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트레킹

안나푸르나트레킹2004

나는 걷는다 2006. 6. 11. 11:40

 

<안나푸르나 서킷~푼힐~ABC- 2004>      

    

*일정: 2004.04.15~2004.05.11(28일)

 

*여정:쿠디~안나푸르나 서킷~푼힐~ABC~사랑콧~포카라

 

*준비물: 침낭,(방수.방풍용)재킷,방한내의,장갑, 겨울모자,지도,비상식량(비타민가루,견과류,미숫가루,분말우유,커피..),물통,

              슬리퍼(숙소에서 요긴하다),선크림,선글래스,비상약(감기약,연고,고소약..)

 

*여정:

 .1일: 카트만두~베시사하르:7시간(버스),145루피

        베시사하르~쿠디(Khudi,790),30분, 25루피

.2일: 쿠디~Syanje(1100),7시간

.3일: Syanje~탈(Tal,1700),7시간

.4일: 탈~차메(Chame,2670),9시간 30분

.5일: 차메~피상(Pisang,3200),6시간 30분

.6일: 피상~마낭(Manang,3540)7시간

.7일: 마낭~빙하(3800)&강가푸르나호수~마낭,3시간

.8일: 마낭~레더(Letdar,4200),5시간

.9일:  레더~하이캠프(High Camp,4760),3시간 30분

.10일: 하이캠프~토롱라(Thorung la,5416) ~묵티나트(Muktinath,3800),6시간 30분

.11일: 묵티나트~마르파(Marpha,2670),8시간 15분

.12일: 마르파

.13일: 마르파

.14일: 마르파~가샤(Ghasa,2010),7시간 30분

.15일: 가샤~따또빠니(Tatorani,1190),6시간 30분

.16일: 따또빠니

.17일: 따또빠니~고라빠니(Gorapani,2750),8시간

.18일: 고라빠니~푼힐(Poon hill,3193) ~타다빠니(Tadapani,2590),5시간 30분

.19일: 타다빠니~촘롱(Chhomrong,2170),4시간

.20일: 촘롱

.21일: 촘롱~데우랄리(Deurali,3150),7시간

.22일: 데우랄리~MBC(마차푸차레베이스캠프,3700)~ABC(4130)~뱀부(Bamboo,2190),10 시간 

.23일: 뱀부~촘롱(Chhmrong,2170),5시간

.24일: 촘롱~란드룩(Landruk,1565),5시간

.25일:란드룩~담푸스(Dhampus,1650),5시간

.26일:담푸스~사랑콧(Sarangkot,1592),6시간 30분

.27일:사랑콧~포카라(Pokhara,820),

*서킷(베시사하르~토롱라~좀솜~푼힐~나야풀)...211km

 

 

 

<떠나기 전 날> 4월14일, 수요일

 

 한 달동안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떠날 준비를 한다.

 막상 떠나려니 마음이 분주하다.

 퍼밋을 받고(2000루피),방풍재킷과 지도,비상식량으로 분말우유와 사탕도 한 봉지 샀다.

 하루에 여러 가지 일을 하자니 분주하고 길다.

 수학여행 가기 전날같다.

 

 내일 비가 오지 말아야할텐데..

 

 

 

<1일> 4월15일, 목요일

.카트만두~베시사하르~쿠디(Khudi,790),7시간30분

 카트만투~베시사하르: 7시간,145루피

 베시사하르~쿠디: 30분,25루피

 

 기대를 저버리고 쿠디행 버스를 타자마자 비가 내린다.

 베시사하르는 꽤 큰 곳으로 있을만한 것은 전부 있다.비상식량정도는 이곳에서 구입해도 충분하다.

 깨끗한 숙소도 여러 곳있어 묵어갈까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내일을 위해 가능한한 예정 목적지인 쿠디까지 가기로 했다.쿠디는 버스로 30분거리다.

 

 쿠디는  버스가 갈 수있는 마지막 지점이기도 해서 쿠디에 도착하자 모든 승객들이 내렸다.

 트레커는 서양 여행자 한팀과 우리뿐이고 다른 승객들은 윗마을에 사는 현지인들이다.

 현지인을 따라 길을 나섰다.빗발이 굵어졌다 가늘어졌다한다.

 

 숙소라곤 단 두곳밖에 없다.

굵어지는 빗발에 아랑곳하지 않고 현지인들은 발길을 재촉하는데

우리는 얼마를 가야 다른 숙소를 만날 지 알 수없고

점점 세차게 내리는 빗 속을 뚫고 가기도 부담스러워 이 곳에서 하룻밤 묵기로 했다.

얼기설기 나무판자를 댄, 방이랄 것도 없는 방은 간신히 바람막이 역할만 하고 있다.

옆방에 묵은 캐나다커플이 내는 작은 소근거림이나 부스럭거리는 소리까지 선명하게 들린다.

 

어설프기 짝이 없는 방에 잠자리를 만들고 있자니 트레킹을 시작했구나 실감난다.

무엇보다 트레킹중임을 실감나게 한 것은 숙소에 딸린 식당에 갔을 때다.

네팔에서는 트레킹을 할 때 묵는 숙소에서 저녁을 먹어야하는 것이 불문율처럼 되어 있다.

밥값은 시내보다 적어도 서너배이상 비싸고 고도가 높아질수록 밥값도 치솟는다.

그래서 숙소 주인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트레커들을 묵게 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아무리 그렇다지만 첫날부터 달밧이 100루피라니 너무하다.시내에서라면 40루피 정도면 먹을 수있는데 말이다.

버스가 들어오는 마을인데 단지 안나푸르나 국립공원안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턱없이 높게 가격을 정해놓은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 사정이다. 지금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

캐나다커플도 메뉴판에 적힌 가격을 보고  적잖이 놀란 눈치다.

하는 수없이 주엽이는 달밧을,나는 라면을 시켰다.

맛이나 좋으면 좋으련만 이래저래 먹는둥마는둥이다. 

 

  산에서의 첫날밤이다.

 '잘~자고 아침에 상쾌하게 일어나야지..'

 

 .숙소..'기본적인 아주 기본적인'40/dbl, 달밧100루피, 라면 55루피

 

 

 

<2일> 4월16일, 금요일

.쿠디(Khudi,790)~샹제Syanje(1100), 18km, 7시간 

 

 아침 6시 20분에 출발한다.

15분쯤이나 걸었을까..깨끗해보이는 숙소들이 나타나고 어젯밤 이 곳에 묵은 트레커들이 출발준비를 하느라 분주하다.

조금만 걸으면  이런 곳이 있는줄 알았더라면 어제와 같은 그런 엉터리 숙소에서는 안잤을텐데..

하지만 우리는 가이드가 없고 갖고 있는 안나푸르나 트레킹 지도에는 그런 시시콜콜한 설명은 없다.

툴툴거리는 나에게 주엽이는 잠잘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라며 일침을 놓는다.

이럴 때 주엽이는 어른같고 나는 히말라야 트레킹까지 와서 깨끗한 숙소타령이나 하는 한심한 인간이 된다.

 

본격적인 트레킹 첫날이라 무리하지않고 천천히 걷는다.그러면서 몸의 리듬을 살려내려 애쓴다.

무엇보다 수분보충을 위해 수시로 물을 마셨다.미네럴워터를 사는 대신 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마셨다.

현지인들이 식수로 사용하는 물이지만 마셔보니 속이 약간 이상하고 설사기운이 있다.

미네랄워터는 1리터에 60루피다.

 

 비싼 음식값때문에 점심으로 비상식을 먹었다.

 삶은 계란 3개,사탕,비스킷 두 개,짜이 한 잔.대신 저녁은 숙소 식당에서 양껏 먹었다.

 첫날치고는 예정보다 많이 걸었다.

 

 아직은 고도가 높지 않고 길도 편해서 걷는데 별 무리가 없다.

 이곳에서도 사람들이 마을을 이루고 밭농사를 짓고 말과 소를 키우며 살고 있다.

 

 아이들이 천진하게 웃으며 인사한다.

 "나마스떼"

 나도 아이들에게 화답한다.

 "나마스떼"

 

-<숙소>40루피,달밧130루피,라면60루피

 

 

 

<3일> 4월17일, 토요일

.샹제(Syanje,1100)~자갓(Jagat,1300)~차메(Chame,1430)~탈(Tal,1700),11km,7시간

 

.샹제~자갓: 1사간 30분내외, 급경사. Syanje에서 15분쯤 올라가면 깨끗해보이는 숙소가 여러 곳 있다.

            자갓에도 숙소가 여러 개 밀집돼 있다.

.자갓~차메: 2시간. 자갓보다 작은 규모.숙소 여러 곳 

.차메~ 탈: 2~3시간. 탈은 계곡에 비교적 넓게 자리잡은 티벳탄 마을.

                   탈 입구에 처음으로 체크포스트check post가 있다.  

    


 5시 30분에 일어나 6시 출발

숙소주인이 아침을 먹고 떠나지 않는 것에 불만을 나타낸다.

하지만 트레킹중에 묵는 숙소에서 저녁을 먹는 것은 예의이자 불문률이지만 아침은 트레커 마음이다.

이 시간에는 차 한잔으로 족하다.

 

어제와 달리 경사가 급하다. 다행히 어제 동네 꼬마에게서 산 나무지팡이가 큰 힘이 된다.

아침과 점심으로 사탕 3개,짜이 반 잔,과자 한 봉지,계란 3개 반을 먹고 수시로 물을 마셨다.

끓인물을 1리터에 10루피 주고 샀다.

 

 오늘은 걷는 동안 트레커를 딱 한 명 보았다.

그리고 어깨가 휘도록 짐을 지고 운반하는 포터들을 간간이 마주쳤다.

녹록치않은 삶이다.

 

사람들이 험한 산에 계단식 논을 일구고,집을 짓고 마을을 이루고 살고 있다.

 

 

탈Tal에 도착해서 숙소를 정하고 샤워하고나니 비가 쏟아진다.

삼면이 유리창인 2층짜리 숙소다. 그제와 어제에 비하면 일취월장이다.

그 사이 기온이 급격히 떨어진걸 실감한다. 게다가 비까지 몇시간째 퍼붓고 천둥번개까지 친다.

얼마를 더 오려는지 하늘은 잔뜩 찌푸려있고 먹장구름도 낮게 깔려있다.

 

탈에서는 몇몇 트레커들이 보였다.

체크포스터에서 확인해보니 오늘만 40여명의 트레커가 지나갔다.

한 숨 돌리고 쉬어가기 좋은 곳이다.

날씨만 좋으면 동네한바퀴하고 싶다.

 

 


 

<4일> 4월18일,일요일

 .탈(Tal,1700)~다나규(Danague,2300)~차메(Chame,2670), 22km, 9시간 30분 

 .탈~다라파니(Darapani,1860)~다나규: 5시간.탈에서 다나규까지는 평이한 길이다. 다라파니에 check post., 깨끗해보이는 숙소도  

 .다나규~티망베시~라타마랑~차메  4시간 30분

 

                  

 어제 오후내내 내리던 비가 개었다.

 출발이다.

 바람이 많이 불어서 새로 산 재킷을 꺼내입었다.

 네팔산 '노스패이스'.

 둘이 나란히 입고 보니 커플룩이다.

 

마을을 벗어나자 경사가 급한 오르막이다.

 

그저께부터 만났던, 허리가 휘도록 등에 가득 짐을 실은, 부부인듯한 그들을 오늘도 만났다.

어제는 우리보다 5시간이나 늦게 비를 흠뻑 맞으며 맞은편 허름한 숙소에 드는걸 봤는데..

 

 얼마를 갔을까..

 조금 뒤에서 걸어오던 주엽이가 부른다.

 

"왜?'

"우리 길 잘못든 것같아."

'오잉~뭐라구??'

 

헉헉대며 올라온 급경사길을 다시 내려갔다.

 

어제에 비해 길은 비교적 순탄하다.

오늘의 예정 목적지인 다나규danague에 도착하니 겨우 11시 10분.

그 새 5시간을 걸었다.하지만 아직 시간이 일러서 조금 더 걷기로했다.

 

어설픈 집 몇 채씩있는 티망베시와 라타마랑을 지나자 계속 오르막이다. 게다가 빗방울까지 떨어진다.

출발한지 7시간정도 지났다. 급격히 체력이 떨어진다. 마땅한 숙소가 없어 조금 더 걸었다.

오르막 경사가 급할수록 몇 걸음 못가 숨을 몰아쉬었다.

기온이 떨어지면서 체감온도도 급격히 떨어졌다.

 

차메Chame 에 다다르니 입구에 체크포스트가 있다.

3시 40분

차메는 꽤 규모있는 마을이다.

 

숙소 주인은 티벳탄 가족이고 아들 둘은 한국에서 일하고 있어서 한국에서 온 손님들이 낯설게 여겨지지 않나보다.

그들이 내온 음식에서 정성이 느껴진다.

아들들이 낯선 땅 한국에서 잘지내기를 바라는 마음이 정성스럽게 차려진 음식에 가득 담겨있다.

 

이 마을에는 한국으로 돈벌러 간 사람들이 꽤 있다.

한국에서 만났던 네팔 친구들이 생각나고

이 집 아들들도 돈 많이 벌어서 무사히 가족품으로 왔으면 하는 바램이 간절하다.

 

첫날 만났던 캐나다 커플을 다시 만났다.

그들 역시 가이드와 짐꾼없이 트레킹을 시작했는데 남자의 컨디션이 안좋아

짐꾼 한 명을 고용해 무거운 배낭을 맡기고 룰루랄라다.

 

마낭쪽에서 내려오는 서양 여자 여행자도 만났다.

 

나:    라운딩 끝내고 내려오는 길이야?

그녀: 아니,마낭에서 고소가 심해서 그냥 내려오는 중이야.

나: ......

 

 

 

 <5일> 4월19일,월요일

 .차메(Chame,2670)~피상(Pisang,3200),19km, 6시간 30분

 

 엊저녁 감기 기운이 있어 약을 먹고 잤지만 별 차도가 없다. 바람도 어제보다 거세다.

 얼마를 올라갔을까..

 

쨍~!!

설산이다.

하얀 천을 봉우리에 살짝 씌운듯 눈부신 백설의 산이 살짝 모습을 드러낸다.

 

천천히,천천히 걷는다.

걷기반 쉬기반이다.

 

 

 

 

 3000미터를 넘어섰지만 무리하지 않아서인지 피곤하지 않다. 하지만 약간 고소증세가 있다.

조금 빠르게 움직이거나 계단을 오르내리면 숨이 찬다.

모든 것을 '느리게 느리게'해야 한다.

 

-<숙소> 20루피, 달밧 170루피, 라면 75루피, 삶은감자 60루피

  오늘은 계란을 만나지 못했다. 아침에 숙소에서 삶아온 감자가 주식이다. 

 

 

 

<6일> 4월 20일, 화요일

.피상(Pasang,3200)~마낭(Manang,3540),15km, 7시간

 

 마을을 막 벗어나자 안나푸르나2봉이 위용을 드러낸다.

 감탄을 연발하며 사진기를 계속 눌러댄다.

 

 점점 추워져 방풍재킷 속에 내피를 입었지만 몸은 으슬거리고 손은 시렵다.

 

 걸을 때마다  설산이 다른 풍경으로 다가온다.

 비교적 평이한 길을 따라 숨고르기를 하며 천천히 걷는다.

 

인심좋은 주인 아저씨가 한 잔 가득 따라준 짜이와 삶은 감자로 아침을 먹어 든든하다.

이제까지와는 달리 드문드문 트레커들이 보였다.

 

 천천히, 천천히 걷는다.

 

 

 

 마낭이 가까워올수록 풍경은 라닥을 닮아간다.

 건조하고 황량하다. 곰파며 사하촌, 집집마다 휘날리는 기도깃발......

 황량한 아름다움에 넋을 잃는다.

 

 마낭은 이제까지 지나온 마을들 중에서 규모가 꽤 크다.

 큰 숙소들도 여럿 있고 긴급구조센터며 안내소,전화국등의 편의시설이 있다.

 대개의 트레커들은 토롱라를 넘기 전에 3540미터인 이곳에서 체력을 보충하고 고소에 적응하면서 이틀정도를 보낸다.

 그래서인지  서양트레커들의 구미에 맞는, 제법 그럴 듯한 빵집들도 여럿 있다.

 

 여기까지 잘 왔다. 토롱라를 넘기 위한 베이스캠프인 마낭.

 이곳에 있는 동안 잘 먹고 잘 적응해서 넘어가자꾸나. 

   

 

 

  <7일> 4월 21일, 수요일

 .마낭(Manang,3540)~강가푸르나 레이크(Gangapurna lake,3800)~마낭, 3시간 

 

 고소적응을 위해 하루 쉬어간다.

 5시가 조금 넘었을 뿐인데 밖이 훤하다.

 창밖으로 보이는 안나푸르나 2봉도 밤새 잘자고 아침을 맞고 있다.

 

 고소에 적응할겸 천천히 3800미터에 있는 빙하와 강가푸르나 호수에 다녀왔다.

 빙하가 녹아서 만들어진 비취빛 호수...

 

 

.달밧100루피(현지인식당)/180루피(숙소식당),짜이15루피/25루피, 라면60루피/70루피..

.마낭~틸리초베이스캠프(tbc,4200),1박하고 틸리초 호수(4919m)에 다녀올 수있다.

 

 

 

 

 <8일> 4월 22일, 목요일

.마낭(Manang,3540)~레따르(Letdar,4200),10km, 5시간 

 

현지인 식당인 <부처님식당>에서 네팔라면에 진라면 스프를 넣어 끓였다.

 

여행떠나기 전에 언니가 라면 스프 몇 개를 챙겨주었다.

한국 음식이 그리울때 뜨거운 물에 타 먹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트레킹중에 이렇게 요긴하게 쓰일 줄은 미처 몰랐다.

그동안 아껴두었던 마지막 스프다. 오늘 하루 걸어갈 에너지원이기도하다.

 

마을을 벗어나기까지를 제외하고는 걷기 좋은 산책길이다.

20~30분마다 삶은 감자를 까먹으며 룰루랄라다.

도중에 작은 가게에서 삶은 계란 9개를 샀다.

 

어느때보다도 즐겁고 빠르게 레더Ledar에 도착했다.

도중에 한국인 두 분을 만났다.

한 분은 여행작가이고, 다른 한 분은 체구가 조금 작지만 단단해보이는 목사님이시다.

 

 이곳에서 샤워는 작은 양동이에 데운 물 하나로 둘이 해야한다.

 그렇게라도 대충이나마 땀을 닦아낼 수있어서 다행이다.

 너무 추워 땀냄새가 진동하는데도 자꾸 침낭 속으로 들어가게 되지만 말이다.

 

 오는 길에 3000미터 이상에서만 사는 야크를 처음 보았다.

 

 

 

<9일> 4월 23일 금요일

.레따르(Letdar,4200)~토롱페디(Throng pedi,4450)~하이캠프(Hih camp,4760),7km, 3시간

 

아침에 밖으로 나오니 온세상이 하얗다. 그것도 모자라 싸락눈이 내리고 있다.

언제부터 내리기 시작했는지 제법 많이 쌓여 있다.

아직 갈 길이  먼데..

 

하지만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여한이 없다.

히말라야에서 눈세상을 만난 것이다.

 

아침을 든든히 먹고 평소보다 조금 늦게 출발했다.

천천히, 천천히 걷는다.

 

같은 숙소에 묵은 영국커플과 캐나다 커플이 동행이다.

목사님은 새벽에 떠났다고 했다.

앞서 걷는 이들이 희미하게 보인다.

 

페디pedi까지 2시간만에 왔다.

눈은 그칠줄 모른다.

 

캐나다커플과 영국커플은 이곳에 방을 잡았다.

하이캠프까지 가려는 우리는 차를 마시며 하늘이 개기를 기다린다.

오늘 하이캠프high camp까지 가는 것이 내일 토롱라를 넘는데 아무래도 수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시간이 지나도 상황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눈발이 더 굵어졌다.

 

페디에 눌러앉고 싶은 마음을 다잡으며 더 늦기 전에 길을 나섰다.

하이캠프까지는 적어도 한시간 삼십분쯤 가파른 길을 올라가야 한다.

 

내일 걸어야할 길의 부담을 줄이려면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지금 가는 것이 낫다.

 



 

 

 길은 가파르고 가도가도 오르막이다.

 고도가 4500미터가 넘자 숨이 더욱 가빠져 몇 발짝 뗄 때마다 숨고르기를 한다.

 체력이 서서히 바닥을 보이지만 그래도 가야 한다.

 눈은 그칠줄 모르고 바람까지 거셌다.

 한시간 가까이 걸었지만 쉴 곳이 마땅치 않아 쉼없이 걸었다.

 

앞서간 이들의 발자국이 눈에 살짝 가려졌다 나타나곤 한다.

눈덮인 길을 앞사람의 발자국을 나침반삼아 걷고 있는데말이다.

몇발짝 앞서 걷던 주엽이가 잠시 길을 헷갈려한다.

둘다 초행길에 가이드도 없고 길은 있다가 없다가 한다.

눈은 여전히 하염없이 내리고..

 

 조금 더 걸으니 집이 보인다.

'여기가 어디지?'

 앗! 우리의 목적지인 하이캠프다. 

 

하얀 눈사람이 되어 숙소 식당에 들어갔더니 안에 있던 이들이 이 눈 속을 뜷고 왔냐는듯 박수를 쳤다.

 

 

 

 <10일> 4월 24일, 토요일

.하이캠프(High camp,4760)~토롱라(Thorung La,5416)~묵티나트(Muktinath,3800),14km, 6시간 30분

 

밤새 이런저런 생각에 뒤척이다 깼다.

주엽이가 두통을 호소했다. 고소다.

게다가 너무 춥다.

 

5시20분.

밖에 나가보니 눈이 소복이 쌓였다.

 

가이드와 포터 세 명을 데리고 트레킹중인 프랑스 노부부와 한국인 트레커 두 분은 이미 떠나고

다른 이들도 아침식사를 주문하고 출발을 기다리고 있다.

그렇담 우리도 서둘러 가야 한다.

눈길을 염려하는 나에게 다른 팀의 가이드는 눈이 쌓이긴 했어도 앞사람들이 길을 냈으니 갈 수있을 거라 한다. 

주엽이의 몸상태가 좋지 않다. 

눈은 걱정했던대로 밤새 더 쌓여 발목까지 올라왔다.

 

하늘은 갤 듯 한 켠에 파란색을 내보인다.

하지만 구름이 훨씬 두텁고 넓게 파란 하늘을 가리고 있다.

다시 눈이 내린다.

고도가 5000미터가 넘어가자 더욱 숨이 가빠왔다. 한 발 한 발 떼는데 있는 힘을 다한다.

 

도저히 걸어서 넘을 자신이 없는지 두 명의 트레커가 말을 타고 토롱라로 향했다.

 

한걸음이 두걸음이 되고 두걸음이 세걸음이 되어 마침내 토롱라에 도착했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고개에 매일 7시간씩 걸어서 열흘만에 왔다.

쉽지 않은 길이지만 꼭 와보고 싶은 곳에 내 힘으로 왔다.

서로에게 축하 인사를 나누고 누군가 가져온 럼주를 돌려마시며 축배를 들었다.

 

주엽이가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고개에서 생일을 맞았다.


 

 

 

이제는 내리막이다.

눈은 여전히 내리고 사방은 7000미터가 넘는 설산이다.

구름은 더 낮게 내려앉아 뒤에 오는 이가 보이지 않는다.

 

신들의 나라에 온 것같다.

신들만 사는 나라에 길잃은 나그네가 우연히 찾아온 것만 같다.

 

 

 

 

세상에 이런 곳도 있구나.

그곳에 내가 있구나..

 

 

 

 <11일> 4월 25일, 일요일

.묵티나트(Muktinath,3800)~카그베니(Kagbeni)~좀솜(Jomosom)~마르파(Marpha,2670), 8시간 15분 

 

 

묵티나트는 라닥을 떠올리게하고 티벳을 생각나게 한다.

만년 설산이 하늘을 배경으로 우뚝하고 그 앞에는 나무 한그루없는 황량한 황갈색 산

그리고 그 산 밑의 땅을 일구어 생명을 가꾸어내는 티벳탄들..

 

 

 

이 높은 곳에서  보리싹이 힘차게 자라고 나무에는 새순이 돋는다.

집집마다 기도깃발이 휘날리고 사람들은 마니차를 돌리며 하루를 연다.

 

 

 

몇걸음 걷다가 다시 멈추고 바라본다.

황량함과 부드러움, 흰 설산과 들판의 초록 생명들..

 

 

 

 

 

무스탕으로 가는 길..

언젠가 이 길을 걸어 골짜기를 지나 무스탕으로 가리라..

 

 

 

 

 카그베니에서 좀솜~마르파까지는 거센 모래바람이 부는 구간이다.

 그래서 오전에 지나가야 바람을 조금 피할 수있다.

 하지만 풍경에 취해 걸음이 자꾸 느려진 탓에 이곳을 지날때 바람을 온몸으로 안고 통과해야했다.

 

-<숙소>'snow leopard' 50루피, clean. hot shower, good food, apple pie65루피,apple whisky45루피

 

 

 

<12일> 4월 26일, 월요일

.마르파(Marpha,2670)

 

사과산지로 유명한 마르파에서 쉬어간다.

오랜만에 한가롭고 느긋한 시간이다.

숙소는 방이 30개쯤 있는 3층 건물인데 묵고 있는 손님은 우리뿐이다.

 

볕이 잘 들고 창이 넓은 식당에 앉아 밀크티를 마시며 밖을 내다본다.

설산과 구름, 사과과수원 그리고 그 너머엔 보리밭 물결, 땅의 기운과 사람의 정성을 먹고 자라는 녹색채소들,

흰색으로 칠해진 돌집, 돌집마다 어김없이 휘날리고 있는 오색 기도깃발..

 

트레커들이 간간이 올라오기도 하고 내려가기도 한다..

오늘은 걷는 대신 가만히 앉아 있는다.

 

오후에 좁은 돌담길을 따라 산책을 했다.

바람막이용으로 밭경계마다 돌담을 쌓고 입구에 나무문을 해달았다.

그 안에는 사과나무와 온갖 녹색 푸성귀들이 자라고 있다. 조금 더 걸어내려가자 너른 보리밭이다.

네살박이 키만큼 자란 보리들이 바람에 몸을 맡기고 춤을 춘다.

장관이다.

 

어디선가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고 아이들의 함성소리도 드높다.

학교다.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너댓명씩 공놀이를 하고 한쪽에서는 네 명의 아이가 두 명씩 편을 갈라 고무줄놀이를 한다.

맨발바닥과 손과 얼굴이 하나같이 새까맣고 콧물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아이들이 낯가림도 하지 않고 베시시 웃는다.

예쁘다.

내 어릴적 모습이 저랬던가..

 

 

 

<13일> 4월 27일, 화요일

.마르파(Marpha,2670)

 

 마르파에서 하루 더 머문다.

 하늘엔 먹장구름이 가득해서 온종일 설산을 보지 못했다.

 

몸은 그동안 참아왔던 아우성을 한꺼번에 토해냈다.

산책삼아 걸을 때마다 엉덩이뼈,골반뼈,허벅지며 종아리가 마구 쑤셨다.

아직 트레킹이 끝나지 않았는데 며칠 쉬어가려니 몸이 착각을 했나보다.

 

 몸에게 근사한 저녁을 대접했다.

 토마토 소스로 맛나게 버무리고 위에는 치즈가 적당히 녹아 보기에도 먹음직스러운 스파게티!!

 

 내일 아침에 일찍 떠난다.

 

 부탁한다,몸아..

 

 

 

<14일> 4월 28일,수요일

.마르파(Marpha)~가사(Ghasa,2010), 7시간 30분

 

 구름 가득한 하늘..

 빠르게 걸으며 몸의 리듬을 되찾는다.

 내리막이라 오르막과는 달리 걷는 속도가 빨라지고 쉬는 시간은 준다.

 

라르중Larjung까지 세시간을 걸어와 현지인 식당에서 아침겸 점심을 먹었다.

라르중을 조금 지나자 먹장구름은 더이상 못참겠다는듯 가는비를 뿌렸다.

 

젖은 내리막에서 살짝 미끄러지면서 오른쪽 무릎을 다쳤다.

입고 있던 바지도 무릎부위가 구멍이 났다.

몸이 긴장한 상태라 어느 정도인지 알 수없다.

빗방울이 점점 굵어지더니 가사Ghasa에 숙소를 잡자마자 소낙비가 쏟아진다.

 

무릎이 생각보다 많이 까졌다.

아직 갈길이 멀다. 밤새 가라앉았으면.. 

 

 

 

<15일> 4월 29일,목요일

.가샤(Ghasa,2010)~따또빠니(Tatopani,1190), 6시간 30분

 

오른쪽 무릎 부상으로 걷는 속도가 많이 더뎌졌다.

하지만 왼발과 나무지팡이의 힘을 빌어 천천히 걸었다.

어느새 황량한 산대신 나무가 무성한 초록 산이 시야에 가득 들어온다.

밭에는 옥수수와 다른 밭작물들이 힘차게 자라고 있다..

 

 따또빠니에 숙소를 정하자마자 비가 또  쏟아졌다.

침대시트가 깨끗해서 내가 묵자고 했는데 주엽이가 마음에 안들어한다.

어째 뭐가 조금 바뀐 것같다.

주엽이는 주어진 것에 항상 감사하며 어지간하면 견디는 편이고

나는 다리품을 팔더라도 같은 값이면 깨끗한 곳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야외 온천을 하고 와서 마당에 있는 평상에 누워 하늘과 설산 닐기리 사우스를 보면서 기분이 좋아지나보다.

더구나 마당 한켠에 심어져 있는 꽃들이 어렸을 적 시골마당에 심어져 있던 꽃들과 같다며 좋아한다.

 

 

 

<16일> 4월 30일, 금요일

.따또빠니(Tatopani,1190)

 

오전에 health post에 가서 상처난 무릎에 붕대를 감았다.

약바르고 붕대감는 것은 무료지만 먹는 약값은 200루피다.

그래서 그냥 약 안먹고 시간과 자기 치유력에 기대서 견뎌보기로 했다.

 

어제 점심을 먹었던 할머니댁에 다시 갔다.

할머니께 양해를 구하고 라면을 직접 끓이고 달걀과 감자도 삶았다.

우리네 막걸리맛이 나는, 현지인들이 즐겨마시는 술인 창chang도 주문했다.

 

비가 내린다.

비오는 거리를 보며 창을 마시고 있노라니 노래가 절로 나온다.

 

사람들과 짐을 가득 실은 말이 비맞으며 간다.

 

할머니 집에서 세시간 이상 놀다가 오후 햇살을 받으며 느릿느릿 집으로 왔다. 

 

 집에 와서 우연히 한 숙소에 묵게 된 한국인 두 분을 만났다.

 에베레스트 트레킹을 마치고 라운딩을 하는 중이다.

그 분들의 저녁초대로 꿈에 그리던 한국밥과 반찬을 마음껏 먹었다.

그렇지않아도 매일 달밧과 라면, 삶은 감자와 계란만 먹어서 한국 음식을 그리워하던 차였다.

고등어자반찌개와 윤기흐르는 쌀밥, 김치,오이소배기, 커피까지..

 

주엽이는 밥을 네번이나 먹어 주위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17일> 5월 1일, 토요일

.따또빠니(Tatopani)~고라파니(Gorapani,2750), 8시간

 

어제 맛난 저녁을 대접해 주신 두 분과 일행이 되어 고라파니Gorapani로 향했다.

아침부터 꾸물거리더니 급기야 비를 뿌린다.

둘이 걸을 때보다 빠른 보폭으로 두 분과 보조를 맞췄다.

 

아침에는 떡라면,점심엔 볶음밥과 피자,치즈오믈렛,감자튀김,사과파이로 만찬을 즐겼다.

두 분이 함께 먹자며 넉넉히 시킨 것이다.

물론 우리는 하나도 남기지 않았다.

 

 길은 계속 오르막인데 드문드문 나타나는 마을들은 정겹고 길도 예쁘다.

 고라파니는 산등성이에 있는, 지붕이 모두 파란색인 마을이다.

 마을에서 40분정도 올라 가면 푼힐전망대에서 설산의 파노라마를 즐길 수 있다.

 다울라기리, 사우스안나푸르나, 안나푸르나1, 마차푸차레, 투크체피크.. 

 

 다울라기리와 사우스 안나푸르나가 통유리 너머로 한 눈에 들어오는 멋진 방을 잡고

 잡탕찌개와 밥,청태볶음,골뱅이무침에 창을 마시며 저녁 만찬을 즐겼다.부엌에서..

 

부엌이 우리나라 선술집 분위기가 물씬 나기도 하고

흙으로 만든 아궁이에 장작불을 때서 그런지 우리네 옛날 시골 부엌을 떠올리게도 한다.

 

 시간도 이곳에서 잠시 쉬어가는 것같다.

 

 

 

<18일> 5월 2일, 일요일

.고라파니(Gorapani,2750)~푼힐전망대(Poon Hill,3193)~타다파니(Tadapani,2590), 5시간 30분

 

 새벽 4시.

 하늘에는 별사탕들이 촘촘히 박혀있다.

푼힐(Poon hill,3193)에 가기 위해 랜턴을 들고 집을 나선다.

해돋이를 보기위해 다른 트레커들도 단단히 옷을 챙겨입고 푼힐로 향한다.

40분쯤 올라가면 설산들의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이른 아침이라 추웠지만 하늘은 맑다. 어제는 오전내내 비가 왔다는데..운이 좋다.

물고기 꼬리 모양으로 생겨 'FISH TAIL'이라고도 불리는 마차푸차레가 오른쪽 끝에 있고,

왼쪽으로 각각의 설산들이 위용을 뽐내고 있다.

사진을 한 장 찍고 나니 밧데리가 닳아서 경고표시가 나오더니 꺼진다.

기온이 너무 낮아 밧데리도 쉽게 닳는다.

 

사람들이 웅성거린다. 마오이스트다.

푼힐에 온 트레커를 상대로 1000루피씩 강제 기부를 요구하고 있다.

이름만 들으면 무시무시할 것같은 마오이스트들은 채 스무살도 안되 보이는 아이들이다.

그들은 허리에 총알과 총이 있는 밸트를 차고 얼굴을 굳힌 채 돈을 요구하며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다른 트레커들과 실랑이를 하는걸보고 슬쩍 내려가려 했지만  제지당했다.

 우리 일행도 옥신각신하다가 한 사람당 500루피씩 냈다.

그들은 잘 간직하고 있다가 다른 마오이스트를 만나면 보여주라며 영수증을 건내주었지만 뒷맛은 영 씁쓸하다.

 

 아침은 조랭이떡을 넣은 신라면에 따끈하게 데운 햇반이다. 두 분 덕분에 몸이 있는 대로 호사를 한다.

 만나자 이별이다. 두 분은 포카라를 향해 떠나고 우리는 ABC로 향한다.

 함께 내려가서 저녁에 닭백숙을 해먹자는 유혹은 강했지만 가고 싶은 길이 있었다.

 네팔 루피가 조금 부족할 것같아 하산하는 두 분께 $50을 환전했다.

 게다가 모카커피며 볶은고추장,깻잎,레몬원액 그리고 각종 차들도 주셨다.

 고마운 인연이다. 

 

 타다빠니 주변 산들이 지리산 능선을 생각나게 한다며 주엽이가 좋아한다.

 하지만 난 베니아판이 방과 방을 가르는 벽역할을 하는 가건물같은 숙소와 사람들의 담백하지 못한 표정이 걸린다.

 

언젠가  한국 사람이 묵고 간듯 방 안 베니아판 벽에는 '신들의 古鄕,구름의 놀이터로다'라고 쓰여 있다.

 

 

 

 <19일> 5월 3일, 월요일

.타다빠니(Tadapani,2590)~촘롱(Chhomrong,2170), 4시간

 

 그야말로 정글 속을 한참 내려왔다.

 그리고 다시 오르막.

 

 촘롱에 있는 <Excellent View Top>은 이름에 걸맞게 뛰어난 전망을 자랑하는 숙소다.

 게다가 깨끗한 방과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할 수있어서 더욱 마음에 든다.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나니 스르르 졸음이 온다.

 

 시간도 히말라야 중턱에서 잠시 쉬어가는 것같다.

 

 -<숙소>'Excellent View Top'100루피 .깨끗, 달밧130루피, 라면 60루피

 

 

 

<20일> 5월 4일, 화요일

.촘롱(Chhomrong,2170)

 

이른 아침부터 바쁘게 오가는 트레커들과는 달리 느긋하다.

전망좋고 편안한 방에서 둥글거리다가 밖으로 나오니 파란 하늘이 가득 들어온다.

바지도 빨고 머리도 감고 해바라기도 하고 오가는 이들과 인사도 나누고..

 

 얼마 안있어 조금전까지도 파랗던 하늘이 먹구름으로 가득 덮히더니

급기야 비를 뿌리더니 천둥까지 친다.

 

 

동네산책도 하고 점심도 먹을 겸 집을 나섰다.

 

빗발이 점점 굵어진다.

언제나처럼 감자와 계란도 삶고 계란 넣고 라면도 삶았다.

 

비오는 날 먹는 라면맛은 일품이다.

그것도 동네가 바로 내려다보이는 처마밑 긴의자에 앉아 후르륵거리며 먹는 맛이라니..

 

배도 부르고 풍경에 취해 노래가 절로 나온다.

후식으로 거품가득한 카푸치노를 한 모금 마시니 세상에 이런 호사가 없다.

 

주인 아저씨에게 한국인이라니까 쿠웨이트에서 현대에서 3년간 근무를 했다며 알은체를 한다.

 

 

 

<21일> 5월 5일, 수요일

.촘롱(Chhomrong)~뱀부(Bamaoo,2190)~도반(Doban,2505)~데우랄리(Deurali,3150), 7시간

 

 발에 날개를 달았는가..내딛는 걸음 걸음이 가볍고 사뿐하다.   

 마차푸차레가 살며시 아침 인사를 한다.

 

뱀부Bamboo에서 도반Doban가는 길은 예쁘고 아기자기한 오솔길이다.

정글이 시작되는 곳이기도하다. 라운딩할 때는 만나지 못한 풍경이다.

 

나무마다 이끼가 나뭇가지들을 에워싸고 그것도 모자라 축축 늘어진다.

세월을 거슬러 원시림 속으로 걸어들어갔다.

어디선가 "아~아아~"하며 타잔이 나타날 것도 같다.

 

히말라야Himaliya쯤 오니 먹장구름이 점령군이다. 

내친 걸음 데우랄리Deurali로 향한다.

울퉁불퉁한 돌길이 계속되는 오르막이다. 하지만 여전히 발에 날개를 달았다.

 

빗방울이 후득거린다.

데우랄리에 도착해서 숙소를 잡고 나니 기다렸다는듯 비가 쏟아졌다.

장쾌하게 쏟아지는 비.

 

 "그렇게 쏙 가버리면 어떻게 해? 나는 너에게 들려주려고 노래까지 연습하며 기다렸는데.."

 

 저녁을 주문해놓고 추워서 침낭 속에 있다가 밥이 다 되었는지 물어보러 나갔다왔더니 주엽이가 볼멘 소리를 한다.

조금 늦기는 했다. 주인 아저씨가 직접 만든 곡주를 마시고 있다가 맛보라며 건넸다.

한 잔 마시면 추위가 조금 가실 거라고..

그래서 추위도 녹일겸 따끈하게 데워온 술을 반잔쯤 마시고 오는 길이었다.

 

하지만 갑작스런 주엽이의 볼멘 목소리에 나도 맞대응을 한다.

 

" 네가 노래연습을 하고 있는 줄 내가 어떻게 알겠어? 그나저나 무슨 노래 연습했는데?"

 

주엽 :정태춘 박은옥의 '사랑하는 이에게'

 나  : ......

 

평소에 안하던 행동을 하는걸보니 조금 높이 올라오긴 했나보다.

 

 

 

 <22일> 5월 6일, 목요일

 .데우랄리(Deurali,3150)~MBC(3700)~ABC(4130)~데우랄리~뱀부(Bamboo,2190),10시간

 

하늘은 구름 한 점없이 푸른데 시작부터  급한 오르막이다. 

숨이 턱에 찬다.

언제까지 계속될 지 모를 오르막.

 

데우랄리Deurali에서 MBC(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구간은 길고 조금 위험하며 지루하기도 하다.

어느 순간 다리가 풀렸다.

똥침을 놓겠다는 주엽이의 협박에도 술취한 사람처럼 갈짓자 걸음을 몇걸음 떼어놓다가 쉬기 일쑤다.

어제와는 완전히 딴판이다.

 

 MBC에서 라면을 끓여 먹고 힘을 내보지만 두 다리는 여전히 힘이 없다.

하늘은 눈이 부시도록 푸르고 하늘을 배경삼아 하얀 설산이 선명하게 다가오는데..

ABC(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는 가까운듯 멀고 ABC에 있는 숙소들의 파란 지붕이 반갑지만

굼벵이 걸음으로는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다.

 

 

 

 ABC다!!

 

 아~! 사방이 눈부신 설산이다.

안나푸르나 사우스Annapurna south가 시야에 가득 들어오고,안나푸르나 1도 손에 잡힐 듯 가깝다.

마차푸차레는 도도함과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그 속에 내가 있다.

 

지금 이 순간 바람도 숨을 멈추는가.. 

 

 

   

<23일> 5월 7일, 금요일

.뱀부(Bamboo,2190)~촘롱(Chhomrong,2170), 5시간

 

어제에 비해 오늘은 여유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이어지는 길을 쉬엄쉬엄 걸었다.

아침 햇살이 눈부시다.

이틀전에 지나갔던 길인가 싶게 길은 익숙한듯 낯설고 험하다.

 

 나는 왜 이 길을 걷고 있는가..

 어디를 향해 걷고 있는가..

 언제쯤 이 걸음이 다할 것인가..

 

 

 

<24일> 5월 8일, 토요일

.촘롱(Chhomrong)~란드룩(Landruk,1565), 5시간

 

일교차가 크다 보니 제대로 몸관리가 안된다.

목이 따꼼거리는 것이 목감기가 오려나 보다. 따끈한 생강차로 목을 달래고 길을 나섰다.

조금 걷다가 삶은 계란과 감자도 까먹고 토마토도 손으로 슥슥 문질러 먹는다.

걷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조금 걷다가 쉬는 것이 목적인 것같다.

 

그래서 좋다.

서둘러 걸을 생각없이 양지 바른 곳에 앉아 해바라기를 한다.

마치 김밥싸고 달걀 삶고 사이다 사서 하루 소풍을 나온 것같다.

 

인적이 거의 없는 곳에서 한국인 트레커를 만났다.

에베레스트 트레킹을 한 후, 비행기 타기까지 며칠 시간이 남아 ABC에 가는 길이라고 했다.

말하는 폼새가 마치 북한산에 갔다가 시간이 남아 도봉산에 가는 길이라는 투다.

초행이 아니라며 포터만 한 명 대동했다. 몸도 마음도 가벼워 보인다.

 

다락밭에는 옥수수와 감자가 빼곡이 심어져 있다.

간간이 맞은편에서 오는 트레커들과 엇갈려 걷기도 하고

맞은편 산등성이에 드문드문 있는 집들을 바라보기도 한다.

 

트레킹이 끝나갈수록 마음이 양 갈래로 갈라진다.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과 아껴가며 좀더 천천히 즐기고 싶은 마음. 

 

 

 

 

<25일> 5월 9일, 일요일

.란드룩(Landruk,1565)~데우랄리(Deurali,2100)~담푸스(Dhampus,1650), 5시간

 

담푸스로 가는 중간에 데우랄리에서 잠시 쉰다.

이곳이 2100미터니까 란드룩에서 535미터나 올라 왔다.

 

차 한 잔 하려고 들른 찻집에서 세계일주를 하고 있는 멕시코 가족을 만났다.

젊었을적 세계를 여행한 경험이 있다는 아저씨는 여행의 소중함을 가족들과 함께 나누기 위해

결혼한 후 아내와 어린 두 딸과 함께 여행에 나섰다.

큰 딸은 다섯살쯤 되어 보이고 둘째딸은 갓 돌을 넘겼을 것같다.

 

세상에 돈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음을 아이들에게 일깨워주고 싶다는,

아주 낙천적으로 보이는 아저씨는 곧 한국에도 갈 예정이다.

一路平安..    

   

 

 

<26일> 5월 10일, 월요일

.담푸스(Dhampus,1650)~사랑콧(Sarangkot,1592), 6시간 30분

 

 담푸스에서 포카라로 가는 가장 간편한 방법은 페디Phedi까지 걸어간 후,포카라행 버스를 타면 된다.

하지만 우리는 사랑콧Sarangkot을 거쳐 포카라까지 걸어갈 생각이다.

사랑콧으로 가는 길목인 나우단다Naudanda까지, 편하지만 재미없는 찻길대신 산길을 택한다.

하루 이틀 사이에 눈에 띄게 보이는 거머리들이 몬순이 다가왔음을 실감케한다.

 

 낙엽이 수북이 쌓인 좁다란 산길은 정답고 우리 나라에서 가을 산행을 하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눈을 뜨면 걷는 일이 일상이 된지 오래다.

기꺼우면서도 가끔은 한 곳에서 맘껏 쉬고 싶기도 하다.

아무 것도 안하고 걸을 일도 없이..

 

사랑콧.

6년 전에 처음으로 꿈에 그리던 인도와 네팔에 왔을때 들렀던 곳이다.

포카라에서 희강이와 창호를 만나 함께 올랐던 곳.

마침 12월 31일이어서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얘기하고 노래하며 밤을 꼬박 새우고 새해 해맞이를 하러 올랐던 곳.

 

설산을 붉게 물들이며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모인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질렀었다.

그 곳에 하세월이 흐른 뒤 다시 왔다.

 

지금 희강이와 창호는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예정대로라면 둘다 신부님이 되어 있을 것이다.

또 성숙이와 분이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27일> 5월 11일, 화요일

.사랑콧(Sarangkot,1592)~포카라(Pokhara,820)

 

히말라야에서 보낸 한 달...

정확히는 27박28일 동안 걸어서 안나푸르나를 한바퀴 돌고 푼힐을 거쳐 ABC에 갔다가 포카라까지 걸어 왔다.

마지막까지 쉽고 평탄한 길대신 궁금함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길을 택한 덕분에 고생을 사서 했다.

포카라 시내에 들어서자  하이파이브를 했다.

마침내 트레킹이 끝난 것이다.

 

급할 것없는 걸음으로 걷고 걸어 토롱라를 넘었고

푼힐에서 히말라야 연봉들을 보았으며 ABC에서 사방 설산에 둘러싸여 행복해했다.

둘이어서 서로에게 힘이 될 때가 많았다.

 

숙소를 잡고 한바탕 빨래를 한 후,포카라에 있는 한국식당<김치하우스>에서 얼큰한 김치찌개와 잡채를 먹었다.

몸속 세포들이 희희낙락하며 양껏 영양가있는 음식들을 즐긴다.