀렸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버스 안을 샅샅이 살펴보지만 헛수고다. 순간의 방심이 낳은 참혹한 결과다.
배낭 안에 뭐가 있었더라...
정신을 수습하며 이성을 찾으려 애쓴다.
여행을 떠난 이후 6개월동안 줄곧 써온 일기장, 10년동안 여행할 때마다 갖고 다닌 컵과 수저, 몇 년전 터키에서 사서 수시로 목을 감싸던 스카프, 여권 사본과 비상용으로 신용카드 번호를 적은 종이, 책, 오래전 여행 중에 만난 외국 친구에게 선물받아서 줄곧 써 온 핸드메이드 필통과 필기도구들 그리고 길 위에서 늘 나의 단짝이었던 배낭..
그가 기대했을 현금이나 사진기 등 돈이 되는 물건은 없었지만 내게는 오랜 손때가 묻은 소중한 물건들을 한순간에 잃고나니 망연해졌다. 이 모든 것들과의 인연은 이만큼인가보다하고 마음을 다스려보지만 40일이상 에티오피아를 여행하며 쌓여 있던 심신의 피로가 극도로 몰려왔다. 혹시 악용될지 몰라 아르바민치에 도착해서 한국으로 전화를 걸어 신용카드를 정지시켰다.
소수민족들이 고유의 의상과 풍습을 지키며 살고 있는 오모벨리를 여행할 생각에 들떠 있었는데 한순간에 여행 의욕이 떨어지고 의기소침해졌다. 그리고 그 후 한 달동안 상실감에 일기를 쓰지 못했다. <진카 - 장날>
...그리고 물설고 말설은 진카에서 죽도록 앓았다.
고열과 오한 계속되는 설사.
열은 며칠 후에 소강상태를 보였지만 설사는 멈추지 않았다.
5분이 멀다하고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온 몸의 수분이란 수분은 모두 빠져나간 것같다. 식욕도 없고 음식을 먹을라치면 속에서 거부반응을 일으켜 먹을 수도 없다. 말로만 듣던 말라리아에 걸렸을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을 애써 떨쳐내며 억지로 음식을 먹고 가지고 있던 해열제와 설사약을 털어 넣으며 조금이라도 나아지길 바랬다.
방 안에 있는 조각 거울 속의 내 모습이 딴 사람같다.
눈이 퀭하고 볼살이 쏘옥 들어가서 한 눈에 봐도 중환자다.
내가 이렇게 말랐던 적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앙상해진 몸이 연체동물처럼 흐느적거렸다.
먹거리를 찾아 밖으로 나오자 동네에 있는 노천 비행장에서 비행기가 이륙하는 모습을 보려고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모습을 바로 눈앞에서 볼 수 있는 비행장이다. 동네 사람들은 전에도 수없이 봐왔을 테지만 마치 처음 보는 풍경마냥 신기해하고 신나했다. 평소같으면 나도 덩달아 좋아했을 테지만 지금은 걷기도 힘들다. 무조건 뭔가를 먹고 기운을 차려야 한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진카 장날.
주변 소수부족민들이 그들 고유의 의상을 차려입고 장을 보거나 물건을 팔러 온다기에 기대가 컸다.
더욱이 장날 하루 전인 어제 진카로 와서 동네를 돌아다니는 무르시족 여인들을 본터라 기대감은 더욱 커졌다.
그녀들은 외국 여행자들이 많이 묵는 호텔 앞에서 입에 큰 접시를 물고 가슴을 다 내놓은 채로 서너명이 무리를 지어 서 있다가 호텔을 들고나는 여행자를 보면 사진을 찍으라며 포즈를 취했다.그리곤 손을 내밀었다.
그녀들에게 장날 전날부터 대목인 것이다.
아침부터 마음이 들떠 채 회복되지 않은 몸으로 시장으로 향한다.
가는 길에 키 큰 원주민 청년을 만났다. 그는 마사이족처럼 귀걸이와 목걸이로 한껏 치장을 하고 큰 천을 옷삼아 걸치고 긴 장대를 들고 나타났다. 초콜렛색의 건장하고 미끈한 몸을 한 청년이 순진하게 웃으며 악수를 청했다.
엔돌핀이 솟으며 호기심이 마구 일었지만 차마 그에게 사진을 찍고 싶다고 말하지는 못했다. 선하게 웃는 그가 모델료를 요구하면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겠기 때문이다. 더구나 모델료는 마치 공시가나 되는 양 사진 한 장당 얼마로 정해져 있었는데 그 액수가 만만치 않았고 무엇보다 그와 나눈 악수와 웃음이 돈으로 거래되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활기 넘치는 장을 구경하며 잃어버린 일기장을 대신할 공책과 간식으로 먹을 바나나와 파파야도 샀다.
돈이 없는 아이들도 괜스레 장을 몇 바퀴씩 돌며 기분을 내거나 외국인이 사는 물건에 흥미를 보이며 따라다녔다.
세월의 손때가 묻은 조롱박 안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
흥정이 한창인데 이리 보고 저리 보아도 궁금증만 더할 뿐이다.
옷을 파는 노점 한켠에서 무르시 여인이 아이에게 젖을 먹이고 있다.
간결하면서도 감각이 느껴지는 장신구를 하고 벌거숭이 아이를 안고 젖을 먹이는 모습이 이색적이면서도 자연스럽다. 그녀에게서 원시의 건강함과 멋스러움이 느껴진다.
몸도 추스리고 장구경도 하고 콘소로 가는 길.
맞은편에서 오던 덩치 큰 트럭이 진창에 빠져 오도가도 못하고 있다. 하는 수 없이 차에 탄 승객들이 모두 내리고 남정네들이 힘을 합쳐 힘껏 트럭을 밀어 보지만 여의치 않다. 얼마를 기다려야 할 지 알 수 없지만 아침 공기는 선선하고 땅과 풀내음이 기분을 돋군다.
<콘소-장날>
사람들의 함성소리를 따라 왔더니 축구경기가 한창이다. 에티오피아를 여행하는 동안 이처럼 건강하고 역동적인 모습을 보지 못한터라 신선했다. 키 크고 탄력있는 몸을 가진 선수들이 운동장을 누비고 있다.
파란 하늘에 뭉게구름이 두둥실 떠다니고 응원하는 팀이 전력질주하며 골대로 공을 몰 때마다 드높은 함성이 하늘에 울려 퍼진다.
아침부터 삼삼오오 짐을 진 이들이 장으로 향한다.
각종 곡식이며 직접 기른 푸성귀, 나뭇짐, 옷가지...
채 열 살 남짓이나 될까하는 여자 아이도 자기 체구에 서너 배쯤 될 성싶은 나뭇짐을 지고 장으로 향한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지고 오는 길일까..
아이는 저것들을 다 팔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아마도 쉽지 않을 것이다.
감자면 감자, 콩이면 콩, 땔감면 땔감.....무엇이라도 내다 팔아야 생계를 꾸려갈 수 있기에 같은 물건을 파는 사람이 적어도 수십 명은 되니 말이다.
시간가는줄 모르고 시장 구석구석을 돌고 돈다.
파파야를 사고 옷가지를 들었다놨다 하기도 한다.
어라, 그런데 중고 옷가지들 사이에 반가운 한글이 눈에 띈다.
한국에서 누군가의 체육복이었을 옷이 멀리 아프리카 에티오피아 콘소까지 온 것이다. 참 멀리도 왔다.
멀미는 하지 않았으려나..돌고 도는 모든 것에 경의를..
시장 한켠에 있는 주막도 술 한 잔으로 목을 축이려는 사람들로 그득하다. 의외로 여자들도 많다.
나도 그녀들사이에 한 자리 차지하고 앉아 술잔을 받았다. 멋스럽기도 하지. 조롱박 술잔이다.
호탕하게 웃는 그녀들과 지화자를 한다.
일찌감치 가져온 물건들을 다 판 것일까..아님 장보러 와서 일단 한 잔 하고 있는 것일까..
그녀들이 입은 옷만큼이나 삶은 누추할지 몰라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세상 부러울게 없는 표정이다.
함께 술잔을 나눈 그녀들의 삶이 오색찬란한 옷감들만큼이나 빛날 수 있다면...
장보러 나온 여인이 부러운 눈으로 햇빛 속에서 찬연하게 빛나는 옷감을 오래도록 응시한다.
<국경으로 가는 길>
두 달여의 에티오피아 여행을 마무리하며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가졌던 궁금증에 어떤 답을 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에티오피아는 호방한 자연풍광 못지 않게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지녔으며 그에 걸맞는 유적과 문화유산이 풍부한 나라이다. 여행자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여행지인 것이다.
반면에 뼛속까지 저린 가난의 실체를 매 순간 일깨우는 나라이기도 했다. 그 가난은 사람을 옹골지게 만들고 또 자국에 대한 자부심이 지나쳐 때로는 자만과 경계를 오가고 이방인에 대한 배타로 이어지기도 했다. 결코 만만치 않은 여행지이기도 한 것이다. 게다가 일상적인 먹거리와 잠자리, 이동, 사람들의 기질도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콘소에서 케냐와의 국경 마을인 모얄레에 오기까지도 지난했다.
표를 판 녀석은 버스표를 사기치고도 당당하고 운전사는 사기꾼과 한통속이고 경찰은 있으나 별무소용이고..
떠나는 순간까지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게하는 나라.
시간이 지난 후에도 오래동안 기억에 남을 여행지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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