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2003>
*일정:2003.5.18~2003.8.31(100일)
*여정:운남성(쿤밍-리지앙-따리-중띠엔-드어친-번지란-중띠엔)
쓰촨성(시앙청-리탕-캉딩-청뚜-쏭판-루얼까이(조이개)-랑무쓰)
깐쑤성(흐어쭈어-샤허-난조우)
닝샤성(쭝위이)
내몽고(바토우-호하호트어)
샨시성(따통)
베이징(北京)
흐어베이성(청드어承德)
랴오닝성(션양沈陽)
지린성(통훠通化-지안集安-통훠-바이흐어白河-옌지蓮吉-장춘長春)
베이징
**6월 4일~8월 1일 사이의 티벳탄 지역 여행은 <티벳>편에 싣습니다
<5월 18일,일요일>,쿤밍昆明
긴 하루였다.
짐을 맡기고 리와 정태씨,경아 그리고 학교 복무원 아저씨,아주머니의 배웅을 받으며 공항으로 향했다.
사스 때문에 북경은 여전히 긴장감이 감돌고,2주간 휴교를 한 후 다시 문을 연 학교수업은 파행을 거듭했다.
그도 그럴 것이 대부분의 유학생들이 귀국했기 때문이다.
200여명이 넘는 학생들이 있었지만 이제 남아 있는 학생은 겨우 열 다섯 명 정도.
어쩔 수없이 학년이 다르고 학습 정도가 다른 열 다섯 명이 같은 시간에,같은 공간에서 수업을 받는다.
물론 능률은 오르지 않는다.
'그럴 바엔 공부를 잠시 중단하고 여행을 떠나자'
기다렸다는듯 또다른 내가 속삭였다.
사스 환자가 한 명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운남성으로 가기로 마음을 정했다.
방학때 여행하려던 곳이었기 때문에 일정이 두 달정도 앞당겨 진 것뿐이라고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베이징에서 쿤밍까지 기차를 타려 했지만 주위 사람들의 애정어린 걱정때문에
결국은 운남성의 성도인 쿤밍행 비행기 티켓을 예매했다.
공항 출입문에서 체온 검사를 했다.
공항안에서도 모든 사람들이 마스크를 하고 있다.
사스 병원균에게 허점을 보이지 않기 위해 마스크를 2개씩 한 사람들도 많다.
그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답답하다.
기내에서 스튜어디스들도 마스크를 하고 있다.
좌석의 반 이상이 비었다.
긴장감이 맴도는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여행을 떠난다는 설렘에 마음이 둥실 떠오르려는데
스튜어디스가 체온을 재기 시작했다.
오후 3시 5분,북경을 출발한지 3시간 30분만에 쿤밍에 도착했다.
공항에 도착은 했지만 비행기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승객 중 한 명의 체온이 높다는거다.
사스의 주된 증상 중 하나가 고열이기 때문에 열이 높은 사람은 예비 사스 환자로 간주되어 정밀 검사를 받아야 한다.
젊은 중국 남자다.
하얀 방역복으로 완전 무장을 한 의사 2명이 비행기 안으로 들어와서 그의 체온을 다시 재고
승객들은 승무원들이 2개씩 나누어 준 마스크를 하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잴 때마다 열은 점점 더 올라갔다.
'허술하기도 하지.베이징 공항에서 두 번씩이나 체온 검사를 하면 무슨 소용이람.'
4시 20분이 지나서야 승객들은 겨우 비행기에서 내려 대기실로 갔다.
그가 아무 이상이 없다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같이 비행기를 타고 온 모든 승객은 격리된 채 마냥 기다려야 한다.
쿤밍의 하늘이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 있더니 급기야 비를 퍼부었다.
공식적으로 하루에도 수십명씩 사스 환자가 발생하는 베이징을 피해 사스 환자가 한 명도 없다는 쿤밍으로 왔더니
오자마자 이게 웬 난리인지 모르겠다.세상사가 다 그렇다.
6시 30분에 배달되어 온 도시락으로 저녁을 먹고 한 사람씩 신상 명세서를 작성했다.
밤 11시가 넘자 잠은 쏟아지고 몸도 지쳐갈즈음 누군가 이제 가도 된다고 했다.
그 젊은이가 사스에 걸리지 않은 것으로 판명되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열 두시가 넘으면 이 많은 사람들 잠자리 마련하는 것이 더 큰 일이라 판단했기 때문인지 알 수없다.
공항에 도착한지 8시간만에 공항밖으로 빠져 나왔다.
나말고 유일한 외국인인 서양 커플과 함께 택시를 타고 차화빈관으로 갔다.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다.
커플은 더블룸으로 가고 나는 침대가 세 개있는 도미토리에 들어갔다.방안에는 아무도 없다.
하얀 시트위에는 이름을 알 수없는 벌레들이 기어다니고 샤워실에는 쥐가 제 세상인양 설쳐댄다.
빗소리에 깨어보니 여전히 하얀 시트와 베개 위에 눈꼽만한 까만 벌레들이 활개치고 있다.
쿤밍이 '꽃의 도시', '봄의 도시'라 하여 기대가 컸건만 줄기차게 비만 내린다.
혹 '비의 도시'라는 별칭도 갖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숙소를 알아보러 오전 내내 걸어다니다 보니 도시가 막 세수한 아이의 얼굴처럼 말끔하다.
<곤호반점>으로 옮겼다.
운남성 박물관은 사스때문에 휴관이다.
소수민족 테마 파크인 운남민족촌은 여행객들이 없어 넓디 넓은 공간이 휑하기만 하다.
줄기차게 내리는 비가 을씨년스러움을 더한다.
2시간 동안 빗 속을 걸어다녔다.청승이다.
운남민족촌 맞은편에는 운남민족박물관도 사스 때문에 한 달간 휴관했다가 오늘부터 문을 열었다.
그곳에서 운남성 특산물인 푸얼차(보이차)를 파는 바이핑을 만났다.
시쐉빤나가 고향인 그녀는 따이족이다.
웃음과 말씨가 그녀가 타주는 담백하고 은은한 5년산 보이차를 닮았다.
하루는 금전(金殿),다음날은 서산삼림공원,마지막 날은 쓰린石林...
쿤밍에 있는 일주일동안 사스는 나몰라라하고 날마다 놀러 다녔다.
그러는 사이 소수민족박물관에는 두어번 더 가서 바이핑과 다른 직원들과도 재미있게 어울렸다.
이제 걸음마 단계인 중국어 실력으로 만나는 현지인들과 청산유수로 수다떠는 것이 어림없는 일인데도
가는 곳마다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잘 어울리니 신기할 뿐이다.
<5월 24일,토요일>,따리(5시간,66.5위엔)
쿤밍은 이제 충분하다.
하루 종일 쓰린을 구경하고 저녁나절에 따리로 향했다.
하지만 버스는 샤관이 종점이다.
샤관에서 고성인 따리까지는 다시 버스를 타야 하는데 시간이 늦어 이미 끊겼다.
한 명이라도 손님을 더 태울 생각에 밤 늦게까지 따리로 가는 버스가 있다는 차장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은게 잘못이었다.
하는 수없이 택시를 타긴 탔는데...
처음 와보는 곳에, 밤거리에,택시라..그닥 좋은 선택이 아니다.
따리도 사스의 기세가 등등해서 많은 여행자들이 리지앙으로 가지 못하고 발이 묶여 있었다.
외지(국)인은 출입금지!!
하지만 막 이곳에 도착한 나는 태평하다.
따리 고성과 이 마을 저 마을에서 열리는 장구경하며 며칠 지내다보면 리지앙으로 가는 길이 열릴 것만 같았다.
매주 월요일은 샤핑 장날이지만 사스때문에 장이 열리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샤핑도 외부인은 출입금지다.
샤핑까지 가는 길에 공안(경찰)들이 버스를 세우고 중간중간 검문을 했다.
우리때문에 잦은 검문으로 시간이 지체되어 성가시다며 현지인 승객들과 운전사가 내리라고 성화다.
하는 수없이 내려서 걷다가 '남조풍정도'로 가는 버스를 탔다.
사스가 발발한 이후,외지인 출입이 금지되었기 때문인지 현지인 승객들이 우리를 보는 눈초리가 호의롭지 않다.
천국의 섬이라는 남조풍정도도 역시 출입금지.
아쉬운대로 섬이 바라보이는 곳에 방을 얻어 하룻밤 잤다.
파도소리가 처얼썩 처얼썩~.
따리 장날.
소수민족들이 직접 만든 물건이며 재배한 채소와 가축들이 빼곡한 장을 구경하다보면 시간가는줄 모른다.
장바구니를 어깨에 매고 물건을 고르는 사람들의 뒷모습이 재미있다
<5월 28일,수요일>,따리-창산에 가다
따리는 지형적으로 배산임수다.
뒤로는 창산이 따리고성과 펼쳐진 논밭을 굽어보고 있고 앞으로는 얼하이강이 따리의 젖줄 역할을 하고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올려다보는 창산에 가고 싶다.
말을 타고 가기도 하고 로프를 이용할 수도 있고 걸어가는 방법도 있다.
당연히 걸어가는 쪽을 택했지만 주위에서 여자 혼자 걸어가는 것에 반대다.
한적한 산길을 혼자 걷는 여자 여행자들을 상대로 불미스런 일이 이따금 생긴다는 것이다.
다행히 맞춤한 동행을 만났다. 옆방에 묵는 이웃사촌 여행자.
알고 보니 그는 따리에 발이 묶이면서 벌써 한 달이상 머물고 있었다.
그 사이에 창산에 두 번 올라갔다고 했다.
하지만 밥 한끼를 사겠다며 동행을 청했더니 순순히 들어주었다.
그가 지름길로 질러가서인지 길은 생각보다 가파르다.
<산딸기2>도 아니건만 나는 계속 헉헉거린다.
아무 말없이 조금 앞서 걷는 동행에게 미안하다.
거의 다 왔다는 동행의 말을 굳게 믿지만 다리는 묵지근하고 숨은 가쁘다.
머리 위로는 로프가 유유히 오가고 가끔씩 말을 타고 오가는 관광객들을 만나기도 한다.
인생길에서 같은 목적지를 로프를 타고 갈 수도 있고 걸어서 갈 수도 있다면...
가끔은, 아주 가끔은 로프 타고 싶다.
창산 중턱에 있는 중화사에서 다리쉼을 한다.
아래 세상을 내려다보니 고성의 아름다운 라인이 고스란히 한 눈에 들어 온다.
그리고 저 멀리 얼하이 강이 유유히 흐르고 벼이삭을 품은 파릇한 모들이 넓디 넓은 논에 펼쳐져 있다.
오길 잘했다.
힘들게 올라 온 고생스러움은 눈녹듯 스러지고 마음까지 개운하다.
중화사에서 그리 멀지 않은 폭포까지 올라갔다 온다.
6시간의 산행.
약속한대로 동행에게 저녁을 샀다.
그가 선택한 메뉴는 차오판(볶음밥).
중국을 여행하면서 볶음밥만 먹어서 별명이 '차오판'이라고 했다.
<5월 29일,목요일>,샤관下關
얼하이 공원에서 만난 중년 부부는 천생연분인 것같다.
아주머니가 말할 때마다 허허 웃는 남편은<샤관 1중학교> 물리 선생님이고 아주머니는 유치원 선생님이다.
아저씨 취미는 얼마전에 배운 컴퓨터랑 놀기,디지털 카메라로 사진 찍기 그리고 바이얼린 연주다.
쉰일곱이라는 나이에 걸맞게 흰머리가 멋스럽게 어울린다.
아저씨가 말이 없고 느긋한 편이라면 곱상하게 생긴 아주머니는 애교 만점이다.
결혼 26년째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신혼부부 분위기가 폴폴 난다.
운남성에 사는 소수 민족인 바이족들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는 바이족박물관에 간다고 하니 같이 가자고 하신다.
박물관은 사스로 문이 굳게 닫혀 있었지만 전에 학생들을 데리고 왔던 아저씨가 직원을 설득하여 안으로 들어갈 수있었다.
고맙게도 입장표까지 끊어주신다.아저씨는 밖에서 기다리고 아주머니와 둘이 들어갔다.
풍부한 바이족 유물을 기대했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바이족의 생활용품과 농기구 몇 점이 전시되어 있을 뿐이다.
두 분의 초대로 집에 놀러갔다.학교 안에 있는 사택이다.
스물 다섯인 딸은 외지에서 직장에 다니고 중학 3학년인 아들과 함께 살고 있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과 중국어와 영어를 섞어가며 얘기한다.
낯선 사람앞에서 서툰대로 자기의 생각을 영어로 표현하는 아이가 기특하다.
바이족 식당에서 저녁까지 얻어 먹고 느즈막이 집으로 오니 하루가 저문다.
<6월 3일,화요일>,리지앙(2400)
예상한대로 열흘 가까이 따리에 있는 동안 리지앙으로 가는 길이 열렸다.
사스의 기세가 조금 약화되면서 빗장을 연 것이다.
바로 며칠전만해도 따리나 쿤밍쪽에서 온 여행자들은 리지앙에 도착하면 2주 동안 숙소에서 옴쭉달싹 못하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아직 문을 연 숙소가 거의 없어 간신히 숙소를 구했다.
리지앙 고성은 고성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그래서일까..명성을 유지하려는듯 수수함은 사라지고 곳곳마다 멋드러지게 새단장을 했다.
밤이면 골목골목 홍등이 불을 밝히고 액세서리며 기념품가게,음식점들도 불을 밝힌다.
리지앙에 사는 소수 민족은 나시족인데 이들은 파란 윗옷에 바지,검은 앞치마를 두르고 있어서 금세 눈에 띈다.
하지만 중년 이상의 사람들이나 전통옷을 입을까 나시족 젊은이들은 한족과 똑같이 옷을 입어 한족인지 구분이 안간다.
그들은 상형문자를 사용하고 있는데 지금은 노인들이나 알까 나시족 젊은이들에게는 해독불가능한 문자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상형문자를 이용한 장식품들이 여행자를 상대로 장식 소품으로 팔리고 있다.
180년된 집에 묵는다.조금 불편하지만 독특한 집안 구조가 재미있다.
마당에 의자를 내놓고 머리를 말리며 명애씨에게 빌려온 고우영의 만화 삼국지(10권)를 읽는다.
책 앞머리에는 1970년 우석 출판사에서 간행한 <고우영의 삼국지>초판본을 기본으로 하고,
당시 검열 등의 사유로 삭제된 부분들을 작가가 직접 복원하여 편집했다고 적혀 있다.
낄낄거리며 시간가는줄 모른다.
머리카락은 샴푸 냄새를 솔솔 풍기며 바람에 흩날리고
마당에 가득한 화초며 꽃들도 해바라기를 하며 생글거린다.
<8월 2일,토요일>샤흐어夏河~린샤~난조우
청뚜만큼은 아니지만 깐쑤성의 성도인 난조우에 오니 눈이 휘둥그레진다.
터미널앞은 분주하기 이를데없고 난주역은 크고 멋들어지다.
시장에는 먹거리 천지다.
야채비빔 칼국수와 한국식 짜장면,찐감자,찰옥수수..
내몽고를 지나 백두산까지 가기 위해 하룻밤만 자고 떠난다.
기차타고 칙칙폭폭~
<8월 3일,일요일>,난조우~쭝위이中衛(5시간,24위엔)
중국에서 가장 면적이 작은 성은?
답은 닝샤성이다.
그렇담 중국에서 가장 인구가 적은 곳은..?
물론 닝샤성은 아니다.
짐작하겠지만 중국 전체 면적의 사분의 일을 차지한다는 티벳(시장자치구)이다.
기차를 타고 기분을 한껏 내며 이름도 생소한 닝샤성의 제 2의 도시인 쭝웨이에 도착했다.
쭝웨이는 사막속의 오아시스로 서부대개발 정책에 따라 새롭게 만들어지는 관광 신도시다.
이름도 거창한 <西部大賓館>에 짐을 풀었다.
가까운 곳에서 사막을 볼 수있다는 것말고는 쭝웨이에 대해 알지 못했다.
이제까지 지나온 도시들과 별반 다를 바없는 중국 변방의 작은 소도시일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마땅히 묵을 숙소를 구할 수있을까 걱정하기도 했다.
그런데 역을 빠져 나오자 잘 조성된 광장을 중심으로 신시가지가 막 형성되고 있었다.
광장에서는 아침 운동을 하려는 사람들이 이른 시간부터 모여들고 저녁에는 산책나온 사람들로 붐볐다.
.난조우~쭝위이:5시간,24위엔
<8월 6일,수요일>,쭝웨이~인추안銀川(2시간 30분,21위엔)~바토우包頭(8시간,36위엔)
인촨은 닝샤성의 성도다.
막 조성된 8차선 도로 양옆으로는 군기 든 신병들처럼 가로등이 일렬로 늘어서 있다.
도로 양옆으로는 새로 지을 아파트 부지 조성이 한창이다.
아직 채 헐리지 못하고 벽만 남은 집들이 마치 그 집에 살았던 사람들마냥 헐벗은 채 서있다.
저 곳에 살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쭝웨이~인추안:2시간 30분,21위엔
.인추안~바토:8시간,36위엔
<8월 7일,목요일>,바토우~호화호트어呼和浩特
차 시간이 여의치않아 원치않는 밤기차를 탔다.
지정 좌석도 없는 입석표에 풍경을 전혀 볼 수없는 밤 8시 30분에 출발해서 다음날 새벽에 도착했다.
기차 안은 사람들이 뿜어내는 열기로 후끈하다.
천장에 매달린 작은 선풍기는 고장났는지 작동하지 않는다.
겨우 배낭을 짐칸에 실었다.
남자 승객들이 웃통을 벗고 있어서 고개 둘 곳이 마땅치 않다.
여자 승객이 드물어 사람들의 시선이 서있는 낯선 여자 여행자에게 쏠렸다.
불편함도 잠시,사람들이 뿜어내는 열기와 땀냄새,서서히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겠다는듯 저려오는 다리에 온 신경이 쓰인다.
하지만 마땅한 대책이 없기에 모른체했다.
가다보면 7시간 6시간이 되고 5시간이 4시간이 되어 어느 순간 목적지에 도착하리라.
다행히 1시간 30분만에 자리에 앉았다.
조각 자리나마 앉아갈 수 있어서 행복하던 마음은 어느새 다리를 쭉~뻗고 싶은 열망으로 바뀌어갔다.
새벽 4시 30분,낯선 도시 바토우에 닿았다.
내몽고 자치구의 제 2의 도시라는 것외엔 아는 바 없다.
날이 밝을 때까지 대합실에서 기다리다가 밖으로 나오니 8차선 도로가 쭉 뻗어 있다.
새벽에 한국의 신도시에 막 떨어진 것처럼 어디에도 사람살이의 온기라곤 없다.
황망해하며 시내지도를 한장 사서 2번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갔지만
갈수록 생각외로 거대한 도시에 왔다는 것을 실감할 뿐이다.
점점 길위에서 길을 잃어간다.
다시 2번을 타고 온 길을 되짚어 역으로 왔다.
도시에만 오면 더 어리버리하다.
아무 미련없이 호화호특으로 갔다.
호화호특은 내몽고자치구의 성도이다.
소수민족 자치구에서는 상호와 이정표에 한자와 소수민족언어를 병기하게 되어 있다.
한족어 아래에 쓰여 있는 몽골어가 신기하다.
하지만 지금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자기들 언어를 거의 잃어버리고 한족이 쓰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고 한다.
주민도 몽골 사람은 채 20%도 안되고 한족은 80%를 훨씬 넘는다.
전국의 한족화!!
방을 구하자마자 잠에 곯아떨어졌다.
지금 내 몸이 절실히 원하는 것은 긴 기차여행의 여독을 풀어줄 잠,잠이다.
.바토~호화호트어: 7시간 30분,13위엔
호화호특에 오는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대초원에 가서 말을 타고 초원을 달리고 파오에서 하룻밤 자면서 공연도 보고
음식도 먹는 투어에 참가한다.하지만 잘 짜여진 극본같은 투어는 사양이다.
하지만 초원은 궁금하다.
그곳에 가면 한때 말달리며 세계를 호령하던 몽골 민족의 기상을 느낄 수있을까.
여행자를 상대로 말을 빌려 주고 숙소를 제공하며 근근이 먹고 사는 그들에게 너무 먼 나라 이야기는 아닐까..
그리고 중요한 것은 몽골 사람들은 내몽고를 몽골로 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몽골이 궁금하면 몽골로 와야지 어설프게 내몽고에 가서 몽골인의 기상을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일지도 모른다.
백번 지당하다.
지평선끝까지 펼쳐진 초원에 바람이 분다.
풀들이 눕는다.
저녁에 밥집을 발견(?)했다.
밥아,너본지 오래구나.
입에 착착 달라붙는 두부조림과 계란국을 반찬으로 밥 한그릇을 뚝딱 해치웠다.
<8월 9일,토요일>,호하호트어~따통(5시간)~베이징(6시간,27위엔)
따통에 온 이유는 중국 3대 석굴중 하나인 윈깡석굴을 보기 위해서다.
석굴에 가는 방법은 세가지.
1.택시타고 간다.(요금은 운전사 마음)
2.기차역 부근에서 석굴까지 가는 미니버스를 타고 간다.(4위엔)
3.기차역 맞은편에서 4번 버스타고 종점에서 내려서 3번 버스로 갈아타고 석굴앞에서 내린다.(2.5위엔)
1번은 관심밖이고 2번은 편리하기는 하지만 찾아가는 맛이 없고
3번은 버스가 시내를 두루두루 돌아다닐테니 시내구경하면서 석굴까지 갈 수있어 일석이조다.
차를 한 번 갈아타야하는 것은 불편축에도 못낀다.
윈깡석굴은 460~491년 사이에 지어졌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45개의 석굴에는 51,000개의 불상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비교적 보존상태가 훌륭한 것들이 많고 색상들도 살아 있다.
나는 30위엔을 주고 학생표를 끊고 들어왔지만 입장료 60위엔을 내야 하는 사고뭉치는 입장하지 않았다.
칼도면을 주문했더니 요리사 두 명이 나무 도마에 반죽을 붙여서 끓는 물에 빠른 속도로 면발을 공중낙하시킨다.
보고 있으면 감탄이 절로 나오는 '묘기대행진'이다.
<8월 11일,월요일>베이징~청드어承德(5시간,21위엔)
북경의 8월은 가마솥이다.오늘은 34도.
그늘에 있어도 온 몸이 삶아놓은 시래기처럼 축축 늘어진다.
호수가 바라보이는 도연정공원 그늘에서 한 숨 자고나니 조금 개운하다.
임금님의 여름 별장이었다는 피서산장은 입장료가 90위엔이나 하고 마음을 끄는 곳도 아니어서 그냥 지나치고
경추봉은 멀리서 재미나고 기이한(? )형상을 실컷 감상했다.
이런 날은 에어컨 팡팡 나오는 집이 최고다!!
<8월 13일,화요일> 청드어~션양沈陽(13시간,45위엔)
요녕성의 성도인 션양은 조선족도 많이 살고 한국 기업들도 적잖게 진출해 있다.
기차역에서 내일 통화通化로 가는 기차표를 끊을때 조선족 아저씨가 말을 건네며 다가왔다.
처음엔 표끊는 것을 도와준다기에 고맙지만 그럴 필요 없다고 했더니
이번에는 자기가 하는 민박집에서 묵고 가란다.
밤 9시가 다 되어간다.
역 주변이니 잘 곳은 있으리라.하지만 아저씨는 끈질기게 자기집으로 가자고 했다.
13시간동안 기차를 타고 왔기 때문에 땀과 먼지투성이인 몸을 씻고 싶다고 했더니 집에 샤워시설이 있다고 했다.
5분이면 도착한다고 했지만 적어도 10분이상을 걸어간 아저씨집은 입구부터 어두컴컴한 5층짜리 낡은 연립주택이다.
가파르고 컴컴한 계단을 올라 5층에 있는 아저씨집으로 갔다.
좁은 방 2개와 어설픈 부엌, 물론 샤워시설은 없다.
아저씨는 "일없어요(괜찮아요)"를 연발하며 묵어가라고 성화지만 영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아닌건 아닌거다.
정중하게 말하고 다시 깜깜하고 가파른 계단을 내려 왔다.
<8월14일,목요일>,션양~통화通化(7시간,26위엔)
백두산에 가까워진다.
통화역에 내리자 한글로 쓰인 냉면집 간판들이 반갑다.
베이징을 떠나 청드어,션양까지 오는 내내 냉면집을 만났고 냉면을 먹었다.
조선족 음식인 '렁미엔'(냉면)은 난주의 '뉘로우미엔牛肉面'이나 쓰촨성의 '쑤안라펄'처럼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진 여름철 별미다.
가는 곳마다 국물맛이나 면발은 조금씩 다르지만 한여름에 남의 땅에서 먹는 냉면맛은 무엇과도 비할 수없는 별미다.
.숙소<철도초대소railway hotel>
역전 맞은편.깨끗한 공중목욕탕을 이용할 수있고 다음날 아침식사가 포함되어 있다.56엔/dbl
<8월 15일,금요일>,통화~지안集安(4시간,8위엔)
8.15 광복절이다.
해방절날 지금은 남의 땅이 되어버린 400년 고구려 도읍지를 찾아 가는 길은 별난 감회에 젖게 한다.
차창밖 풍경도,옥수수밭과 나무가 무성한 고만고만한 산들과 밖에서 불어오는 바람냄새와 하늘빛이
강원도 어디쯤을 기차를 타고 가는 착각마저 들게 한다.
'압록강가를 걸어다니고 광개토대왕비와 장군총을 돌아다니며 며칠 동안 선조의 숨결을 흠뻑 느끼고 오리라.'
지안역에 내리자 우리말을 하는 아저씨가 말을 건넸다.
삼륜차를 운전하는 조선족이다.
심양에서 불편했던터라 정중히 권하는 투어를 사양했다,
하지만 부담스러움을 넘어 불편하고 불쾌할 정도로 끈질게게 따라오며 자기 차를 타고 투어를 하라고 성화다.
게다가 기차역 근처에 있는 별 두개짜리 호텔에서는 외국인이라고 거절했다.
이렇게 비싼-200위엔/dbl-숙소에 묵게 하는 것도 성에 안찬다는 태도다.
몇 곳에서 거절당하면서 숙소찾아 삼만리가 시작됐다.
조선족 사내가 계속 따라왔다.
주위엔 숙소는커녕 숙소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배낭에 짓눌린 어깨가 아우성이다.
근처 냉면집에 들어갔다.
커다란 냉면그릇에 가득 담긴 물냉면은 보기만해도 배부르다.
게다가 김치와 오이무침이 곁들여 나왔다.배가 불쑥 나오도록 면발 하나 국물 한방울 남기지 않았다.
친절한 주인 아주머니에게 숙소정보도 들었다.
문을 나서며 냉면값을 드리니 그 중에서 1위엔을 돌려주신다.
시내에서도 가는 숙소마다 퇴짜를 맞았다.한마디로 '외국인 사절'이다.
간신히 터미널 근처에 방을 얻고 광개토대왕비를 찾아갔는데 공사중이다.
사방을 유리로 막을 치고 주변에 녹지를 조성하고 있었다.
이런 조용한 곳에서 며칠 쉬어갔으면 하는 마음에 가게에 들어가 숙소가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런데 바로 그때 어디서 나타났는지 열명의 공안이 가게 안으로 들어와 여권을 보여달라며 에워쌌다.
이유를 묻자 무조건 보여달란다.
정당한 이유없이 그럴 수없다고 하자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다고 여겼는지 조선족 할아버지를 통역으로 데려왔다.
할아버지 역시 무조건 여권을 보여주라고 한다.
이런 황당할 데가 있나.
게다가 중화인민공화국의 인민임이 분명한 조선족 할아버지를 대하는 젊은 공안의 방자한 태도라니..
일하다 얼결에 온 듯 낡은 런닝과 허름한 바지 차림의 할아버지는 식민지 시대에 일본순사라도 대하는듯 연신 굽신거렸고
젊은 공안은 여러 소리말고 우리가 빨리 여권을 내놓을 것을 통역하라고 할아버지를 윽박질렀다.
그러더니 공안국으로 가자고 한다.
순식간에 공안차에 태워져 공안국으로 호송되었다.그들은 1시간 넘게 여권을 샅샅이 조사했다.
불쾌하고 울화통이 터졌다.부당한 강제 연행에 항의하고 사과를 요구했지만 말도 안된다는듯 웃어넘겼다.
신분을 철저하게 확인받은 후 공안국을 나와 압록강가를 걸었다.
조금전의 불쾌한 일만 없었더라도 말로만 듣던 압록강가를 걸어다니는 것에 감격스러워했을텐데..
신발을 벗고 압록강물에 발을 담궜다.
한켠에서는 동네 아주머니들이 빨래를 하고 있고 다른 한 켠에서는 아이들의 물놀이가 한창이다.
둘다 조금 침울해서 걷고 있는데 국내성이 보인다.
지금 중국 정부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려 안간힘을 쓰는 중이다.
그것은 고구려사가 중국사의 일부로 편입되는 것을 의미한다.국내성 역시 멀끔하게 단장을 끝냈다.
여기 땅이 뉘땅이냐~덩더쿵 덩더쿵~
근처 공원에 국내성 유적에 관한 알림판이 있다.
여기 땅이 내땅이(었)지.덩더쿵 덩더쿵~
근처 식당에서 먹은 평양냉면은 북한땅 평양에 대한 아스라한 그리움이 울컥 솟아날만큼 진국이다.
여기 땅은 내 땅이다.
덩더쿵 덩더쿵 덩더쿵 덩더쿵~
<8월 16일,토요일>,지안~통훠(2시간 30분)~바이흐어白河(8시간)
며칠 쉬고 싶었지만 쫓기듯 지안을 떠났다.
기차안은 비교적 한산하고 바람도 서늘하다.
통화에 내려서 바로 백두산으로 가는 관문인 백하로 갔다.
8시간이 길고도 지루하다.
옥주가 보내준 중국작가의 소설을
6시가 넘자 어둑어둑해진다.
8시가 넘도록 환한 운남과는 영 딴판이다.
운남에서 백두까지~참 멀리도 왔다.
<8월 17일,일요일>,백두산
일요일이어서인지 입장료가 비싼데도 놀러온 이들이 많다.
우리의 성산이 저들(한족)에게는 그저 놀이터일 뿐이다.
와글거리는 중국 사람 특유의 시끄러운 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천지 한쪽에서는 놀러온 여자들이 한복을 빌려 입고 사진을 찍고 백두산 구경을 온 조선족들도 간간이 눈에 띈다.
주엽이는 유원지화된 백두산을 못마땅해한다.
사진이나 글을 통해 느꼈던 백두산에 대한 감흥을 느낄 수없다며 아쉬워한다.
*백두산가기...1.백하에서 백두산 입구까지 가는 소형차를 탄다(왕복 80위엔,1시간 30분)
2.입장료:105위엔(입장료 65위엔,학생 35위엔)+장백폭포(15위엔)+천지(40위엔),학생75위엔
3.코스:주차장~폭포(1시간)~천지(1시간)
4.천지 주변은 날씨가 급변하니 방풍재킷은 필수
북한을 통해 백두산 천지에 가볼 날도 있으리라..
<8월18일,월요일>,바이흐어白河~옌지延吉(4시간 30분)
나흘째 머리를 감지 못하고 샤워도 못했다.
어제 신었던 양말을 오늘 다시 신었고 그저께 신은 양말은 빨지 못한채 가방 한켠에 박혀 있다.
머리빗은 새까맣게 된지 오래고 모자 역시 빨아야할 시기를 훨씬 넘겼다.
요며칠 하루하루가 분주했으며 빨래를 할 수있는 형편도,말릴 수있는 형편도 아니었다.
그건 사고뭉치도 마찬가지여서 물건을 사러 들어간 가게 주인은 그에게 베트남 사람이냐고 했다.
해질대로 해져 구멍이 숭숭 나고 더러워진 청바지,오랜 여행으로 제멋대로 자란 머리,
까맣게 탄 팔뚝과 마른 얼굴 그리고 몸이 그런 추측을 하게 했으리라.
분명 그는 말끔하게 빗어넘긴 머릿새와 말쑥한 차림새로 이곳을 찾는 여느 한국 여행자들하고는 달랐으니까.
한국사람이라는 말에 믿을 수 없다는듯 몇번씩 되물어보던 가게 주인을 뒤로 하고 우리는 웃었다.
연길은 모든 간판에 한자와 한글이 함께 적혀 있고 시장에 가도 식당에서도 우리말을 들을 수있다.
중국속의 한국,조선족자치구에 온 것이다.
<8월 19일,화요일>,옌지~투먼圖們(두만강,1시간안팎)
오랜만에 샤워가 가능한 깨끗한 숙소에서 하룻밤 자고 바로 투먼(도문)으로 갔다.
투먼은 중국과 북한의 경계를 이루는 중국측 국경마을이다.
좁은 두만강 저너머 북한땅이 손에 잡힐듯하다.북한쪽 국경도시인 남양이다.
저 멀리 버스가 먼지를 일으키며 산중턱을 달리고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소를 몰고 가는 사람도 보인다.
냅다 달려가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나누고 싶다.
이쪽에서는 낚시꾼들이 강 한가운데서 간간이 낚시를 한다.
양쪽 주민 모두 강에 들어가는 것이 허용되지만 북한 주민이 낚시를 하러 강에 들어오는 일은 없다고 했다.
강가를 따라 산책을 하거나 가벼운 운동을 하러 나온 사람들은 대개가 조선족이다.
이쪽이나 저쪽이나 같은 생김,같은 언어,같은 음식을 먹는 한 민족이다.
낚시를 즐기고 있는 조선족 아저씨 바로 맞은편이 북한이다.
두 나라 사람들이 공동으로 사용할 수있지만 북한 사람이 낚시를 하기 위해 이곳에 오는 일은 없다고 했다
<8월 20일,수요일>,옌지
서시장은 시내에 있는 꽤 큰 규모의 연변족 시장이다.
밑반찬 가게에는 먹음직스러운 반찬들이 가득하다.
배추김치는 물론이고 열무김치,총각김치,깍두기, 생채에 오징어채조림, 미역무침,콩나물무침,깻잎무침에 잡채,콩조림까지..
가짓수도 많고 하나같이 맛있어 보인다.
한대접 가득 주는 물냉면을 먹으니 가슴까지 시원하다.
어느 가게에 들어가도 보이는 것마다 한국 물건이고 들리는 것은 모두 한국말이다.
동네 재래시장에 온듯 쑥절편과 야채튀김을 사 먹으며 시장을 돌아다닌다.
우리나라 대중음악 테이프들도 인기다.
최신 유행하는 노래들이 있는가하면 흘러간 노래 메들리도 있다.
텔레비전을 틀어도 한국어 방송이 나온다.
연변조선족 자치구에서 운영하는 조선족 방송이다.
한국말로 뉴스도 전하고 가요프로그램도 방송한도 한다.중국 속의 작은 한국이다.
용정에서 앞자리에 앉으신 할머니의 도움으로 어렵지않게 용정중학교를 찾았다.
운동장 한켠에 윤동주 시비가 있고 옛대성학교터에는 기념관도 있다.
윤동주 시인과 급우였던 문익환 선생님의 사진이 나란히 걸려 있다.
작년에 흑룡강 조선 민족 출판사에서 펴낸 윤동주 시집<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를 샀다.
종이질과 활자는, 세련되기 이를데없는 우리나라 출판사에서 나온 것에 비할 수없지만
시집은 어떤 그리움을 일깨운다.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해란강도 궁금하고 일송정도 보고 싶다.
학부때 모임 뒷풀이가 끝날 때마다 진지하고 숙연한 마음으로 부르곤 했던
<선구자>에 나오는 익숙한 지명들이다.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위해 우리말과 우리 역사를 가르치면서 뜻과 마음을 모았던 땅,용정.
지금 나는 역사 속의 '오늘'에 있다.
<8월 25일,월요일>옌지~장춘(9시간 30분,39위엔)~베이징(15시간,115위엔)
이틀에 걸쳐 연변에서 기차를 타고 베이징을로 오면서 100일간의 여정도 끝났다.
사고뭉치는 16개월의 여행을 마치고 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나는 베이징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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