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트레킹

에베레스트 트레킹-2005

나는 걷는다 2006. 6. 8. 11:50

 

 <에베레스트 트레킹 - 2005> 

 

 *기간: 29일(2005.11.09~12.07)

 *여정: 지리Jiri~루클라~고락쉽(칼라파타르)~촐라패스~고교(고교피크)~루클라~지리 

 *환율: $100=7000루피

 *경  비

  .1000루피(퍼밋),1000루피(마오이스트에게 강제 기부)         

   .290루피(카트만두~지리 버스요금)

   .320루피(지리~카트만두 버스요금)

   .400루피(트레킹 지도 구입)

   .1000루피(배낭 구입)

  -일일경비 약 400루피

  -가이드, 포터 x

  -비행기 타지 않음(카트만두~루클라)

 

 






*여 정

  1일: 카트만두~지리(1955미터): 9시간 15분(버스)

   2일: 지리~데우랄리(2710): 7시간

   3일: 데우랄리~쎄테(2575): 8시간30분

   4일: 쎄테~준베시(2680): 6시간 30분

   5일: 준베시~눈탈라(2330): 7시간

   6일: 눈탈라~푸이야(2796): 8시간 40분

   7일: 푸이야~몬주(2840): 8시간20분,에베레스트 국립공원 입구

   8일: 몬주~남체(3440): 3시간

   9일: 남체:고소적응과 장비대여. 남체에서 등산용품 대여가능, 비행기예약, 인테넷도 가능

  10일: 남체~텡보체(3860): 4시간 25분,view point,

  11일: 텡보체~딩보체(4410): 5시간 30분

  12일: 딩보체~롭체(4910): 5시간,고소증세로 애를 먹다

  13일: 롭체~투클라(4620): 2시간, 고소증세가 심해져 하산

  14일: 투클라~고락쉽(5140): 3시간 30분+3시간(칼라파타르 왕복) 

  15일: 고락쉽~종라(4830): 4시간 30분

  16일: 종라~촐라패스(5330)~당낙(4700): 5시간 30분 

  17일: 당낙~고교(4790): 2시간+3시간(고교피크(5360)왕복)

  18일: 고교~제 4호수와 5767봉 트레킹~고교: 6시간 30분

  19일: 고교~남체(3440):9시간 20분

  20일: 남체(3440): 3주만에 목욕하고 머리감고 달콤한 휴식

  21일: 남체~무제: 6시간 40분,

  22일: 무제~붑사(2360): 6시간 30분

  23일: 붑사~눈탈라(2330):6시간

  24일: 눈탈라~준베시(2680): 8시간 20분

  25일: 준베시~킨자(1630): 9시간

  26일: 킨자~데우랄리(2710): 6시간

  27일: 데우랄리~말리(2220): 6시간

  28 일:말리~지리(1955): 2시간 30분

  29일: 지리~카트만두:8시간(버스)

 

 

<트레킹 떠나기 전 날>

 

솔로지역에서 마오이스트(네팔반군)들이 활개친다고 했다.

그들이 트레커들에게 강제로 돈을 징수하는바람에 대부분의 트레커는 솔로지역을 생략한채

루클라까지 비행기로 간다고 했다.

지리Jiri부터 천천히 걸을 예정이라 최신 정보가 필요했다.

퍼밋을 파는 곳에 문의하고 몇 군데 여행사를 돌아다녔지만 말들이 다르다.

당연하다는듯 비행기를 타고 가야한다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지리부터 걸어도 큰 문제가 없을 거라는 의견도 있다.

문제는 마오들이 원하는 기부금 액수가 예상 한도를 초과한다는데 있다.

 

떠도는 말들 말고 가장 최근에 솔로쿰부를 트레킹한 트레커를 만나 날씨와 네팔 반군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얻어야했다.

다행히 '쨩'에서 며칠 전에 쿰부에서 돌아온 트레커를 만나 쿰부지역의 날씨와 필요한 정보를 얻었다.

그도 지리부터 걷는 것에는 반대다.

 

 하지만 나는 걷고 싶다...

 

마음이 원하는대로 하기로 했다.

지리Jiri행 버스표를 사고 비상식량으로 분말우유, 분말주스, 설탕, 커피, 사탕, 신라면(60루피)도 장만했다.

적당한 크기의 배낭과 트레킹 지도도 구입하고 트레킹 가이드북에 필요한 부분을 복사하고

<소풍>에 가서 저녁을 먹었다.

 

목소리가 들뜨고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즐거움이 일렁인다.

 

우리는 내일 히말라야로 간다.

 

 

 

<1일>, 11월 9일, 수요일

.카트만두(Kathumandu)~지리(Jiri,1955), 9시간15분(버스), 290루피

 

올드파크 버스정류장에서 아침 7시에 출발하는 버스를 탔다.

카트만두를 조금 벗어나자 설산이 보인다.

나갈곳Nagalgot을 20킬로미터 남겨놓은 지점에서는 설산들의 향연이 펼쳐진다.

병풍처럼 둘러쳐진 설산들..

오리지널 '설산병풍'이다.

 

버스 안에는 우리말고도 세 명의 트레커가  있어 조금 안심이 된다.

 

솔로지역에서 반군인 마오이스트들이 트레커를 상대로 '기부금'이라는 명목으로 강제로 돈을 요구하고 있다.

에베레스트 지역은 다른 어느 곳보다 액수가 비싸 한 사람당 5000루피를 요구한다고 했다.

지리에서부터 트레킹을 하길 원하면서도 마오이스트들에게 돈을 강탈당하기 싫어

울며 겨자먹기로 비행기를 타고 루클라로 가는 트레커들도 적지 않다고 했다.

 

솔로에서 트레킹을 하는 동안 다른 트레커들을 못만나면 어쩌나했는데

다행히 버스 안에서 세 명의 트레커를 만났으니 반가울만도 했다.

두 명은 짐꾼과 가이드를 대동한 프랑스 커플이고 한 명은 우리 또래로 보이는 독일 남자다.

프랑스 커플은 22일 예정인데 올 때는 루클라에서 비행기를 탈 거라고 했다.

 

11시 30분에 점심을 먹으라며 차가 허름한 달밧집앞에 섰다.

60루피나 하는 엉터리 달밧을 의무감에 우걱우걱 먹는다.

맛없고 성의없는 달밧.

 

산을 넘고  몇 구비를 돌아 지리 입구에 도착하자 체크포스트가 있다.

어제는 여덟 명의 외국인이 들어왔다.

요즘 평균 하루에 열 명 안팎의 외국인 트레커들이 온다고 한다.

지금이 성수기인 것을 감안하면 턱없이 적은 숫자지만

그래도 꾸준히 트레커들이 오고 있는걸 알게 되니 적잖이 마음이 놓인다. 

     

'구더기 무서워서 장을 안담글 수는 없다!'

 

 9시간 30분만에 지리에 도착했다.

 내내 차에 시달렸더니 잠시 멍~하다.

 

지리는 에베레스트 등반의 고전적인 출발지답게 꽤 큰 마을이다.

시장 역시 규모가 있어 등산용품이며 일용잡화와 과일까지 어지간한 물건들은 거의 다 있다.

 

 내일부터 다시 걷는다.

 

  

 

<2일>,11월 10일,목요일

.지리(Jiri,1955)~시발라야(Shivalaya,1770)~데우랄리(Deurali,2710), 7시간

 

지리를 살짝 벗어나니 넓은 길이 나타나면서 완만한 오르막이 시작된다.

짐꾼들과 마을 사람들이 수시로 오가고 있어 심심하지 않다.

작은 규모의 로컬 식당이며 가게도 많다.

하나에 6루피씩 주고 삶은 계란 3개를 샀다.

 

고개까지 1시간 45분을 올라왔다.

어제 함께 버스를 타고 온 독일 친구 디디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다.

함께 걷는 트레커가 있어 든든하다.

그는 우리의 두세배쯤 되는 크고 무거워보이는 배낭을 매고 씩씩하게 걷는 중이다.

그의 배낭 안에는 따뜻한 오리털 침낭과 재킷이 있고 사과도 한보따리 들어 있다.

크리스마스와 신년휴가때 근무하고 일년 휴가를 한꺼번에 받아  트레킹을 하는 중이다.

지난 번에도 이런 식으로 일년휴가를 모아서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했다고 한다.

어지간히 산을 좋아하는 사람임에 틀림없다.

 

 고개를 넘자 시발리야Shivalaya까지 가는 가파른 내리막이다.

 무릎과 발목에 무리가 가지 않게 조심조심 내려온다.

 다시 데우랄리Deurali까지는 가파른 오르막. 올라도 올라도 끝날 것같지 않다.

 

 오가는 현지인들에게 일일이 정답게 인사를 건넸다.

 

 "나마스떼"

 

 길에서 만난 누구와도 좋은 기운을 나누고 싶다.

 

양쪽에 잔뜩 짐을 진 말들이 방울을 딸랑거리며 오르막을 오른다.

한 녀석의  옆구리쪽이 꽤 벗겨져있고 그 곳에서 피가 난다.

녀석은 지칠대로 지쳤는지 맨 꼴찌다.

 

'어디에도 만만한 삶은 없다.'

 

 

 

열댓살 안팎이나 됐을까.

짐꾼들은 대부분 키가 고만고만한 아이들이 많다.

우리나라에서라면 한창 사춘기를 겪을 나이인 아이들이

매일 제 키보다 더 높고 제 몸무게가 견디기 버거운 무거운 짐을 나르고 있다.

한 짐 가득 생필품을 지고 시발라야나 데우랄리까지 배달을 다닌다.

키를 훌쩍 넘는 짐의 무게가 버거워 몇 걸음 옮기고 쉬기를 반복한다.

 

슬리퍼나 허름한 운동화를 신고 제 삶의 무게만큼이나 무거운 짐을 나르는 아이들..

 

 '어디에도 만만한 삶은 없다.'

 

데우랄리는 능선 위에 있어 전망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주엽이는 한때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알려진 가우리샹카(Gaurishankar,7135)가 보인다며 좋아한다.

 

 -숙소<Rama Guest House>20루피, 달밧 95루피, hot shower 25루피 

 

 

 

 <3일> 11월 11일,금요일

 .데우랄리(Deurali,2710)~루부(Lubu)~킨자(Kinja,1630)~쎄테(Sete,2500), 8시간 30분

 

오늘의 관건은 반달Bhandar에 진을 치고 있다는 반군 마오들을 피해가는 것이다.

그래서 반달로 가는 대신 루부Lubu로 살짝 돌아 킨자Kinja로 가기로 했다. 

 

 아침에 능선에 올랐을 때 내려다보였던 평화로운 기운이 가득찬 아름다운 마을 루부.

연분홍꽃들이 아침 햇살에 빛나고 노란 유채꽃들도 환한 햇살에 더욱 밝고 예뻐 보인다.

사람들도 정답고 친절하기 그지없다.

 

돌아서 오길 잘했다.

콧노래라도 흥얼거리며 봄소풍이라도 나온듯 살랑살랑 걷고 싶다.

하지만 마음과는 달리 걸음은 빨라지고 킨자는 멀다.

꼬박 4시간 30분을 걷고서야 킨자에 도착했다.

 

에너지 소모량이 많아 배가 고플만도 한데 무슨 까닭인지 갈증만 심하고 식욕은 없다.

도착하자마자 1.5리터짜리 미네럴워터를 단숨에 거의 다 마셨다.

더위와 물배 때문에 식욕은 더욱 없다.

그래서 점심을 안먹겠다고 했다가 주엽이만 성질 자랑하게 했다.

 

수시로 트레킹지도를 꺼내 확인하며 우리 두사람의 길잡이 역할까지 하는 주엽이는,

아직 갈 길이 먼데 내가 점심을 안먹겠다고 하자 자기 관리도 못하는가 싶어 화가 났나보다.

마오를 피해가는 일로 둘다 예민해있기도 했다.

하지만 주엽이의 갑작스런 반응에 나도 '퉁'해서 짜파티 한 장과  짜이 한 잔을 우걱우걱 먹었다.

 

 

 

그리고 막 킨자를 벗어나려는데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수금쟁이 마오가 길목을 막고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길고 긴 실랑이가 시작되었다.

 

그는 한사람당 5000루피를 요구했다. 그렇담 두 사람에 10000루피.

만루피가 얼마만한 돈인지 알고나 하는 소리인지..만루피면 $150가까이 된다.

카트만두~루클라간 비행기 삯이 $90이니 조금만 더 보태면 두 사람이 루클라까지 비행기를 타고 갈 수 있는 돈인 것이다.

명색이 기부건만 실제로는 강탈이나 다름없다.

 

나는 가이드도, 짐꾼도 없이 네팔이 좋고 히말라야가 좋아 에베레스트까지 걸어가는 중이라며 깎아달라고 했다. 

눈망울이 선하고 천성이 선해보이는-천성이 악한 사람이 있겠냐마는-그가 잠시 생각하더니 그럼 3000루피씩 내란다.

하지만 여전히 큰 돈이다.

 

점심으로 짜파티와 짜이 한 잔을 먹은 것이 전부라며 우리에게 너무 큰 돈이라고 했다.

원하면 점심을 사줄 의향이 있다고 덧붙였다.

 

값은 다시 2000루피로 내려갔다.

나는 그가, 한달간 트레킹을 할 사람의 짐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단촐한 배낭과

그 흔한 스틱도 없이 나무지팡이를 갖고 다니는 것을 보며

마음이 한없이 약해지고 넓어지길 기대했다.

 

시간이 흘렀다.

그가 표정을 굳히고 최후통첩이라며 한 사람당 1000루피씩 내란다.

더 이상의 협상은 없고 그 돈을 못내겠으면 다시 되돌아가는 수밖에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벌써 한 시간 반가량 흘렀다.

 아직 갈 길이 멀기에 마음이 급하지만 그런 식으로 '기부'를 하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다.

 하지만 결국 그가 원하는대로 1000루피씩 주고 영수증을 받았다.

 

졸지에 2000루피를 빼앗기고 나니 화가 났다.

나에게, 길동무에게, 마오에게, 네팔정부와 군인들 그리고 착한 동네 사람들에게까지.. 

 

가파른 오르막길을 말없이 걷는다.

숨이 차서 수시로 쉬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주엽이도 말이 없다.

그러다  비탈길에서 풀을 뜯다 미끄러지면서 뛰어 내린 소에게 부딛칠뻔한 사고가 생겼다.

눈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가까스로 피했지만 주엽이 바지는 온통 소가 튀긴 흙탕물 범벅이다.

무던한 주엽이는 별 말이 없다.

 

 

 

꼬박 2시간 30분을 걸으니 능선상에 롯지가 너댓개 있는 쎄테Sete다.

소개받은 롯지를 찾아갔다.

방은 허름했지만 가이드 일을 오래했다는 친절한 주인덕분에 마음은 훈훈하다.

 

 저녁해가 질무렵 디디가 동네 어귀에 들어서는 것이 보였다.

 땀에 흠뻑 젖어 큰 배낭을 매고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다.

소리쳐 불러 같은 집에 묵는다.

그도 킨자에서 마오에게 3000루피를 뜯겼다며 속상해한다.

 

_<숙소>'New Everest Guest House'20루피, 달밧100루피 

 

 

 

  나는 걷는다...

 

 

 

 

 <4일>,11월 12일,토요일

 .쎄테(Sete,2575)~고얌(Goyam)~람주라(Lamjula,3530)~준베시(Junbesi,2680), 6시간 30분

 

 '셀파스튜Serpa Stew'

 

 랑탕 트레킹을 할 때 메뉴판에 있어 호기심에 시킨 적이 있다.

 야채와 국수 몇 가락이 멀건 국물과 함께 작은 그릇에 담겨 나왔다.

그때는 150루피(2100원정도)나 하는 가격에 비해 양은 적고 맛도 떨어져 섭섭했지만

원래 그런 음식인가보다하고 먹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먹은 '셀파스튜'는 차원이 다르다.

우선 이름에 걸맞게, 멀건 국이 아니라 진정한 스튜다.

큼직큼직하게 썰어 푹 익힌 감자와 올챙이국수 두 배쯤되는 면, 또다른 가느다란 면발,

완두콩, 당근, 신선한 푸른 야채가 큰 쟁반접시에 담겨 나왔다.

게다가 만든 이의 정성까지 가득 담겨 있어 먹으면 피가 되고 살이 되어 하루의 에너지원으로 충분할 것같다.

 

설파스튜를 든든하게 먹고 출발하자마자 가파른 오르막이다.

하지만 어제의 급경사 오르막에 비하면 한결 쉽다.

람주라Lamjula까지 세시간여를 거뜬하게 간다. 잠깐씩의 휴식이 달콤하기 그지없다.

이제 술렁술렁 내려갈 일만 남았다.

 

 

 

다음 마을인 준베시Junbesi는 한때 티벳탄 난민촌이 있었고 제법 규모가 큰 곰파도 있다.

   

 세시간 삼십분쯤 갔을까..

 들판과 파랗고 빨간 지붕을 인 집들,서너개는 되어 보이는 곰파..

 한 눈에 봐도 규모가 있고 풍족한 마을이 나타났다.

 준베시다. 

 마을 위쪽에 있는 곰파에 먼저 들렀다.

 닝마파의 티벳탄 곰파다.



 




열 살 남짓한 어린 학승들이 무를 썰어서 널어말리고 있다.

 



평화로운 곰파에서 마을을 내려다보며 한동안 앉아 있는다.


바람이 기도깃발을 흔들어댄다.

 

 '기도깃발이 바람에 나부끼면 소원이 이루어지고 악령이 멀리 사라질 것이다.'

 

 동네 뒷담길을 돌아 마을로 내려왔다.

소개받은 <준베시 게스트하우스>는 주인이 밭일하러 나갔는지 문이 잠겨 있다.

주인을 기다리며 양말을 벗어 수돗가에서 빨고 있는데 디디가 나타났다.

그도 곰파에 들러 오는 길이란다.

어제에 비해 일찍 도착한 그도 의욕을 보이며 찬물에 양말과 땀에 절어 소금기가 배어 나온

윗도리며 바지까지 빨아 널고 개운해한다.

 

그 사이 주인이 왔다.

집 앞 사과나무에 달린 사과를 눈여겨봐뒀던터라 냉큼 사과부터 주문했다.

히말라야 산 속에서 싱그런 사과를 먹을 생각만 해도 입안에 군침이 돈다.

 

주인이 금세 사과를 따왔다.

생김새보다 훨씬 맛있는 사과. 상쾌하게 한 입 배어 물었다.

사과향이 입안 가득 배어나온다.

 

 

 람주라 패스(3530)를 넘어..

 

 

 

<5일>,11월 13일,일요일

.준베시(Junbesi,2680)~링무(Ringmu)~탁산드라(Taksandu la,3071)~눈탈라 (Nunthala,2330), 7시간

   

 날씨만 좋으면 오전에 통과하는 푸록phulog에서 에베레스트와 첫 인사를 나눌 수있기에 

 엊저녁부터 한껏 기대에 부풀었건만 아침부터 잔뜩 구름 낀 하늘이 일찌감치 단념하라고 말한다.

 

게다가 어젯밤부터 주엽이와 툭탁거린 여운으로 마음속 날씨도 '흐림'이다.

하지만 준베시에서 푸록까지 능선따라 가는 길은 예쁘기 그지없다.

낙엽이 적당히 깔린 어깨 넓이의 오솔길이 이어진다.

 

꽤 거리를 두고 뒤에서 걸어오던 주엽이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말한다. 

 

 

 

"비상이야. 배낭끈이 다 떨어져가."

 

무슨 소리인가싶어 자세히 보니 애지중지하던 중국에서 산 짝퉁 'north face'배낭 오른쪽 끈이 

간신히 끝부분만 몸통에 매달려 달랑거리고 있다. 사태의 긴박함과 심각함에도 웃음이 터져나왔다.

억지로 참으면 참을수록 더 비어져나오는 웃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킥킥거렸다.

 

서둘러 제일 먼저 나타난 집에 들어가 바늘과 실을 빌렸다.

할머니 할아버지 두 분이 살고 있었는데 할머니께서 이불 꿰맬 때 쓰는 대바늘과 튼튼한 실을 주셨다.

 

산등성이에 자리한 넓은 밭과 집들이 점점이 흩어져 있는 그림같은 풍경을 배경삼아 주엽이가 배낭끈 꿰매기에 골몰해 있다.

신들이 사는 땅 히말라야에서 트레킹하다말고 바느질하는 사람은 너밖에 없을 거라며 놀렸다.

 

 저 멀리서 첫날 같은 버스를 타고 온 프랑스 커플이 짐꾼과 길잡이를 앞세우고 오고 있다.

그들과 인사를 나눌 정도로 거리가 좁혀질 무렵 배낭끈을 다 꿰매고 출발했다. 

 

 -<숙소> <Sangrila G.H> 50 루피, hot shower30루피, 달밧100루피

 

 

 

<6일>,11월 14일,월요일

.눈탈라(Nunthala,2330)~주빙(Juhbing)~붑사(Bubsa,2360)~파이야(Paiya), 8시간 40분

 

커피로 아침을 연다.

머그잔 가득 담긴 커피의 맛과 향이 일품이다.

 

 눈탈라에서 주빙Juhbing으로 가는 중간에 있는 다리까지 한시간 삼십분을 술렁술렁 내려가니 현지인 식당이 있다.

 볶음밥과 오믈렛으로 아침을 먹었다.

 가격만점, 영양도 만점이다.

 

다시 오르막이다.

며칠 사이에 오르막을 오르는 요령이 생겨 훨씬 수월하다.

 

구름이 서서히 걷히며 저 멀리 설산 봉우리가 보인다.

 

 

 

봄이 한창이다.

이름을 알 수없는 꽃들이 어서 오라며 환한 웃음으로 반긴다.

가을빛으로 물든 들판을 지나 낙엽이 진 산등성이를 걷고 있자니 우리나라에서 가을 산행을 하는 것같다.

 

오늘의 예정 목적지인 붑사Bubsa에 12시에 도착했다.

아직도 한 두 시간은 거뜬히 걸을 수 있을 것같아서 점심을 먹고 조금 더 가기로 했다.

 

라면을 주문했다.

라면이 된다기에 주문을 하긴 했는데 얼핏 보면 가정집같다.

안으로 들어서니 스님 한 분과 아주머니 두 분이 짜이와 전통주인 창chsng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다

낯선 이방인을 웃으며 반겨준다. 나도 덩달아 시골 고향집에라도 온 양 스스럼없이 한자리 꿰고 앉아

라면이 익을 동안 짜이를 마시며 스님을 통역삼아 아주머니들과 수다를 떤다.

 

먹음직스럽게 김이 오르는, 계란넣고 끓인 라면을 햇빛이 따사로운 마당에서 먹는다.

꿀이 아무리 맛있다한들 이보다 더 맛있을까.

 

 붑사를 지나자 오르막과 내리막의 연속이다. 그리고 산등성이..

 마치 인생길을 걷고 있는 것같다.

 다시 3시간여를 걸어서 파이야Paiya에 도착했다.

 

안개가 점점 내려앉는가 싶더니 금세 지나온 길과 마을과 산들을 삼켜 버렸다.

 

세상천지가 안개속이다.

 

-<숙소>'Beehive Guest House'30루피,볶음밥70루피,짜이20루피

 

 

 

 <7일>,11월 15일,화요일

 .파이야(Paiya)~수르케(Surke)~체플링(Cheplung)~팍딩(Phakding)~몬쥬(Monju,2840), 8시간 20분

 

밤새 추웠다.

그리고 쥐가 바스락거리는 소리때문에 밤 12시에 깨어 한동안 잠을 설쳤다.

그래도 피곤했던지 거의 11시간 가까이 잤다.

 

아침은 근처 현지인 식당에서 라면을 먹었다.

젊은 아낙이 밭에서 막 뜯어온 야채를 듬뿍 넣어  끓여온 라면맛이 일품이다.

할머니께서는 '옴마니밧메홈'을 중얼거리시며 맷돌에 귀리를 갈고 계신다.

예닐곱살쯤되어 보이는 남매는 아침으로 감자볶음을 먹고 학교갈 채비를 한다.

그러면서도 불쑥 찾아온 이방인에게 호기심어린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다.

아이들에게 사탕 두 알씩 주니 얼굴에 '웃음가득'이다.

 

걷기 시작한지 6일째되는 날이다.

그 사이 걷는 일에 익숙해져 오르내리막이 자연스럽다. 게다가 오늘은 길도 편안하다.

디디와 앞서거니 뒤서거니한다. 비슷한 연배라그런지 오가며 인사 정도 하는데도 정겹다.

 

 체플링Chepling은 카트만두에서 비행기를 타고 루클라Lukla에 온 사람들과 만나는 지점이기도하다.

그래서인지 체플링에 들어서자 갑자기 트레커들로 북적였다. 덩달아 짐꾼들도 많다.

'교통체증'이 일어나기도 한다. 단체로 온 일본팀도 몇 팀 보였다.

 

오늘의 예정 목적지인 팍딩Phakding까지 2시간만에 왔다.

길에도 식당에도 트레커들이 많다.

내친 걸음 에베레스트 국립공원 입구인 몬주Monju까지 갔다. 금세 2시간이 지났다.

 

 내일은 에베레스트로 한 걸음 더 다가간다.

 

-<숙소>'Namasthe Lodge'100루피,달밧140루피,볶음면100루피

 

 

 내 어릴적 모습이 저랬을까..

 

 

 

 기도문이 가득 새겨진 바위

 

 

 

 <8일>,11월 16일,수요일

 .몬쥬(Monju,2840)~남체(Namche,3440)~상보체(Syangboche,3720)~남체(Namche,3440), 5시간

 

엊저녁 묵은 숙소에서 먹은 달밧과 볶음면이 이제까지 먹은 것중 거의 최고였음에도 불구하고 

주인의 불손한 태도 때문에 차도 안마시고 일찍 나섰다.

엊저녁 달밧을 주문하고 리필을 원하는 트레커에게 주인 아주머니는 많이 먹으면 배아프니 리필을 안해주겠노라고 했다.

쳇, 해도 너무 한다.

 

하루종일 걷는 게 일인 트레커들에게 리필이 가능한 달밧은 트레킹 최고의 음식이다.

그런데 우리의 건강을 염려해 리필을 해주지 않겠다니 아주머니의 마음씨가 음식솜씨 따라갈려면 하세월이겠다.

 

옆에서 식사를 하던 독일-슬로베니아 커플의 남자도 달밧을 시켰다가 리필을 거부당하고 황당해한다.

아니나다를까, 다음날 아침을 먹으려고 들른 현지인 식당에서 그들을 만났다.

그들 역시 아주머니의 태도가 마음에 안들어 아침을 먹지 않고 출발했다고 한다. 

 

몬쥬에서 조금만 가면 에베레스트 국립공원 입구다.

입장표 1000루피를 사야 하는 곳이기도 하다.

슬로베니아 여자가 마오이스트에게 이미 기부(?)했으니 입장료를 낼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입구를 지키는 직원도 꿈쩍 안했다.

동문서답처럼 국립공원안에서는 안전하니 염려말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입장권까지 사고 나니 새삼 에베레스트로 가는 것이 실감난다.

 

남체Namche까지는 계속 오르막이다.

그런데 오늘 아침은 이상하다.

보통은 아침에 세 시간정도는 가볍고 경쾌하게 걷는데 오늘은 다리가 묵직하다.

마치 양쪽에 무거운 돌을 매달고 걷는 것같다.

 

아침부터 트레킹을 마치고 내려오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게다가 트레커들의 짐을 실은 야크떼들도 심심치않게 지나간다.

그 때마다 흙먼지가 인다. 이곳이 사람이 얼마나 북적이는 곳인가 새삼 실감한다.

확실히 지리에서 체플링까지 오는 길과는 많이 다르다.

 

꼬박 2시간 30분을 올라 남체에 도착했다.

남체 입구에서 디디와 만나 함께 마을로 들어섰다.

롯지와 상점, 물건이 넘쳐나고 전화는 물론 인터넷도 가능하다.

 

<쿰부롯지>에 짐을 풀었다.

고산등반가 엄홍길씨의 단골집인듯 그의 사진들이 붙어 있다. 1985년에 지미 카터가 묵고 갔다는 표지판도 있다.

기형적으로 식당시설이 훌륭한데 비해 묵는 방은 허름하기 짝이 없다. 게다가 오가는 단체 트레커들로 번잡하기 이를데없다.

 

구경삼아 슬슬 마을 위쪽으로 오르다보니 상보체Sangboche다.

훌륭한 전망을 즐길 수있는 곳이지만 구름이 짙게 끼어 제대로 설산을 보지 못했다.

고소적응만 잘하고 내려온 셈이 됐다.

그래도 주엽이는 아마다블람(Ama Dablam6856)이 보인다며 좋아한다.

 

-<숙소>'쿰부호텔'100루피,달밧145루피,충전80루피,hot shower150루피.. 

 

 

 

 <9일>,11월 17일,목요일

 .남체(Namche,3440)

 

고소적응을  위해 하루 더 묵는다.

아침 일찍 숙소를 옮겼다.

<선사이트롯지>  

 이름에 걸맞게 햇빛이 잘드는 2층 방이다.

번잡스럽던 <쿰부롯지>와는 달리 조용하고 가족적인 분위기다. 셀파 할머니가 주인이다.

 

 오늘 해야할 중요한 일은 주엽이가 침낭을 빌리는 일이다.

 다행히 적당한 무게와 두께의 침낭을 적당한 가격-3000루피 보증금에 하루에 45루피-에 빌렸다.

 집에 와서 빌려온 침낭을 햇볕에 말리고

오후에는 두어시간 침낭 속에 들어가 있더니 따뜻하다며 좋아한다.

 

 곰파 뒷길을 산책한다.

 한시가 조금 넘었을 뿐인데 벌써부터 구름이 잔뜩 몰려와 있다.

 바람이 불면서 체감온도가 급격히 떨어진다.

 

앞으로의 산행은 구름이 몰려오고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오후 이전에 끝내야하고

적어도 한 시 이후에는 숙소에서 체온 보존에 신경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운다.

세끼 꼬박 챙겨먹고 차도 듬뿍 마신, 잘 먹고 잘 쉰 하루다.

 

-<숙소>'sun site lodge'50루피,달밧130루피,충전100루피,hot shower100루피

 

 

 남체에서 바라본 탐셔큐

 

 

 

 

야크가 히말라야의 중요한 운송수단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짐이 너무 많다.

입에서 단내가 나고 '등이 휠 것같은 삶의 무게'다.

 

 

 

 

 <10일>,11월 18일,금요일

 .남체(Namche,3440)~푼기텡기(Phunki Tengi)~텡보체(Tengboche,3860), 4시간 25분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걷는다.

할머니께서 시간 맞춰  정성스레 해주신 아침밥과

트레킹 잘하라며 머그컵 가득 따라주신 서비스 밀크티가 오전 걷기의 든든한 에너지다.

 

동네를 벗어날 때까지 가파른 오르막이다.

주엽이가 사과 네 개를 100루피에 사서 자기 배낭에 넣었다.

빌린 침낭때문에 배낭이 무거울텐데도 사과를 좋아하는 나에 대한 배려다.하루에 한 개씩 먹으란다.

 

능선길이 이어지고 아마다블람이 선명하게 보인다.

부지런한 트레커들이 아침 일찍부터 오간다.

우리는 급할 것없는 걸음으로 천천히 걷는다.

 

한걸음 더 에베레스트에 다가간다.

 

 

  

   

운이 좋으면 볼 수있다는 무스크디어를 텡보체 가는길에 만났다.

 순한 녀석이 낯가림도 하지 않고 지나가는 트레커들을 보고 있다.

푼키텡기Phunki Tengi를 지나 나타난 다리를 기점으로 내리막과 오르막이 갈린다.

상큼한 사과를 먹으며 다리 건너서 잠시 쉬어간다.

텡보체까지 1시간 30분은 계속되는 오르막이다.

 

 

 

텡보체곰파는 꽤 규모있는 20세기초에 지어진 겔룩파 곰파다.

 

지난 15일부터 이곳에서 'mani rimdu 2005'라는 축제가 열렸는데 오늘이 그 마지막날로 푸자를 행했다.

4시 넘어 시작한 의식은 5시 20분쯤에 끝났다.

스님들이 직접 음악을 연주하는 가운데 갖가지 곡식을 일일이 쟁반에 담아 주지스님의 축원을 받은 후에 장작불 속에 던졌다.

의식의 의미를 알길없는 먼 이방에서 온 사람들이 추운줄도 모르고 조용히 지켜본다.

추워서 귓볼이 빨갛다못해 얼얼할 정도다.  

 

 낮에는 햇빛이 잘 드는 정원에서 아마다블람을 보며 점심을 즐기고 차를 마시며 두시간동안 해바라기를 했다.

오랜만에 낮시간에 햇빛을 즐기니 몸이 뽀송해지는 것같다.

하얀 둥근 테이블에 앉아 마시는 커피맛은 트레킹 중에 맛보는 큰 호사다.

 

-<숙소>'Tengboche Lodge'200루피, 달밧190루피, 라면150루피, 짜이30루피, 비싸고 불친절하다 

 

 

 

<11일>,11월 19일,토요일

.텡보체(Tengboche,3860)~팡보체(Pangboche,3930)~딩보체(Dingboche,4410), 5시간 30분

 

 텡보체 조금 지나 현지인 식당에서 라면으로 아침을 먹었다.

 이른 아침이라 손도 시렵고 배도 고팠는데 따끈한 라면 국물이 들어가니 온 몸이 훈훈해진다.

 길은 편안하다. 천천히 걷다보니 팡보체Pangboche다.

 

 팡보체로 가는 두 갈래 길중에서 팡보체곰파에 들르기 위해 윗길을 택했다.

 팡보체곰파는 300년전에 지어진, 쿰부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곰파라고 한다.

 닝마파곰파로 지금은 열다섯명의 스님들이 있다.

 대웅전에 들어가 부처님께 인사를 드리고 보시를 했다.

 

곰파앞에 있는 가게에서 계란 다섯개를 삶았다.

주문을 받은 처자는 계란을 삶아본 적이 없는지 계란 삶을때 소금을 넣지 않아 껍질은 잘 까지지 않고

가까스로 껍질을 까고보니 채 익지도 않았다. 하지만 영양보충차원에서 맛있게 먹었다.

 

 페리체Pheriche와의 갈림길인 다리를 건너면 딩보체Dingboche로 가는 오르막이 이어진다.

 고도가 4000미터를 넘어선 탓인지 머리가 조금  띵~해온다.

 어제에 비해 트레커가 적어 흙먼지가 덜 일어서 좋다.

 

딩보체에서는 아마다블람의 뒷모습을 볼 수있다.

남체에서 보던 아마다블람과는 아주 다른 모습이다.

더 웅장하고 더 잘생겼다.

 

 마을 입구에 있는 현지인 식당에서 아끼고 아끼던 신라면을 끓여 밥에 말아먹었다.

 

-<숙소>'50루피,달밧200루피,볶음면150루피,짜이30루피 

 

 

 팡보체에서 바라본 아마다블람

 

 

 

 

 딩보체 가는 길에 바라본 아마다블람 

 

 

 

 <12일>,11월 20일,일요일

.딩보체(Dingboche,4410)~투클라(Thukla,4620)~로부체(Lobuche,4910),5시간

 

6시 30분.

밖에 나오자마자 바람이 거세다.

출발할 때 위아래 내복을 벗은 것이 후회된다. 뼛속까지 시리다.

 

오늘은 4910미터의 로부체Lobuche까지 가는 길이라 조금 긴장된다.

앞으로 트레킹을 하는 동안 고소를 겪느냐 여부를 판단하는데 중요한 날이기 때문이다.

4910미터인 로부체까지 가는 길에 혹은 로부체에서 아무 문제가 없다면 이후에는 고소걱정없이 다닐 수있을 것이다.

 

딩보체에서 투클라까지 가는 길은 티벳이나 인도 북쪽 어딘가를 떠오르게 한다.

멀리 가까이 설산들이 보이고 평원이 펼쳐지고 키작은 관목들과 황량한 산,푸른 하늘..

 

 독일-슬로베니아 커플과 일본 트레커 둘 그리고 며칠전부터 만났던, 부지런하고 정력이 넘치는 서양 할아버지와

 그의 짐꾼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다.

 

2시간만에 투클라에 왔다.

아침으로 셀파스튜를 먹고 다시 출발!!

이제부터 오르막이다. 로부체까지 가려면 300미터를 올려야한다.

 

그런데 몇 걸음 떼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속이 메슥거리면서 구토를 하려고 한다.

전형적인 고소 증세다.

이럴 수가..

 

수시로 트레커들과 짐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오가는데 나만 겨우 4620미터에서 고소로 발이 묶이다니...

투클라에서 쉬어가자는 주엽이 말을 들은체도 않고 몇 걸음  걷는다. 우웨웩~

 

잠시 후에 다시 걸음을 내딛었다.

이번엔 구토증세에 두통까지 가세한다. 다리에는 힘이 하나도 없다.

조금전까지만해도 아무렇지 않았는데 어떻게 이 모든 일이 한꺼번에 일어나는걸까.

답은 명료하다. 고소에 걸렸으니까.

 

 내가 가겠다고 고집을 부리자 주엽이가 내 배낭을 대신 맸다.

 제 몫의 무게는 스스로 감당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우리에게 처음 있는 일이다.

하지만 여전히 걷기가 쉽지 않다.

오르막이 끝나고 내리막과 평지가 이어지는데도 힘이라곤 없는 다리가 제멋대로 흐느적거렸다.

 

로부체에 도착하자마자 먹은 것을 다 토했다.

설상가상으로 로부체에는 숙소가 대여섯곳 있는데 이미 만원이다.

간신히 방이라고 하기도 뭣한 허름한 방을 구해 누웠다. 여전히 머리는 조여오고 구토증세도 있다.

 

 

다행히 저녁에 식당에서 칼라파타르와 EBC(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를 끝내고 내려온 트레커를 만나

고소약인 다이녹스와 두통약 페니실린과 구토약을 받았다.

고마운 인연이다.

어떻게해서라도 기운을 차릴 일념으로 세가지 약을 먹으니 구토가 멈추고 두통도 덜하다.

 

-<숙소>200루피

 

 

 투클라가는 길에 바라본 촐라체

 

 

 

 <13일>,11월 21일,월요일

 .로부체(Lobuche,4910)~투클라(Thukla,4620),2시간

 

 밤새 화장실에 들락거리느라 자는둥마는둥했다.

 엊저녁 여러 가지 약을 먹느라 1리터 이상의 물을 마신 탓이다.

그래도 다행히 약을 먹은 덕분에 구토 증세도 사라지고 두통도 훨씬 덜하다.

아침에는 고소에 도움이 된다는 마늘수프를 먹었다.

 

주엽이는 무조건 투클라로 내려가서 하루 이상 쉬고 다시 올라오자고 한다.

온 길을 되돌리는 것도, 그 가파른 길을 다시 올라오는 것도 아득하지만 그렇게 하기로 했다.

 

배낭을 매고 어제 힘겹게 올라온 길을 되걷는다.

어제보다 훨씬 상태가 좋다.

2시간 가까이 걸려 올라간 길을 한시간만에 걸어내려왔다.

 

아마다블람이 아주 잘 보이는 숙소에 짐을 풀었다.

어제 묵은 방에 비하면 깨끗하고 단정하기가 별다섯개 호텔 부럽지않다.

 

 많은 한국 트레커와 등반가들이 묵어갔는지 여기저기 한글 스티커들이 붙어있고

 식탁보도 한국 등반팀이 주고 간 거라고 한다.

 알고 보니 주인장 역시 셀파로 고산등반가인 박영석씨와 잘 아는 사이라고 했다.

 

 

 

 촐라 초chola cho가 잘보이는 곳으로 올라갔다. 그 길은 종하Dzongha로 가는 길이기도 하다.

 길은 좁고 미끄러지는 흙길이다.

 

 왜 나는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이 길을 오르는가.

 

 물음은 있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마른 흙길에 앞선 이들의 발자국이 찍혀 있다.그 위에 내 발자국을 더했다.

 인연.

 

-<숙소>'Yak Lodge' 달밧200루피,셀파스튜140루피 

  

    

 <14일>,11월 22일,화요일

 .투클라(Thukla,4620)~로부체(Lobuche,4910)~고락쉽(Gorak Shep,5140)~칼라파타르(Kala Pathar,5510)~고락쉽,

  7시간 25분 

 

셀파스튜로 아침을 먹고 물병에 물도 가득 채우고 출발.

다시 투클라 패스를 향해 올라간다.

다행히 그제는 물론이고 어제보다도 훨씬 몸상태가 좋다.

어제 잘먹고 잘 쉰 덕분인지 내딛는 발에는 힘이 들어가 있고 머리도 개운하다.

그저께 두시간 반만에 갔던 로부체에 한시간 삼십분만에 도착했다.

 

마침 로부체 입구에서 한국인 트레커 두 명을 만났다.

트레킹 이후 처음 만난 한국사람들인지라 무척 반가웠다.

그들도 어제 처음 만났다고 하는데, 한 사람은 고교에서 촐라패스를 넘어 칼라파타르와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

다녀온후 딩보체로 가는 중이고, 다른 한 사람은 어제 당일로 칼라파타르에 다녀온 후 촐라패스를 향해 가는 중이었다.

인사를 나누고 정보를 교환한 후 헤어졌다.

 

 우리는 내친 걸음 고락쉽까지 갔다.

고락쉽까지는 200미터를 더 올려야하고 로부체 패스도 지나야한다.

한걸음 한걸음씩 꾸준히 걸어 2시간여만에 고락쉽에 도착했다.

<히말라야 롯지>에 숙소를 정하고 칼라파타르로 향했다.

 

둘다 컨디션이 최상이다.

칼라파타르까지는 완만한 오르막이 계속되지만 워낙 고도가 높아 한걸음 떼기가 만만치않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한시간 반을 걸어 칼라파타르에 도착했다.

사방이 설산이다. 그리고 빙하의 물결.

 

 드디어 해냈다.

 바람이 거세다 .강풍이다.

 몸이 날아갈 것같다.

 

-<숙소>'히말라야롯지'300루피 

 

 

 고락쉽에서 바라본 눕체.왼쪽에 구름이 살짝 올라오는 산이 에베레스트다

 

 

 칼라파타르(5550)에서 바라본 에베레스트

 

 

 

<15일>,11월 23일,수요일

.고락쉽(Gorak Shep,5140)~로부체(Lobuche,4910)~종하(Dzongha,4830),4시간 30분

 

 칼라파타르를 다녀온 후 긴장감이 풀렸는지 평소보다 조금 늦게 일어났다.

 내리막이기도 하고 할 일을 다하고 내려간다는 생각에 발걸음이 가볍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칼라파타르를 향해 올라오고 있다.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어제 같은 숙소에 묵었던 독-슬커플은 촐라패스를 넘는 대신 아래로 내려간다고했다.

 높은 고도와 설산은 이제 충분하다고..평지와 따뜻한 곳이 그립다고..

 

 왜 아니겠는가.

 

 그들은 이란과 파키스탄을 지나 중국으로 와서 티벳을 여행하고 네팔로 왔다.그것도 여러 지역을 자전거를 타고 여행했다.

 자전거를 타고 낭가파르밧 베이스캠프에 가고 카라코람 하이웨이를 탔고 다시 티벳을 여행하고 네팔까지 왔다.

 그러니 높은 곳은 이제 충분하다는 그들의 심정을 이해할만도 하다.

 하지만 아직도 길이 궁금한 우리는 촐라패스를 넘어 고교로 향했다.

 

 4시간 30분만에 도착한 종하의 숙소사정은 열악하다.

 숙소는 단 두 곳 뿐으로 그 중 좀더 나은 곳은 이미 다 차서 간신히 다른 숙소에 방을 구했다.

 트레커들이 계속 몰려드는 통에 그런 형편없는 곳이나마 방을 구한 것에 감사해야할 지경이다.

 

 그곳에서 디디와 해후했다.

 그는 막 촐라패스를 넘어와 점심을 주문해놓고 있었다.조금 핼쑥해보였지만 행복해보였다.

 보고 싶은 풍경을 맘껏 즐긴 이의 만족감이 가득 깃들어 있다.

 

 

 

 오후 2시가 넘자 구름이 몰려와 태양을 완전히 가려버렸다.

 해바라기를 하던 사람들이 좁고 옹색한 식당으로 몰려들었다.

 추위로 갈 곳을 찾지 못한 길잡이와 짐꾼들까지 식당으로 몰려와 난로를 에워쌌다.

 

 내일을 위해 감자볶음을 시켜 양껏 먹고 7시 조금 지나 방으로 왔다.

 춥고 어설픈 방에서 억지로 잠을 청했다.

 

 내일은 촐라패스를 넘는 날이다.

 

 

 

<16일>,11월 24일,목요일

.종하(Dzongha,4830)~촐라패스(Chola Pass,5330)~드라그나그(Dragnag,4700),5시간 30분

 

 언제부턴가 나의 에너지 보양식이 된 셀파스튜로 아침을 먹고 디디의 조언대로 비스킷도 하나 샀다.

 가격 하나만은 내멋대로인 주인장은 코코넛 비스킷 한 봉지에 80루피를 받았다.

 

 출발이다.

 왠일인지 시작부터 몸이 무겁다.

 어제 잠잘때 바지를 벗으니 엉덩이 부분이 찢겨 있었다.

 낮에 바위나 돌위에 잠시 앉았을때 찢겼나본데 그것도 모르고 하루종일 입고 다닌 것이다.

 

 

 

속상하다.

 

 머리는 2주째 감지 못해 북수세미고 속옷은 한 번도 빨지 못했으며 매일 강한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면서도

 며칠째 눈곱세수만 하고 있다.햇볕에 방치된 손은 시커멓고 갈라져있다.

 

며칠전 로부체에서는 항상 검지 손가락에 끼고 다니던 '옴마니밧메홈'이 새겨진 반지까지 잃어버려 허전하기 그지 없다.

그리고 어제 모르는 사이에 바지까지 찢겨져 나간 것이다..그리고 그것도 모른채 입고 다니고..

 

고산에서 그만 걸어다니고 싶다.

뜨거운 물이 펑펑 쏟아지는 곳에서 샤워도 하고 머리도 감고 땀냄새에 절은 옷과 양말,속옷도 빨고..

개운한 마음으로 머리를 말라며 해바라기를 하고 얼굴 구석구석 정성스레 로숀도 바르고 싶다.

 

걷는 대신 하루종일 아무 것도 안하고 둥글거리고 싶다.

깨끗한 잠자리 옷을 입고 침낭 속에 들어가 편안하고 따뜻하게 자고 싶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지금 5330미터의 촐라패스를 향해 힘겹게 한걸음씩 떼어놓고 있으며 오늘 패스를 넘어야한다.

 

 오르막은 여전히 버겁다.

 5000미터가 넘는 곳에서 더 높은 곳을 향해오르고 있는 중이다.

 

 다행히  다른 팀의 두 명의 짐꾼이 앞에서 가고 있다.

 그들 덕분에 길없는 너덜지대를 통과하고 빙판길을 지나 촐라패스 정상에 왔다.

 고마운 인연이다.

  

 내리막 역시 만만치않다. 가파른 잡석길이다. 이것도 길인가싶다.

 사람들이 무엇때문에 이런 위험한 '길아닌 길'을 오르내리는가..

 그리고 지금 그런 생각을 하며 이 길을 걷고 있는 나는..?

 

 다행히 바람이 잦아들어 무사히 촐라패스를 넘었지만 당낙까지는 아직 한참을 내려가야한다.

 방을 잡기 위해 주엽이가 빠른 걸음으로 앞서가고 나는 천천히 걷는다.

 계속되는 내리막..오가는 사람들이 쌓아놓은 작은 돌탑들이 이정표 역할을 한다.

 

 5시간 30분만에 당낙에 도착했다. 

 꿀맛같은 휴식.

 밥과 데친 양배추를 주문해 칠리소스와 케찹을 섞어 고추장삼아 양배추쌈을 싸서 먹었다.

 

-<숙소>'촐라패스 게스트하우스'

 

 

 

<17일>,11월 25일,금요일

.드라그나그(Dragnag,4700)~고교(Gokyo,4790)~고교피크(Gokyo Peak,5360)~고교(Gokyo),5시간 30분

 

고교로 향한다.

칼라파타르를 다녀오고 촐라패스를 넘은 후라서인지 벌걸음은 가볍고 마음도 편하다.

드라그나그(또는 당낙)에서 고교로 가기 위해서는 모레인 지대를 한시간 정도 걸어야 한다.

설산에서 흘러내린 빙하가 물결치고 있다.

앞선 이들의 발자국과 작은 돌탑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도와준다.

 

 빙하지대를 통과하자 아름다운 호수가 나타났다.탕보체초.

 잔잔하고 평화로운 옥빛 호수가 햇빛에 반짝이고 있다.

 

맞은편에서 며칠전 로부체에서 만난,촐라패스를 넘는다는 한국인 트레커를 다시 만났다.

그는 이곳에서 이틀을 보내고 오늘 남체까지 간다고 했다.

촐라패스를 넘느라고 죽을뻔했다고 했다.그래서 고교에 와서 고교피크에 올라가지 않았단다.

칼라파타르가 '쉽지  않았다'는 그의 말을 떠올리면 이해할 수있을 것기도 하다.(그래도 그렇지..)

대신 호수를 보러 위쪽으로 하루종일 걸어갔다왔다.

이제 카트만두를 거쳐 룸비니로 가서 며칠 쉰후 귀국할 거라는 그가 준 숙소정보는 아주 유용했다.

 

<초오유뷰 롯지>

 방값 싸고,친절하고,음식도 맛있고 편하고 깨끗하고..

 2층 식당은 모두 유리로 되어 있는데 호수 바로 앞에 있어 아름다운 전망을 자랑하고 있다.

 

 <두드포카리>얘기를 안할 수없다.

 고교 전체의 풍경을 더욱 아름답고 인상적이게 하는 것은 바로 '두드포카리'다.

 만약에 이 호수가 없었다면 높고 웅장한 설산들에 에워싸인 고교가 이렇게 부드럽고 친근하게 느껴지지는 않았으리라. 

 

주엽이가 호수 빛깔에 감탄하며 묻는다.

 

"저런 빛깔을 뭐라고 해?"

"옥빛,비취빛,.."

 

뭐라 할 수 있을까.이 아름다운 호수 빛깔을..

 

 잔물결이 인다.

 햇빛에 반짝인다...

 

아침을 먹은지 채 3시간도 안됐지만 고교 피크에 가기위해 감자볶음을 또 먹는다.

인심좋은 아주머니가 한접시 가득 담아온 감자 볶음은 달짝지근하니 맛나다.

 

'고교리'라고도 하고 '고교피크라고도 하는 전망 포인트까지는 다시 470미터를 더 올라가야 한다.

가파른 오르막이 보이지만 바로 며칠 전에 5510미터의 칼라파타르에 다녀오고

5330미터의 촐라패스를 넘었기에 어떤 두려움도 없다.

천천히 하지만 꾸준히 걸으면 머지 않아 도착한다는걸 알고 있으니까.

고소에도 완전히 적응이 되어 걷기가 훨씬 편하다.

 

신이 난 주엽이는 날쌘돌이처럼 지름길로 질러간 후 천천히 걸어오는 나를 기다리고 있곤 했다.

그러다 '고교피크'가 얼마남지 않은 곳에선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한달음에 올라갔다.

나는 뒤에서 숨고르기를 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숨막힐 듯한 아름다움'

 

 뭐라 형언할 수없는 빛깔을 지닌 호수와 설산,빨갛고 파란 지붕을 인 롯지들,

 그 너머 출렁이는 빙하 그리고 구름 한 점없이 파란 하늘..

 

5000미터가 넘는 곳에서 더 높은 곳을 향해 오르고 있는 나는 숨이 막힐 듯 숨이 차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숨이 막힐듯 행복하다.

 

 마지막 오르막은 길고도 멀게 느껴진다.한걸음 한걸음씩 위를 향해 걷고 있는데도 길은 줄지 않는다.

 바로 앞에서 기도 깃발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기도 깃발이 바람에 나부끼면 소원이 이루어지고 악령이 멀리 사라질 것이다...'

 

 저 초오유 맞은편이 티벳이라고 했다.

 내려오기 전에 간절한 마음으로 빌었다.

 

 

 

 '욕심없이 순응하며 살게 하소서..

  영성이 있는 만물을 섬기는 마음으로 살게 하소서..'

 

 편안한 마음으로 내려오는 길에 주엽이와 작은 돌탑을 쌓았다.

 돌에 깃든 영성에 감사하며 기도를 한다.

 

-<숙소>'초오유뷰롯지'50루피,방에 전기 들어옴,달밧200루피,감자볶음130루피,셀파스튜85루피  

 

 

 

 <18일>,11월 26일,토요일

'고교(Gokyo,4790)~제 4호수,무명봉(5767)~고교(Gokyo),6시간 30분

 

할 일을 다 했으니 오늘은 절대 무리하지 말자고,그냥 가볍게 산책만 하고 오자고..했다.

물론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은 것은 아니었다.

 

 네번째 호수까지 골짜기로 난 길을 따라 걸었다.길은 편안했다.

소풍이라도 나온양 길과 햇빛을 즐기며 걷다가 쉬다가 하였다.

 

 

 

네번째 호수는'두드포카리'와는 물빛이 많이 달랐다.좀 탁하고 어두웠다.

 

같은 숙소에 묵는 '스위스 워킹걸'이 얘기한 언덕 위로 올라갔다.

그녀가 그곳에서 찍은 에베레스트 전경이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덕 위로 오르는 일은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2시간이 넘게 올라가서야 에베레스트의 멋진 자태를 감상할 수 있었다.

north cole은 물론 south cole까지 아주 잘 보였다.

 

독립봉을 올라보려는 주엽이는 의욕이 넘쳤다.하지만 언덕 위 봉우리로 향하는 길은 험했다.

울퉁불퉁 크고 작은 바위들이 얼기설기 쌓여 있는 곳을 올라가야했고 그위의 칼날같은 리지 위를 기어올라야했다.

 

봉우리를 향해 바위를 기어오르던 나는 어느 순간 더럭 겁이 났다.바위들이 와르르 무너져 나를 덮칠 것만 같았다.

그리고 내가 디딘 바위가 흔들리기라도 하면 공포감은 더했다.게다가 갈수록 난이도가 높았다.

나는 그만 올라가고 싶다.

 

결국 주엽이 혼자 좀더 올라가보겠다며 사라졌다.

고요한 시간.

햇빛과 바람과 바위에 둘러싸인 나만 남았다.15분이 지났다.

 

"주엽아~"

 

소리쳐 불렀지만 아무 대답이 없다.

 

"주엽아~주엽아~"

 

내 목소리는 쌩한 바람 속에 묻혀 사라졌다.

 

20분이 지났다.

어디선가 주엽이가 나를 불렀다.

리지를 기어오르는 일이 너무 위험해서 단념하고 오는 길이란다.

 

바람이 세차게 몰아쳤다.

재빨리 바위 구간을 통과해 내려가기 시작했다.

에베레스트가 점점 작게 보이더니 얼마안가 눈앞에서 아주 사라졌다.

 

'안녕~'

 

 가볍게 출발한 산책길이 길어져 6시간 30분만에 숙소 근처에 도착했다.

 흘러내려오는 빙하물에 세수를 하고 이도 닦았다.

 

 차다.

 

  

 

  <19일>,11월 27일,일요일

 .고교(Gokyo,4790)~돌레(Dole)~남체바자르(Namche,3440),9시간 20분 

 

 하산이다.

 주인 아주머니는 아침으로 주문한 셀파스튜를 다 먹어갈 무렵 더 먹으라며 냄비째 가져와 비어가는 대접을 다시 가득 채워 주셨다.

 게다가 'good bye tea'라며 차를 주셨다.

 아침마다 커피를 한 잔씩 마신 나에게는 차대신 밀크 커피를 주셨다.

 고맙고 감사한 인연이다.

 

 '할 일'을 다 마치고 내려가는 발걸음은 가볍다.

덤으로 어제 독립봉 정상 가까이까지 오른 주엽이 양어깨에는 만족감이 가득 실려 있다.

2시간 이상을 걷도록 오가는 트레커들이 눈에 띄지 않는다.시즌이 거의 끝나가고 있는 것이다. 

 

 

 

돌레Dole까지는 계속 능선길이다.

뒤에서는 초오유가 따라오며 배웅하고 있다.

돌레에서 점심도 먹을 겸 잠시 쉬어간다.

 

오가는 트레커들이 거의 없으니 가는 마을마다'조용한 동네'다.

포르체텡가Phortse Tenga까지 6시간을 술렁술렁 내려왔다.

 

고교 숙소의 주인 아주머니가 남체까지 6시간 정도 걸린다고 해서 그 말을 믿었는데 앗차 싶다.

이곳에서 멍라Mong ra까지는 하늘 높은 줄모르는 오르막이고 남체는 그 곳에서도 2시간 이상을 가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동안 걷는 일에 탄력이 붙어서 멍라까지 큰 힘 들이지 않고 올라갔다.

30여분 앞서 걷던 캐나다 커플은 오르막이 꽤 힘들었던지 멍라에서 하룻밤 쉬어간단다.

 

 이제부터는 내려가는 일만 남았다.걸음이 조금씩 빨라지기 시작했다.

 

 구름떼가 하늘을 뒤덮고 있다.

 하지만 아마다블람과 캉테가(Kang tega,6685)의 뾰족 봉우리는 구름도 감히 어쩌지 못하고 있다.

 다행히 바람히 세지 않아 춥지는 않다.

 

7시간 이상을 걸었다.

평소같으면 하루를 마무리했을 테지만 내친걸음 남체까지 간다.

 

 마지막 한 두시간은 길다.하지만 다행히 아는 길이라 집이라도 찾아가는양 적이 안심이 된다.

날은 점점 어두워져가는데 멀리 에베레스트 국립공원 본부 건물이 보인다.다 왔다는 증거다.

 

가끔씩 오가는 현지인들이'도대체 어디에서부터 오는데 지금까지 걷고 있나..'하는 눈빛으로 쳐다본다.

하기사 저녁 6시가 다 되가도록 걷는 트레커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다왔다.

 

열하루동안의 쿰부트레킹을 무사히 마쳤다.

 

-<숙소>'나마스떼롯지'

 

 

 

<20일>,11월 28일,월요일

.남체(Namche)

 

오랜만에 느즈막이 일어났다.

눈을 뜬 후에도 주엽이랑 한참 수다를 떨었다.

 

오늘 해야할 일들 중 무엇보다 급한 것은 목욕을 하는 일이다.

데우랄리에서 머리를 감고 그 뒤로 한 번도 감지 않았으니 오늘이 열여드레째다.

며칠전부터 머리가 가려워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였다.머리카락 사이로 이들이 기어다니는 것만 같다.

온 몸도 가려워 미칠 지경이다.

 

뜨거운 물 샤워는 때만 잔뜩 불린 격이 되었지만 그래도 샴푸와 비누를 번갈아 써가며 머리를 감고 오랜만에 빗질도 했다.

뭐라 말할 수없을 정도로 개운하고 기분이 좋다.내친김에 반팔 셔츠도 빨았다.

물이 얼음장처럼 차가웠지만 쉰내가 나는 옷에서 냄새를 빼내고 몇 번 헹궈 널었다.

 

햇볕이 쨍하다.

쨍한 햇볕에 겉옷과 내복도 먼지를 털어내고 일광욕을 시켰다. 

그리고 아담하고 햇빛이 잘 드는 2층 식당에서 오랜만에 게으름을 피우며 해바라기를 했다.

 

오후엔 빌린 침낭을 반납했다.

 

오늘로 쿰부지역과도 작별이다.

 

내일부터 다시 걷는다.

 

 

 

<21일>,11월29일,화요일

.남체(Namche)~팍딩(Phakding)~무제(Muse),6시간 45분

 

가벼운 마음으로 내려간다.

국립공원 입구가 있는 몬주Monju까지는 내리막이 급하고 길다.이런 곳을 어찌 올라왔는가 싶다.

 

트레킹 중에 처음으로 좌판을 벌여놓은 할아버지를 만났다.

라면 몇 개,조그맣게 만든 땅콩 몇 봉지,사탕,콜라,당근에 귤 그리고 목걸이까지..

없는것은 없지만 있을 것은 다 있다.

할아버지에게 귤과 땅콩 한봉지,당근 두 개,사탕 다섯알을 샀다.

할아버지 표정을 보니 뜻하지 않은 큰 거래를 한 뿌듯한 표정이시다.

예기치않게 싱싱한 당근과 귤,땅콩까지 산 나도 신났다.

 

 체플링을 지나 조금 더 걸으면 무제Muse다.

지난 번에 갈 때 마을이 예뻐 눈여겨보아둔 곳이다.그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집에 짐을 풀었다.

 

한쪽에는 옥수수를 말리는 곳이 있고 나팔꽃이 활짝 피어 있고

마당 양쪽은 밭으로 일구어 양배추와 컬리플라워가 잘자라고 있고

한 켠에는 온실까지 있어 토마토가 영글어가고 있었다.

마당엔 초록색 칠을 한 긴 탁자와 벤치가 있다.탁자 위에 햇빛이 내리쬐고 있다.

 

손자 손녀와 함께 사시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주인이시다.

할아버지가 만들어주신 볶음밥도 일품이고,마당밭에서 막 따서 삶은 양배추와 밥도 아주 맛나다.

잠자리는 편안하고 따뜻했으며 정이 듬뿍 담긴 음식들은 한결같이 입맛을 돋구웠다.

사람의 정을 물씬 느낄 수있는,조용한 마을에서의 행복한 하루다.

 

-<숙소>'Danfe lodge'밥60루피,양배추30루피,커피20루피

 

 

 

<22일>,11월 30일,수요일

.무제(Muse)~파이야(Paiya)~붑사(Bupsa,2360),6시간 40분

 

 마치 트레킹이 끝나기라도 한 것처럼 늦잠을 잤다.오랜만에 아주 달디달게 잤다.

아침에 일어나서도 수다를 떨다가 8시가 넘어서야 아침을 주문했다.

다른 때같았으면 벌써 두어시간 이상을 걸었을 시간이다.

적당히 긴장감도 풀어지고 나른하기도 하고..

 

 할아버지께서 해주신 두툼한 티벳탄 빵과 컵가득 주신 커피를 마시고 여유있게 출발한다.

 

 수르케Surke까지는 내리막 그리고 다시 오르막.

 늦게 출발한 탓에 붑사에는 오후 4시가  되서야 도착했다.

 

 

 

 <23일>,12월 1일,목요일

 .붑사(Bupsa,2360)~눈탈라(Nuntala,2330),6시간

 

 숙소마다 느낌이 다르게 마련이지만,어제 머문 숙소는 겉에 비해 내실이라곤 없는 곳이다.

 마당엔 푸른 잔디가 깔려 있고 방도 햇빛이 잘 들었다.

 하지만 식당도 음식맛도 수준 미달이고 그런 곳이 꼭 그렇듯 음식값은 남부럽지 않게 비쌌다.물론 건성 친절이고.

 마음을 다하지 않으면 그대로 전달되게 마련.부자되기는 틀린 집이다.

 

 붑사에서 눈탈라까지 내리락 오르락을 반복했다.

 눈탈라에 왔을 때쯤 시간은 겨우 1시였지만 이곳에서 쉬어가기로 했다.

 

 전에 묵었던 숙소,게다가 같은 방이다.

트레커들이 거의 없고 시즌이 끝나가기 때문인지 지난 번보다 분위기가 더 썰렁하다.

그나마 가이드를 대동하고 고교를 향해 가고 있는 일본인 트레커와 한 숙소에서 묵게 되어 덜 을씨년스럽다.

 

오늘은 걷는 동안 겨우 2명의 트레커를 만났을 뿐이다.

 

-<숙소>'샹그릴라롯지'50루피

 

 

 

 <24일>,12월 2일,금요일

 .눈탈라(Nuntala,2330)~탁신드라(Taksindula,3071)~링무(Ringmu)~푸통(Phutong,3040)~준베시(Junbesi,2680),

  8시간 20분

 

 눈탈라를 벗어나자마자 오르막이다.탁신드라까지는 700미터 이상을 올려야한다.

 이 길을 내려올때 계속되는 내리막에 발이 앞으로 쏠려 발가락들이 아우성치고 무릎에 신경이 쓰였던 기억이 새롭다.

 그때 이 길을 오르는 사람들은 얼마나 힘들까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그리 힘들지 않다.

 더구나 발가락과 무릎에 덜 무리가 가서 오히려 편하기까지 하다.

 

 눈탈라를 지난지 얼마 되지 않아 한 무리의 마오들을 만났다.

 처음에는 껄렁하게 사복을 입은 군인들인가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열살을 갓 넘긴 듯한 아이도 두어명 있었고 여자도 서너명이나 되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굳은 표정에 총을 들고 있다.

거의가 사복을 입고 있고 두세명만 군복차림이다.

 

 저 아이들이 혁명을 꿈꾸는 사람들인가..

 그들의 뜻이 얼마나 결연한가는 알 수없어도 행색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반란을 꿈꾸고 혁명을 꿈꾸게 하는 나라,로얄 네팔. 

 썩을대로 썩은 왕정에 백성들의 삶은 피폐하기만하다.

 

 외국의 원조는 중간에 누군가의 주머니 속으로 사라지고,10년전 비포장도로였던 곳은 10년이 지난 후에도 여전하고,

 허리가 휘고 어깨가 으스러지도록 등짐을 져야만 입에 겨우 풀칠을 할 수있는 민초들은 반란을 꿈꾼다.

 

 아버지의 삶이 아들, 딸의 삶으로 고스란히 대물림대는 굴레.

 세대가 바뀌어도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는 절망.

 

 초라한 혁명분자 대열을 보는 나는 착잡하다.

 등짐을 내팽개치고,밭갈이를 하다말고,학교에 가다 말고 온 것만 같은 어른들과 아이들.

 

 그들이 꿈꾸는 삶은 언제쯤 이루어질 것인가.

 

 그들을 향해 어색하게 건넨 인사는 대답없는 메아리가 되어 돌아왔다.

 그들의 굳게 다문 입과 얼굴 표정이 아직은 정답게 인사를 나눌 때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듯하다.

 

-<숙소>'준베시 게스트하우스'

 

 

 

<25일>,12월 3일,토요일

.준베시(Junbesi,2680)~람주라(Lamjula,3530)~쎄테(Sete)~킨자(Kinja,1630),9시간

 

 아침 7시.

 같은 숙소에 묵은 독-슬 커플은 어제가 여행떠난지 15개월 되는 날이라며

 우리네 소주에 해당하는, 현지인들이 즐겨마시는 술인 락시와 사과와인을 몇 잔 마시며 축배를 들더니

 오늘 아침에 출발할 생각을 않고 있다.

 

시작부터 바람이 거세다.

바람을 안고 2시간동안 걸었다.

 

 오르막.

 잡념을 털어내고 걷는 일에 정신을 집중한다.

 

 

 

 도중에 마춤한 식당에서 그동안 갖고 다니던,아끼고 아끼던 신라면을 끓였다.

 그리고 밥도 주문하고 오믈렛도 시켰다.금세 풍성항 식탁이 차려졌다.

 매콤한 신라면 국물을 들이켜니 입안이 얼큰하고 생기가 돈다.

 

 라면 먹은 힘으로 고개까지 2시간을 올라갔다.

 오전에만 850미터를 올렸다.

 

인생사처럼 오르막 내리막의 연속이다.

올라왔으니 다시 내려갈 차례다.

 

쎄테에 와서 전에 묵었던 롯지에 왔다.

주인은 없었지만 마치 집에라도 온양 멀끔히 세수하고 빨랫줄에 옷을 말리고 

아래 들판이 잘 내려다보이는 양지 바른 곳에 앉았다.

 

지난 번에 왔을 때 보았던 아낙이 밭을 갈아엎고 있다.

밭 한 켠에는 서너살쯤 되어보이는 아낙의 딸과 채 돌도 안지났을 법한 아들이 놀고 있다.

내리쬐는 강한 햇볕을 밭일하는 엄마와 그녀의 아이들이 고스란히 받고 있다.

따갑다.

 

그녀의 노동은 고되다.

밭일하는 어미곁에서 어미만 바라보고 있는 아이들도 힘들다.

더위탓인지 동생이 앙~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한동안 모른체하고 일만 하고 있던 어미가 더이상 안되겠던지 밭일을 중단하고 울고있는 아기곁으로 간다.

아기를 안으며 동시에 동생을 잘 돌보지 못하고 울렸다는듯 애꿎은 딸내미를 찰싹 때렸다.

엄마에게 억울하게 맞은 큰아이도 울음을 터뜨린다.

서럽다.

그러면서도 어미옆에  바짝 붙어 있다.

어미는 아기에게 젖을 먹인다.

 

 내 어렸을 적처럼 바가지 머리를 한 계집 아이.

 

 아득한 기억속,내가 저 아이만큼이나 어렸을때 어머니는 배추를 한 광주리 이고 장으로 팔러 가셨다.

 그 때 나는 엄마 옷자락을 잡고 놓지 않았다.

 엄마는 금방 올테니 동생 잘보고 있으라며 걸음을 재촉했지만 나는 엄마와 떨어지는 것이 싫고 무서웠다.

 

 그 때 그 아이가 지금 이렇게 커서 히말라야 자락에서 또 다른 나를 만난다.

 

-<숙소>'sonam lodge'안주인의 맑은 음식과 정갈한 음식,아늑한 방

 

 

 

<26일>,12월 4일,일요일

.킨자(Kinja,1630)~반다르(Bhandar)~데우랄리(Deurali,2710),6시간

 

어제처럼 그녀가 해준 아침식사도 정갈하다.

고교의 인심좋은 아주머니처럼 그녀도 주문한 셀파스튜 한그릇을 다 비울 때쯤 냄비채 가져와 다시 한그릇 가득 채워주었다.

머그잔 가득 가져온 커피맛도 일품이다.

 

그녀는 어제 묵은 <소남롯지>의 안주인이다.

윤기  흐르는 긴 머리를 단정하게 한갈래로 땋고 6개월된 아기를 요람에 태워 끈을 매어 머리에 두르고서

서두르는 기색도없이 주문한 음식을 척척 만들었다.그런 이가 해준 음식과 정다운 미소는

 여행자의 몸과 마음에 휴식과 에너지를 가득 채워준다.

자고 나면 걷는 것이 일인 트레커들에게, 밥 많이 먹으면 배아프다며 달밧 리필을 해주지 않는

얄팍한 숙소 주인의 심성과는 하늘과 땅차이다.

 

지난번에는 목마르고 지루하고 힘든 길이었는데 오늘 다시 걸으니 킨자에서 오르막이 시작되는

다리까지는 걷기 좋고 상쾌한 오솔길이다.

 

운좋게 다리옆에서 오렌지를 파는 할머니를 만나 큼지막하고 신선한 오렌지를 열 개 샀다.

가방 가득 오렌지를 담고서 할머니는 어린 손녀를 데리고 어디론가 팔러 가는 길이었다.

뜻밖에 신선한 오렌지를 사게 된 나는 신이 나서 그 자리에서 세 개나 까먹었다.

입안에서 오렌지 알갱이가 톡톡 터진다. 

 

 

 

 반다르Bhandar로 가는 길.

 지난번에 보았던, 활짝 피었던 꽃들은 거의 다 지고 유채꽃도 사그라들고 있다.

 달이 바뀌고 계절이 변하고 있는 것이다.

 

데우랄리까지 오는 동안 한 명의 트레커도 만나지 못했다.

데우랄리에서는 전에 묵었던 숙소 맞은편 숙소에 묵었다.

 

우연히 그 곳에서 한 무리의 마오를 만났다.

자세히보니 그 중에 지난 번 킨자에서 강제 기부금을 징수했던 마오도 있었다.

그들은 아랫마을에서 물자보급을 하고 오는 지 각자 한보따리의 짐이 있었다.

밥을 해먹기 위해 이곳에 잠시 들른 것같았다.

 

그들은 우리를 유심히 관찰하였고 사태가 심상치않다고 여긴 우리도 그들의 행동을 주시했다.

돈을 걷어간 마오도 안보는척 힐끔거렸다.

 

그 중 대장인듯한 여자가 무전기를 들고 다른 사람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적당한 키에 안경을 끼고 말투에 힘이 실려 있는 그녀는, 우리나라의 운동권 여성을 연상시켰다.

혁명이 완성되는 그 날까지 그들은 목숨과 신념을 담보로 '가열찬 투쟁'을 계속할 것이다.

하지만 마오이즘의 원조국가에서조차 폐기되어버린 낡은 이념을 목숨처럼 끌어안고 있는 그들에게 혁명은 멀게만 느껴진다.

 

 

 

<27일>,12월 5일,월요일

.데우랄리(Deurali,2710)~시발라야(Shivalaya,1770)~말리(Mali,2220), 6시간

 다행히 밤새 춥지는 않았다.

 오늘은 지리에 도착하는 날이며 트레킹 마지막 날이기도 하다.

 내일이면 카트만두에 가서 김치찌개며 밥을 먹을 수있다는 생각에 절로 발걸음이 빨라졌다.

 

그런데 시발라야를 지나자 컨디션이 급격히 악화되었다.

갑자기 머리가 어지럽고 구토를 하고 다리에는 힘이 하나도 없다.

배까지 요동을 치면서 몇 걸음 걷지도 않았는데 식은 땀이 흘렀다.

조금전까지만해도 쌩쌩하게 걷다가 갑자기 몸상태가 급격히 악화되니 황당하다.

설사기운까지 있어 급한 마음에 보리가 막 싹을 틔우는 보리밭으로 가서 실례를 하였다.

 

몇걸음 걷다 다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다시 설사.

 

간신히 몇걸음 걸어 간이 찻집에 있는 긴 의자에 누웠다.

마음은 지리를 향해 달려가는데 몸이 따라주지를 않는다.

하는 수없이 말리에서 하룻밤 쉬어가기로 했다.

생전 트레커가 묵었을 것같지 않은,햇빛도 들지않는 방에 짐을 풀었다.

 

지리를 지척에 두고 이런 곳에서 하룻밤을 묵을 줄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세상사 뜻같지 않다.

 

평상에 누워있는데 독-슬 커플이 온다.반달에서 오는 길이란다.

여자는 지친 기색이 역력하면서도 카트만두에 가서 커다란 피자와 파스타를 먹을 생각에 들떠 있다.

우리보다 이틀 먼저 트레킹을 시작한 그들은 오늘이 4주째라며 돈이 없다면서도 맥주 한 병을 비웠다.

 

그렇게 그들은 가고 우리는 남았다.

 

 

 

 <28일>,12월 6일,화요일

 .말리(Mali,2220)~지리(Jiri,1955),2시간 30분

 

 일찍 깼다.

 엊저녁 여섯시 넘어 도착한 현지인 손님들이 아침 일찍 떠나는지 새벽부터 부산했다.

 다행히 어제보다는 한결 몸상태가 좋다.

 

가벼운 마음으로 지리로 향한다.

밤새 서리가 내려 밭과 땅에 하얗게 깔렸다.

 

춥다.

추울때는 빨리 걷는 것이 최고다.

 

오늘은 지리로 그리고 내일은 카트만두로 그리고 <소풍>으로..

 

그래,가자,가자,

어서 가자꾸나..

 

주엽이도 카트만두에 가면 한국식당에 적어도 세 번은 가잔다.

와,세 번이다 세 번.

갈 때마다 무엇을 먹을까.

우선은 김치찌개,다음은 삼계탕 그리고..... 

생각만해도 날아갈 것같다.

 

무엇보다 깨끗하게 목욕하고 머리도 감고

몇번이고 헹궈 바짝 말린 뽀송한 옷으로 갈아 입고 날아갈 듯 잠자리에 들겠구나.

오늘만 지나면..

 

 

한달여만에시작점인 지리로 돌아왔다.

맘속엔 행복이 넘실대건만 어제 종일 몸고생을 한 덕에 얼굴은 핼쑥하다.

<숙소>'사가르마타 롯지'

 ..

 

<29일>,12월 7일,수요일

.지리(Jiri,1955)~카트만두(Kathmandu),8시간(버스),320루피

 

 어제 예매한 카트만두행 버스는 그 이름도 거창한 'Super Express'.

 지난번 카트만두에서 올 때 탄 버스는 'Expess였다.

 

차는 정각 6시에 출발했다.

출발할 때만해도 사방이 어스름했는데 지리가 한눈에 보이는 능선에 올라서니 여명이 밝아온다.

 

올 때와 마찬가지로 현지인 승객들은 검문소가 나올 때마다 내려서 신분과 짐을 검사받고 올라타기를 반복한다.

마오들을 색출하기 위해서라지만 그 때문에 시간은 한없이 지체되고 이름에 걸맞게 오르막에서 속력을 내던 버스도

한숨을 쉬며 멈추기를 반복했다.

 

 차를 탈 때부터 속이 울렁거리고 심상치않더니 쌩쌩 굽이길을 휘도는 바람에 속이 있는대로 휘둘린다.

 우웩~우웨웩~

 멀미를 막아볼 심산으로 아침삼아 먹은 짜이와 비스킷,귤과 콜라 ,땅콩이 뒤범벅이 되어 마구 넘어온다.

 올 때도 이 길로 왔는가싶게 차는 굽이굽이 돌고 돈다.

 

 카트만두 시내에 들어와서도 터미널이 얼마남지 않은 곳에서 또다시 속엣것들은 다  게워냈다.

 더이상 넘어올 것이 없는지 신물만 넘어왔다.

한 달간의 히말라야 트레킹을 마치고 속세로 오는 신고식을 단단히 치룬다.

 

Super Express는 처음에 의욕을 보이던 것과는 달리 이름값을 하지 못하고 8시간만에 간신히 카트만두에 도착했다.

11월 9일 출발한 트레킹이 끝나는 순간이다.

 

우리는 하이 파이브를 하고 서로에게 축하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소풍으로 직행했다.

김치찌개와 따끈따끈하고 윤기가 흐르는 밥과 김치,삼계탕이 있는 곳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