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트레킹

판차세트레킹-2016

나는 걷는다 2018. 12. 30. 15:08

 <판차세 트레킹 - 2016>

 


.일정 : 2016.3.13 ~ 3. 22(10일)

.여정 : 레이크사이드(숙소) - 샨티스투파 - 품디 - 붐디(1박) - 판차세반장(2박) - 바다우레 - 오스트레일리안캠프

          (3~5박) - 아스탐 - 지지카(6박) - 라촉(7박) - 티베탄 레퓨지(8박) - 사랑콧(9박) - 숙소

.물가 : 달밧350~400

.환율 : $1=105네팔루피 


.숙소 : 1. 붐디...<히말라얀뷰 티하우스>600/dbl, w/b, cold shower

           2..판차세반장...<>300/r, c/b

           3. 오스트레일리안캠프...<오스트레일리안 캠프 G.H.>300/r, w/b, hot shower,  400/r(신축건물)

           4. 지지카...500/r, w/b, 두달전에 오픈해서 아직 이름이 없다.

           5. 라촉...홈스테이, 1000/1박 2식

           6. 티벳탄난민캠프...곰파내 숙소, 800/dbl, c/b

           7. 사랑콧...<Mountain View G.H.>, 400/r, c/b

 


 

  <1일>

  .lakeside-world peace stupa(1103m)-view tower-pumdi(1340m)-bumdi(1530m), 7hrs


네팔에 도착한지 일주일이 지났건만 여전히 마음을 잡지 못하고 있다.

마음 둘 데가 없다.

늘 마음에 품고 있던 첫사랑을 십수년만에 만났을 때의 허망함이랄까.


기억속의 그녀는 청순하고 맑고 큰 눈을 하고 있었는데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다시 만난 그녀는 옛 자취를 잃어가고 있었다.


지금도 포카라에 처음 왔을 때 느꼈던, 고향에 온 것같은 정겨움과 나른한 행복을 잊지 못한다.

그 후 서너 번 다시 왔을 때에도 그녀는 '예뻤다'.

하지만 십년을 훌쩍 넘기고 다시 만난 네팔은 변해 있었다.

물가는 오를대로 올라 사람들의 삶은 팍팍해지고 그만큼 인심도 야박해져 

사람들은 배 곯지 않고 남에게 속지 않고 살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이제는 안다는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순박한 시골이었던 포카라는 고급스런 리조트들이 자리잡은 휴양지로 변해가고 있다.


물가에도 변해버린 인심에도 적응을 못하고

새엄마에게 정을 붙이지 못하고 겉도는 아이마냥 주변을 맴돌았다. 

이러다가는 한 달 후에 울상을 한 채 네팔을 떠날 것만 같아 배낭을 메고 숙소를 나섰다.



 


샨티스투파를 향해 걷는다.

페와호수를 병풍처럼 에워싼 산을 이어가며

맨 왼쪽에 있는 봉우리에 자리한 샨티스투파를 시작으로

시계방향으로 천천히 걸을 작정이다.


아쉬운대로 지도를 한 장 샀다.

하지만 가야할 길에 대해 아는게 너무 없다.  

 

산길은 유순하게 이어져 있을까..숙소는 있을까..

지도에 드문드문 마을 표시가 있긴했지만 집이 몇 채나 되는지 숙소나 식당이 있기는 한건지 알 수 없다.

야영 장비가 없기 때문에 비박할 생각이 아니라면 숙박이 가능한 곳까지 무조건 가야 한다. 

 

여행자 거리에는 몇 집 걸러 한 집씩 여행사가 있고

여행사들은 하나같이 판차세트레킹이나 오스트레일리안캠프 트레킹을 포함한

당일 트레킹부터 20일 이상 걸리는 수많은 트레킹 상품을 갖춰놓고 있다. 


하지만 샨티스투파를 기점으로 산 능선과 비탈에 자리잡은 마을을 이어가며

판차세와 오캠(오스트레일리안 캠프)을 거쳐 사랑콧을 지나

떠났던 여행자 거리까지 걸어오려는 트레커를 위한 정보는 여의치 않았다.


봉우리와 봉우리를 이어가며 성큼성큼 걸으면 금세 한바퀴 휘 돌아볼 수 있을 것같지만

숙소 사정이나 트레일의 난이도에 따라 며칠이 걸릴지 알 수없다. 


배낭을 매고 걷기 시작하자 조금전까지의 걱정은 간데 없고 슬슬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한다.


샨티스투파는 보트를 타고 폐와호수를 가로질러 산기슭에 닿은 후 올라갈 수도 있고

차로 턱밑까지 간 후 걸어가거나 아예 여행자거리에서부터 걸어갈 수도 있다.


이따금 가이드를 자청한 현지인을 앞세운 서양여행자들이 스쳐 지나갔지만

샨티스투파에 도착할 때까지 다른 여행자나 현지인을 거의 만나지 못했다.






산정에 있는 하얀 스투파에서 바라보는 폐와호수와 어우러진 포카라는 한폭의 그림같다.

마땅한 숙소가 있으면 호수를 내려다보며 하룻잠 자고 싶다.


하지만 주머니가 가벼운 트레커와는 상관없는 $50~100 하는 숙소들 뿐이다.

그렇담 미련을 버리고 부지런히 다음 마을까지 가야 한다.

스투파 근처 현지인 식당에서 밥을 먹고 차도 마시느라 시간을 지체했더니 12시가 훌쩍 넘었다.






이따금 만나는 현지인에게 잘만한 곳이 있는지 물어보지만 하나같이 고개를 젓는다.

누가 view tower에 가면 잘 수 있을 거라 했다.

포카라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뷰타워에는 과연 평지에 텐트 몇 개를 쳐놓고 야영을 할 수 있게 해놓았다.

텐트 지퍼를 열자 언제 누가 자고 갔는지 지저분한 침낭과 퀘퀘한 냄새가 텐트 안을 가득 메우고 있다.

내키지 않는다. 더구나 식사를 해결할 곳도 없다.

관리인은 마을에 있는 자기집에서 민박을 하면 잠자리와 음식까지 해결된다고 했지만

그가 야무지게 부른 가격은 상술은 가득한데 인정은 느껴지지 않는다.


품디에도 간판을 내걸지 않은 숙소가 하나 있기는 했다.

햇살이 골고루 내비치는 조용한 마을에 마음을 빼앗겨 묵어가고 싶었지만

온기라곤 느껴지지 않는 허름한 방이 하룻밤에 1000루피라고 했다. 물론 음식은 제공되지 않고 사먹을 곳도 없다.

포카라 시내에 침대가 두 개 있는 욕실 딸린 방이 600루피인걸 생각하면 비싸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방을 보여준 처자에게서 이 마을에 숙소라곤 하나밖에 없으니 선택의 여지가 없을 거라는 배짱과 여유가 느껴진다.


상실감.

나는 그와 그녀의 표정과 말투에서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던 것을 잃어버린 상실감에 아득했다.

 

무얼 기대하는가.

뽕나무밭이 바다가 될 만큼 세월이 흘렀건만 여전히 십년 전에 만났던 청순한 '그녀'를 기대하는 것일까.

산에서 만났던, 해맑게 웃으며 두 손 모아 당신 안의 신께 경배를 올리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다음 마을인 붐디까지 2시간은 족히 걸린다는데 벌써 3시다.

산에서는 해도 일찍 지고 밤도 일찍 찾아오기에 잠시 고민했지만 마음이 떠난 곳에 몸도 떠난다.





언제부턴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던 등짐장수의 커다란 등짐 바구니에는 

양은 솥, 냄비 그릇들이 키보다 더 높이 쌓여 있다.  

그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달그락달그락 저희들끼리 서로 부대끼며 수다를 떤다.


"어디로 가세요?"

사람이 그리운 나는 그에게 말을 걸었다.

그가 선량한 눈빛으로 손을 뻗어 저 멀리 아랫마을을 가르킨다.

그의 선한 눈매와 응대에 왈칵 눈물이 솟는다.


 



급한 마음과는 별개로 평화로운 시골 풍경에 발걸음이 멈추곤한다.

층층이 이어진 계단식 논에서 양들이 풀을 뜯는 고즈넉한 풍경이다.


버스 한 대가 뒤뚱거리며 오르막을 오르더니 위태위태하게 내려간다.

카라 시내에서 산 어깨와 비탈에 있는 마을을 오가는 버스인가보다.

오늘밤 잠자리를 구하지 못하면 버스를 타고 시내로 돌아가면 되겠구나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놓인다.






붐디 입구에서 만난 현지인에게 숙소를 물었더니

한 여인을 가르키며 그녀를 따라가라고 했다.

숙소가 있긴 있나보다.

5시가 다 되어가는데 숙소가 없으면 어쩌나했는데 하늘님이 도우셨다.


하늘은 먹장구름 가득이더니 빗방울을 뿌리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좋다.

오늘밤 잠자리를 구했으니 말이다.


<히말라얀 뷰 게스트하우스>

걸음을 재게 놀리며 지름길로 질러 가는 그녀를 15분정도 따라가자 말끔한 숙소가 나타났다.

숙소 주인은 그녀의 남편으로 그녀는 숙소를 운영하는 남편과 떨어져 아이들을 키우며 마을에 살고 있다.

도착하자마자 더이상 못참겠다는듯 비가 쏟아졌다.


먼저 온 서양 여행자가 옥상에 널어놓은 빨래를 걷으러 뛰어간다.


 



  <2일>

  .bumdi-정글지대-판차세반장Panchase Banjyang(2030m), 4시간20분


금세 어둠이 찾아왔다.

저녁을 주문하자 주인장은 빗속을 오가며 장작불을 피우고 직접 저녁을 준비한다.

그가 불을 피우는 동안 하라는 대로 마늘과 감자 껍질을 벗기고 감자를 씻어 잘랐다.

그는 연신 수다를 떨면서도 짜파티 반죽을 하고 감자를 맛살라와 섞어 먹음직스럽게 볶아낸다


숙소 주인은 말솜씨만큼이나 음식솜씨가 좋았다.

그가 해주는건 뭐든지 맛있다.

그는 한국말도 몇 마디 했는데 한국 스님이 몇 개월간 머물렀다고 했다.


온전한 어둠 속 희미한 불빛아래 저녁을 먹는다.

텃밭에서 막 뜯은 야채를 듬뿍 넣은 볶음밥과 장작을 때서 만든 팬케익

그리고 쓰인 재료는 모두 유기농인 야채볶음..

황후의 만찬이다.







미리 부탁한 도시락을 배낭에 넣고 출발했다.

어제 저녁 비가 온 탓에 오늘도 비가 오면 어쩌나했는데 다행히 개는 눈치다.

구름 사이로 살짝 얼굴을 내민 설산을 알현한다.

부지런한 농부는 이른 아침부터 밭갈이를 한다.


같은 숙소에 묵는 비르자니도 함께 간다.

판차세반장까지 가는 도중에 마을이 없으며 무인 정글지대를 지나야 하는데

인적이 없어 위험하다는 주인장 말에 그녀가 함께 가도 되냐고 물었다.

그녀는 자원봉사를 하며 문화체험도 하고 숙식도 해결하며 네팔을 여행중인데

지금도 트레킹을 하며 자원봉사를 약속한 산골 오지 마을을 지도 한 장 들고 찾아가는 중이다.

그녀가 지도에 손가락으로 가르킨 마을을 아는 현지인은 드물었다.

 




발걸음이 가볍다.

눈부시게 펼쳐진 설산이 이만큼 가까이 다가왔다.

 

트레커들이 많이 찾는 코스가 아니어서인지 이정표가 없다.

갈림길이 나올 때마다 망설였지만 오가는 이가 없으니 물어볼 사람도 없다.

네팔 트레킹에 경험이 많은 친구가 앞장섰다.



-


고요하다.

네팔 트레킹 길에 으레히 있는 찻집도, 밭도, 사람의 집도 없다.

묵었던 숙소 주인은 웃으며 가끔 호랑이가 나오기도 한다고 겁을 줬지만 호랑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저 하늘과 나무와 풀과 햇빛만이 가득하다.


잠시 길동무가 된 비르자니와는 잘 아는 사이가 아니지만

우리는 친해지기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서로에 대해 이것저것 묻지 않았다.

그저 적당한 거리를 두고 각자 보폭에 맞춰 걷는다.


정글지대가 나타났다.

나무에 켜켜이 쌓여 있는 이끼가 세월을 말해주고 있다.

어디선가 티라노사우르스가 나타난대도 이상할 것같지 않다.


딸랑딸랑딸랑~

방울소리가 선명하고 사람 말소리도 들리는 것같다. 

멀리서 현지인 사내 두 명이 소를 몰고 오고 있다.

이웃마을로 소를 몰고 가는 아버지와 아들이다.


"나마스떼~"

-내 안의 신이 당신 안에 있는 신께 경배드립니다.-


웃음과 인사를 나누자 주변에 온기가 번지며 길이 더 친근하게 느껴진다.

햇빛이 따사로운 곳에서 도시락으로 싸온 짜파티와 감자볶음을 먹고

아껴둔 오렌지와 바나나를 나눠 먹으며 해바라기를 한다.


오후로 접어들자 하늘이 낮게 내려앉으며 비를 뿌릴 기세다.

얼마를 더 가야 판차세반장에 닿을지 알 수 없다.

그저 막연히 이제까지 걸어온 시간을 재보고 남은 시간을 가늠할 뿐이다. 




 


뜻밖에 이정표가 나타났다.

판차세 라고 쓰인 방향으로 걸음을 재촉한다.

거리 표시가 없어 한참을 더 가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20분쯤 지나자 문득 판차세반장이 저만치 보인다.






안도감. 

먹구름과 비때문에 마을은 을씨년스러워 보였다.

이따금 먼저 도착한 트레커들이 두툼한 털모자를 쓰고 동네를 산책하고 있다.





따뜻한 온기가 그리운 트레커들이 부엌으로 모여든다.

잔 가득 따라주는 밀크티를 두 손으로 감싸고 조금씩 마시며 몸을 데운다.


저녁을 주문하고 주인이 나눠준 초를 받아들고 방으로 들어왔다.

수도자가 사는 듯한 단정하고 정갈한 흙집.

초에 불을 밝히자 은은한 빛이 방안을 밝힌다.

촛불은 빛뿐만 아니라 온기도 나눠준다.

살뜰한 그 온기가 눈물겹다.


눈매와 풍기는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은 안주인은

직접 키운 푸성귀로 만든 달밧과 볶음밥을 접시 가득 담아 주었다.

부뚜막을 중심으로 옹기종기 모여앉은 우리는

밥톨 한 알 허투루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온기가 그리운 사람들은 밥을 다 먹고도 부뚜막을 떠날 생각을 않는다.

누구는 구슬프게 악기를 연주하고 누구는 노래를 부른다.

그리고 누구는 긴 상념에 잠긴다.

 




 <3일>

 .판차세반장-Panchase danda(2517m)-붐디Bhumdi(1530m)-바다우레Bhadaure-Kande(1770m)Australian Camp,7hrs

해뜨는 시간에 맞추어 옷을 있는대로 껴입고 밖으로 나왔다.

판차세 단다에서 일출을 보려는 몇몇은 500미터 더 올라가야 하는 판차세로 향한다. 




해돋이가 아름답다는 곳에서 수없이 해돋이를 봤건만 막 잠에서 깨어 김이 모락모락나는 차 한잔을 들고 

맞이하는 해돋이는  각별하다.


탐하고 욕심낼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아침이다.




비르지니가 오래도록 한 자리에 붙박혀 있다.

몇 년간 동거하던 남자와 이별하고 '나를 찾아' 떠난 그녀.

물설고 말설은 곳을 겉만 훑으며 지나치는대신

네팔어를 배워가며 현지인과 소통하고 그들의 일상 속으로 한 발을 들여놓는 그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녀는 그 자리에서 망부석이라도 되려나보다.





머리를 땅에 박고 곧추서서 설산을 바라보며 해돋이를 하는 이는 세상을 전복적으로 바라보고 싶은 지도 모른다.




장기 숙박객인 흰 수염이 성성한 사내가 우주의 기운이 충만한 시간에 하얀 도화지에 만다라를 구현하기에 여념이 없다.

그는 절대지존인 이 집 안주인의 사랑을 한몸에 받아 다른 트레커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한다.

그가 온 힘을 기울여 구현하는 만다라는 그가 쓴 모자와 색과 질서가 닮아 있다.


2시간 거리에 사는 서양 할아버지는 주인장이 심어놓은 상추 모종을 얻어가려 안주인에게 살갑게 말을 붙이고 있다.

왜 여신들은 늙은 사내들에게 인심이 좋은가. 

젊은 것들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하세월을 지나온 이들에게서만 풍기는

삶에 대한 여유와 지혜가 함축된 농담에 대한 경배인지도 모른다.





 



능선상에 있는 바다우레는 전망이 좋고 트레커를 위한 숙소와 식당도 있어 하루쯤 머물기에 좋았다.

하지만 겨우 12시여서 이곳에서 점심을 먹고 오스트레일리안캠프까지 간다.







바다우레에서 오캠으로 가는 입구인 카레(칸데)까지는 먼지 폴폴 날리는 차도를 따라 산을 넘어야 한다.

그늘 한줌 없는 지프로드를 따라 걷는다.

이따금 뒤돌아보면 걸어온 길이 한 눈에 보인다.





현지인들 사이에서 카레라고 불리우는 칸데는 능선상에 있으며 포장도로가 지나가는 길이다.

포카라에서 차를 타고 오캠으로 갈 경우 칸데에서 내리면 된다.

칸데에서 오캠까지는 한시간이상 오르막을 올라야 한다.

하지만 길고 지루한 지프도로가 끝났다고 생각하니 다 온것만 같다.


삶은 계란과 밀크티를 마시며 다리쉼을 한다.

티벳 난민들이 장신구를 한보따리 갖고 다니며 트레커들 앞에 펼쳐놓는다.

비르자니는 차 마실 생각도 않고 목걸이와 팔찌 고르기에 여념이 없다.

한참을 들었다놨다 하더니 팔목에 예쁜 팔찌를 하나 두르고 100루피를 낸다.


 





무엇을 더 바랄 것인가..

너른 마당에서도, 골목에서도 옥상에서도 방안 창가에서도 설산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다.





방안에 누워서 보다가 옥상에 올라가서 한참을 보다가

마당으로 내려와 설산바라기를 한다.






무엇을 더 바랄 것인가.. 





하늘님은 더없이 푸르고 푸르시

나는 사는데 아무 이의가 없어라~.







친구를 도와 성수기에 숙소에서 일하는 텐진은 티벳난민이다.

부모님은 1959년에 달라이 라마를 따라 망명했고 그는 네팔에서 태어났다.

입고 있는 티셔츠와 바지에 "FREE TIBET" 을 새겨 넣었다.

재봉사에게 일일이 박음질을 부탁했다.





그가 잔디가 깔린 너른 마당에서 티벳 음악을 틀어 놓고 팔을 벌려 덩실거리며 춤을 춘다.

익히 보아온, 단순하면서도 흥겨운 티벳춤이다.

끊어질듯 이어지며 하늘 높은줄 모르고 고음을 올려치다가도 턱 내려치는 특유의 티벳 음악에 맞춰

비르지니도 나도 춤을 춘다.


그는 평생 티벳에 한번 가보는게 소원이지만 그 소원이 언제 이루어질 지 알 수없다.

텐진이 노래 가사를 풀어준다.

타향살이를 하면서 절절하게 고향을 그리워하는 노래다.

애닯기 그지없다.


잔디깔린 마당이 마치 티벳 고원이라도 되는 양,

축제에서 한바탕 신명나는 춤판이라도 벌리는 양,

고향을 지척에 두고도 천리만리인양 살아야 하는 설움을 안고

덩실 덩실 더덩실~~






 <6일>

  . Australian Camp -담푸스Dhampus(1650m)-아스탐Astam -지지카Jhijirka, 5hrs


3월 중순,

히말라야 자락에도 봄이 왔다.

봄 햇살이 따사롭다.


파랑새를 찾아 오랜 시간 떠돈 여행자가

다시 길을 떠난다.


파랑새는 어디에 있는가.


논둑에 피어 있는 작은 꽃들이 재잘댄다.

"여길 놔두고 어디로 가는거야?"


어리석은 여행자에게 꽃들의 속삭임이 들릴 리 없다.





마을 사람들도 지붕 이엉을 고치며 봄맞이에 분주하다.


어리석은 나그네여 어디로 가는가?

그들이 말없이 묻는다.


나도 궁금하다.

나는 어디로 가는가.






아이는 작고 앙증맞은 손에 사과를 들고 있었다. 

장난삼아 손을 내밀었더니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사과를 건넨다.

장난기가 동해 되돌려 주는대신 한 입 크게 배어 물었다.

내심 아이가 앙 울음을 터뜨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는 그 다음 무슨 일이 일어날지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별처럼 맑은 눈을 생글거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여섯살인 주인집 딸 드리티스다. 





드리티스에게 감동받아 근처 구멍가게에서 풍선을 있는대로 샀다.

드리티스와 동네 친구들이 모여들었다.

풍선을 하나씩 받아들고 신이 난 아이들은 자기 얼굴보다 더 크게 풍선을 불었다.

아이들 덕분에 부자가 된 내 마음도 풍선에 실려 두둥실 하늘 높이 올라간다.

 

드리티스 엄마인 강가는 스물다섯살이다. 7년전에 결혼했으니 열여덟살에 결혼을 한 셈이다.

조혼 풍습이 있는 네팔 시골에서는 드문 일이 아니라고 하지만 같은 나이인 조카들을 생각하니 어리게만 여겨진다. 

드리티스가 첫째 딸이고 4개월된 아들도 있다.


남편 락스만은 트레킹 가이드라서 집을 비울 때가 많다.

문을 연지 얼마 안된 게스트하우스는 시부모님과 강가가 아이들을 키우며 꾸려가고 있다.

외국인을 상대하는데 능숙한 남편과는 달리 시골 아낙인 그녀는 아직 외국인 손님맞이가 서툴다.

차와 달밧과 야채볶음밥을 주문했는데 투박한 정성이 가득했다.





 <7일>

 .지지카Jhijirka - 향자Hyangja -라촉Lahachowk(1260m), 3hrs 40min


산 어깨에 걸쳐있는 지지카 마을을 내려오면 향자다. 

도로가에 면한 향자에는 숙소를 겸한 식당이 있다.

향자 윗마을인 라촉Lahachowk은 마르디히말로 가는 길목이고

마르디히말Mardi Himal 베이스캠프로 가는 기점 마을인, 라촉 윗마을인 가촉Ghachowk(1260)에 체크포스트가 있다.

 

가촉에서 숙소를 알아보는데 길가던 여인이 대뜸 퍼밋은 있느냐고 묻는다.

마르디히말 트레킹을 할게 아니라 마을과 마을을 이어가며 히말라야 자락을 즐기고 싶어 굳이 퍼밋을 사지 않은 터였다.

하지만 이 곳은 ACAP구역이다. 퍼밋 없이 ACAP구역안에 들어왔다가 발각되면 벌금을 물어야해서 얼버무리고 그녀와 헤어졌다.


가촉Ghachowk(1260)에는 숙소는 없고 민박도 여의치 않다.


다시 라촉으로 왔다.

외딴 집앞에서 고만고만한 아이들이 놀고 있고 한 여인이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을 지켜보고 있다. 

그녀에게 하룻밤 묵어갈 수 있는지 물었다.

영어가 서툴지만 의미를 알아들은 그녀는 웃으며 호의를 보였지만 결정권은 앞집에 사는 시어머니에게 있었다.

남편은 2년 예정으로 사우디아라비아에 돈벌러 가고 없다.  


어젯밤 묵은 지지카 안주인처럼 그녀의 이름도 강가고 나이도 같은 스물다섯이다.

강가는 일곱살 된 쌍둥이 아들을 키우며 사우디아라비아로 간지 겨우 두 달된 남편이 올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그녀도 열열덟살에 결혼했다.

 

그녀는 감자가 방바닥에 널려 있는 건너방을 내주었다.

대충  짐을 풀고 동네 산책에 나섰다.

동네 사랑방인 거리 찻집에서 차를 주문한다.

먼지를 일으키며 오가는 버스나 바쁠 것없이 지나가는 마을 사람들을 보며

노점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노라면

파랑새가 어깨에 살포시 앉아 지저귀곤 했다.

 

저녁에 사랑콧 근처에 사는 강가의 남동생이 왔다. 그는 한국에서 일한 적이 있어 한국말이 꽤 능숙했다.

덕분에 의사소통은 훨씬 수월했지만 그녀와 나누는 짧은 영어와 몸짓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가 중간에서 굳이 통역한 말들은 구체적인 언어로 표현되어 정확한 의미로 전달되겠지만

그녀의 웃음과 몸짓만으로도 충분히 미루어 알 수 있는 것들이었다.


상대방의 말을 백퍼센트 이해한다는 것이 '너'를 더 잘 안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너무 많은 말들이 사람살이를 복잡하게 하고 십원 한 장도 계산하게 하는지 모른다.

앞집에 사는 시어머니와 시누이, 동네 아주머니, 조카들과 어울려 네팔의 가정식 백반인 달밧을 먹는다.


감자냄새를 맡으며 잠이 들었다.



불쑥 나타나 제 집에서 하룻밤을 보낸 이방인에게 아이들은 허물없이 굴었다.

개구쟁이인 강가의 쌍둥이 아들과 한 동네에 사는 사촌형제들은

학교에서 배운 영어단어와 문장을 총동원해서 아는체를 하고 장난을 친다.






영어 실력을 뽐내느라 책가방에서 꺼내온 교과서는 전부 영어로 쓰여져 있었다.

그러니 초등학교 저학년인 네팔 아이들이 모국어만큼이나 영어를 잘 하는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우리나라 또래 아이가 외국인과 거리낌없이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려면 영어전문학원을 얼마를 다녀야 하는 걸까.

그래도 유전자 속 깊이 박혀 있는 숫기와 어색함을 걷어내지는 못할 것이다.

그게 다 무엇이란 말인가.

다 무망한 일이다.


듬뿍 칭찬을 받고 용기백배한 아이들이 교과서를 있는대로 가져와서 읽기 경쟁을 한다.

누가누가 잘하나 시간이다.

힘이 잔뜩 들어간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마을을 감도는 빛과 공기와 바람이 따사롭다.

온 천지에 봄의 기운이 넘쳐난다.

 

 




감자를 캐고 있는 여인에게 다가갔다.

엄마가 감자 캐는 것을 돕고 있던, 목소리도 눈도 똘망똘망한 아이가 엄마에게 통역을 한다.

여인과 아이에 이끌려 아이가 사는 집으로 갔다.


스무 명쯤 되는 대가족이 한 집에 산다. 네팔시골에서는 흔한 풍경이다.

할머니가 가정의 중심을 잡고 있고 아들과 며느리들은 위로는 어머님을 모시고 아래로는 자식들을 건사하며 대가족을 꾸리고 있다.




한국에서 태어났으면 결혼은 꿈도 꾸지 못한 채 직장을 갖기 위해 아둥바둥하고 있을 나이인 강가.

파랑새는 어디에 있는가. 그녀의 남편도 남동생도 사우디아라비아로 한국으로 떠나지만

그녀에게 바깥세상은 남편을 배웅하기 위해 카트만두에 가본게 전부다.

그녀가 아는 세상은 친정이 있는 사랑콧과 친정에서 멀지 않은, 시집 온 라촉이 전부다.


파랑새는 어디에 있는가.

그녀는 내가 부러울까.

나는 그녀가 부러운가.



  <8일>

   .라촉Lahachowk(1260m) - 향자Hyangja - 밀란촉Milanchowk -티벳탄난민캠프Tibetan Refugee Camp, 3hrs


라촉에서 포카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티벳난민캠프가 멀지 않다.

향자에서 밀란촉까지는 덩치큰 차들이 내달리는 도로가를 걷는다.

밀란촉부터는 도로를 버리고 강을 따라 걷는다. 꽃길이다.





티벳난민캠프는 60여년이 다 되도록 조국을 빼앗가고 남의 나라 땅 한 귀퉁이에서 셋방살이를 하는 티벳인들의 보금자리다.

지붕이 금박으로 빛나는 장춥촐링곰파가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한다.

장춥촐링곰파에서 하룻밤 묵는다.

화장실도 딸리지 않은 단촐한 방이 800루피나 되지만 보시하는 마음으로 묵는다.

절에서 식사를 사먹을 수도 있는데 티벳탄 마을에 왔으니 식당에서 뗀뚝을 사먹어야겠다.








"수제비 돼요? 아니 뗀뚝 돼요?"

도로가에 면한 구멍가게를 겸한 식당(?)에  들어서며 뗀뚝을 찾았다.

뗀뚝은 우리네 수제비를 꼭 닮은 티벳탄 음식이다.

가게 밖에 테이블과 의자가 나와있기에 식당도 겸하는가 하기는 했지만 

막상 안으로 들어가니 조그만 가스렌지가 한쪽에 있고 냄비와 바닥을 보이는 양념통만 있어

뭐가 만들어질까싶기도 하다.

식당 주방 특유의 열기와 음식냄새, 분주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그녀가 된다지 않는가.

그녀는 불쑥 나타나 뗀뚝을 찾는 이방인에게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생김과 옷차림만 봐도 티벳탄임이 분명한 그녀가 맛난 뗀뚝을 뚝딱뚝딱 만들어 줄 것이다.





그녀는 반죽을 해서 잠시 숙성을 시키기 위해 천을 덮어두고 그 사이 마늘을 찧고 고추와 양파를 짓빻아 액젓(?)과 섞어서

뗀뚝에 얹어먹을 매콤 소스를 만들기 시작했다. 급할 것도 없고 게으름을 피우지도 않는, 일목요연하고 능숙한 손놀림이다.

 

티벳탄 마을에 왔으니 뗀뚝을 먹을 수 있겠다 싶어 몇 곳의 레스토랑에 물어봤지만

하나같이 고개를 저으며 이 많은 메뉴를 놔두고 생뚱맞게 웬 뗀뚝이냐는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이 야심차게 내놓은 차림표에는 서양인의 입맛을 겨냥한 음식 이름이 한가득 적혀 있다.


그녀가 준비하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자니 제대로 된 가정식 뗀뚝을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불을 피울 차례다.

가스렌지가 있기는 하지만 가스공급이 잘 안되고 비싸서 고작 뗀뚝을 만들기 위해 가스레인지를 켤 수는 없다.

그녀가 이동식 화덕에 잔 나뭇가지들을 넣고 불을 피우자

자욱한 연기가 미친년 머리칼 휘날리듯 흩날려서 눈이 따꼼거린다.

연신 눈가를 훔치며 냄비에 물을 넣고 끓기를 기다린다.


그 사이 숙성된 반죽을 밀어 길게 자른다.

화력이 약해서인지 끓을듯말듯 뜸을 들이던 물이 보글보글 끓어오르자 그녀가 수제비를 뜨기 시작한다.

나도 그녀 옆에서 수제비를 뜬다.


말없이 수제비를 뜨고 있자니 마음이 편안하고 고요해진다.

길 위에서 일상을 사는 듯한 평온함.





인심좋게 그릇 가득 담아온 수제비를 앞에 두고 나는 눈물겹다.

황후의 밥상이 이보다 더 극진할텐가.

화려하기 이를 데 없는 촌스러운 진분홍 식탁보와 플라스틱 의자도 기껍다.






극진한 마음으로 기도를 올리는 당신들과 같은 기도주문을 외며 소원하고 또 소원한다. 

부디 당신들의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아무리 어리석은 중생일지언정

파랑새가 어깨 위에 앉아 재잘거리는걸 알아채기를..




  <9일>

  .Tibetan Refugee Camp - Sarangkot(1592m), 2hrs 40min.



사람들은 높이 날아오르고 싶어했다.

파랑새를 찾다 지쳐 스스로 하말라야 골짜기를 날아다니는 파랑새가 되고 싶었는지도 몰랐다.

다리가 부러진 새처럼 땅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하늘로 날아오르는 사람들을 올려다봤다.










 <10일>

 .Sarangkot(1592m) - Lakeside, 2hrs 30min


포카라에 있는 숙소를 향해 걷는다.

산중턱에서 내려다보니 숙소가 있는 마을과 페와호수와 걸었던 산길이 한눈에 보인다.


한 발 한 발 디뎌 여기까지 왔구나.






며칠만에 다시 온 인간세상에서는 축제가 한창이다.

색색의 물감을 서로에게 칠하며 아이도 어른도 한껏 축제 기분을 냈다.





다리쉼을 하는데 아이들이 슬금슬금 다가오더니 얼굴을 총천연색으로 만들어놓았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작품(?)이  마음에 드는지 까르르거리며 사라졌다.

마치 열흘간의 산행을 잘 마친걸 축하해주는 것같만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